사서자격증을 17년 만에 꺼낸 사연

프롤로그
사서자격증을 17년 만에 꺼낸 사연 

 

    “나, 좀 쉬고 싶어.”

    어느 날, 이이(그때도, 지금도, 그러니까 아직까지 남편인 사람)가 툭 내뱉었다. 나와 알콩이(당시 4세인 딸)가 곁에 있긴 했지만 딱히 누구 들으라고 말한 건 아닌 듯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한 템포 쉴 때도 됐지.’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소처럼 일한 남편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3년 일하면 한 달 안식, 이런 거 하면 좋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우린 무얼 위해서 그렇게 내달리는 걸까? 

    “응. 그럼 육아휴직 해. 당신 살림하고 육아하는 시간 동안 내가 뭐라도 할게.”

    외벌이었던 우리는, 이이가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 분명 생활비가 더 빠듯해질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이이가 쉬면 내가 짧게라도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마 인구 30만인 도시에서 나 하나 일할 데 없을까 싶었다. 평생직장 구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경단녀’였던 그때의 난 가진 것 없어도 뭐라고 되겠지, 라며 앞으로의 삶을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으로 보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였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자격증과 경력을 곱씹어 보았다. 자동차 면허증과 노원지부에서 받은 수화 수료증, 레크리에이션 자격증, 정사서 자격증이 다였다. 그리고 다년간 어린이책과 잡지를 만든 경력. 

    나의 지난 과거가경단녀란 벽을 뚫을 수 있을까, 란 고민이 무색하게 곧바로 잠이 들었다. 당시 내게 육아란 긴 생각을 허락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혹은 아이보다 먼저) 곯아떨어지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난 어린이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이것은 그러니까 사서자격증이 있어서 마흔 넘어 얼결에 어린이도서관 사서가 된, 초짜 야매 사서의 지난 일기이자 분투기이다. 이때 만난 책과 사람들 이야기를 할 참이다. 힘 빼고 편안하게 쓰고 싶다. 지나간 기억이 ‘추억’으로 소환되어 나의 보물창고 안에 담기길 소망한다.

 

 

 

1. 이곳 둘레는 내 어린 시절과 닿아 있다

 

    어린이도서관은 조치원에 있었다. ‘조치원’은 세종특별자치시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원’이란 역할에 걸맞게 아주 오래된 기차역이 있는 아담한 원도심이었다. 그땐 충남이었고, 지금은 세종시가 되었다. 

    세종시는 양극단을 맛볼 수 있는 도시이다. 골목이나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막 교정을 마쳐 가지런한 치열을 자랑하는 듯한 신도심을 벗어나 20여 분쯤 차로 달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원도심(조치원)엔 골목이 있고, 낡음도 있으며, 할머니들 얼굴에 핀 주름엔 쌓이고 쌓인 태곳적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 어린이도서관이라니. 정말이지 멋졌다.

    심지어 이곳 둘레는 운명처럼 내 이런 시절과 닿아 있기까지 하지 않은가.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는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 엄마도 ‘국민학교’ 시절, 이곳의 졸업생이었다. 그러므로 이곳 조치원은 우리 엄마의 고향이다.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 댁과 이모 댁을 번갈아 가며 고복저수지와 복숭아 과수원 근처에서 사촌들과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외할머니 댁과 이모 댁은 읍내가 아닌 쌍류리와 청라리라서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가야 했지만, 주말만 되면 아주 적은 돈을 들고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번화가로 나와 분식도 먹고 시장 구경도 했더랬다. 

    또 낮엔 잘 놀다가도 밤만 되면 엄마가 그리워 울먹이다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무슨 의식처럼 외할머니한테 간신히 이십 원을 얻어 들고, 퉁퉁 부은 눈을 한 채 남동생 손을 꼭 잡고는 뜨거운 해 아래의 길을 삼십 분이나 걸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는 슈퍼로 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 길을 걸을 때면, 남동생은 여름방학 땐 “누나, 해가 자꾸 우리만 쫓아와.”라고 했고, 겨울방학 땐 “누나, 바람이 자꾸 내 엉덩이를 밀어. 날아가겠어.” 라고 했다.) 유일한 슈퍼엔 진한 주황색의 빛바랜 공중전화가 있었다. 나는 동생을 평상에 앉히고 청주 친가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의 집 전화번호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56-3432. 

    따르릉따르릉.

    한참 벨이 울린 뒤에야 친할머니가, 어떨 땐 고모가, 어떨 땐 순덕이 이모가, 어떨 땐 막내삼촌이 전화를 받고 이어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멀리, 혹은 가깝게 들린 뒤에야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거의 늘 숨이 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혹시 이십 원어치가 다 되어 딸 목소리를 못 들을까 봐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늘 두 밤만 더 자면 데리러 올 거라고 했다. 그렇게 몇 번 통화를 하면 방학이 거의 끝나 있었다.

 

이런 소소하며 사사로운 추억이 깃든 곳에 다시 발을 디디니 ‘당연하게도’ 마음이 새로워졌다. 내가 어린 시절을 지냈던 곳에, 어른이 되어 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오다니. 무슨 수로 새롭고 들뜬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이에미 부여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사서라는 일도 난생처음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로서는 ‘새싹’처럼 여겨져, 이제 막 움트는 세상의 작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댓글(10)

  • 223
    2021.07.09 15:45

    지연아.. 잘읽었어 ^^ 앞으로도 잘읽을께

  • 구정화
    2021.07.09 16:3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21.07.09 16:44

    좋다. 언니 만나고 있는거 같애~~

  • 바랑
    2021.07.09 17:44

    그림과 글이 너무 감성자극이네요.
    어린시절 방학 때 외갓집에 놀러 갔었던 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연재 시작이시라니 기대하겠습니다^^

  • 망고
    2021.07.09 17:56

    엄마의 고향에서 17년만에 꺼낸 사서자격증~~ 레트로갬성!!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다음편 기대되용!!

  • 발라줄게 바세린
    2021.07.09 18:44

    남동생도, 작가님도
    표현력이 좋네요! 바람이 자꾸 엉덩이를 밀어~~🤭🤭

  • 은쥬
    2021.07.09 22:17

    감성자극당함~~~~
    너무 좋다~~
    앞으로도 기대할께^^

  • 이쌤
    2021.07.10 23:37

    우와 장면들이 머리속에 막 그려져요

  • 대낮
    2021.07.11 08:48

    응원합니다!^^ ♡ 그림도 좋네요~~~

  • 모모라
    2021.07.21 22:34

    이렇게 보니 더 잘 읽히네요. 잘 읽었습니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