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

2.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

    면접은 12월 20일쯤이었다. 막 추워질 때쯤이었고,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면접 날 아침, 난 아이를 낳기 전까지 입었던 감색 코트를 꺼내 입었다. 팔뚝이 꽉 끼어 겨드랑이가 몸에 착 붙지 않고 살짝 떴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근육 운동 열심히 한 사람이 이렇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 단추는 정말 간신히 잠겨 그냥 단추 잠그는 걸 포기했다. 그렇게 조금은 불편한 몸으로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앞사람이 면접 보러 들어갔는데 면접관 목소리가 우렁찼다. 문 밖에까지 들렸다. “머리를 잘랐네요!”라는 사적인 얘기가 들렸다. ‘헉, 틀렸군. 아는 사람이 분명해.’ 는 생각이 드니까 이상하게 안 떨렸다. 책장에 꽂힌 책 중에 <샬롯의 거미줄>을 꺼내들었다. 책 읽을 여유까지 생겼다. 
    곧 내 차례가 되어 면접 방으로 들어가니, 젊은 여자와 좀 나이든 남자 분이 면접관으로 앉아 있었다. 젊은 여자 분이 거의 질문을 했으며, 정말 엄청나게 쾌활했다. 이다지도 쾌활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쾌활한 분이 자꾸 내 다리를 쳐다봤다. 그것도 뚫어져라. 치마를 입고 간 난 혹시 스타킹에 구멍이 난 게 아닐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후다닥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스타킹에 구멍이 나진 않았다.

    예상을 뒤엎고(사실 예상은 했을 것이다. 면접에 붙었으니 이 글을 쓰는 거니까.) 머리를 자른 그분이 아니라 내가 붙어서 1월 2일자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나는, 어린이 도서관 관계자 분들 사이에서 내가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로 통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면접 날, 감색 코트를 어렵사리 찾아 입고 가방까지 신경 쓴 나는, 아이 엄마가 되면서 길들여진 습관 때문에 두 가지 결정적. 실수를 했더랬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어정쩡하게 머리를 풀고 있을 수 없다.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다 보면. 당연히 머리를 묶어야 하고, 내 어깨로 아이 머리를 받쳐 트림을 시키거나 재울 땐 머리를 틀어 올리는 게 가장 좋다. 
    또 한 가지, 당시 난 하늘하늘한 스타킹만으론(그것이 비록 기모스타킹이라도!)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다. 겨울에 니트 양말이야말로 사랑이다. 그렇게 난 아이를 키우며 길들여진 니트 양말과 틀어 올린 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고수하며 당당히 어린이 도서관에 입성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다지도 쾌활하신 분이 내 다리를 뚫어져라 보았던 거고. (면접 보러 온 사람이 ‘니트 양말’이라니!)
    그리고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내게 직원 두 분이(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잘 가라고 인사를 했지만, 내가 정말 쌩하니 그냥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직원 분들은 니트 양말과 인사를 받지 않는 내 태도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붙은 건 역시 운명이다.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인데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편견 없이 붙여주신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인사에 관해 좀 더 덧붙이면 어린 시절, 내겐 네 살 터울의 친척언니가 있었다. 그 언닌 귀에 참 관심이 많았다. 내가 놀러 가면 늘 귀를 조물딱조물딱 만지며 잠을 청했다. 내 귀가 일종의 자장가인 셈이었다. 그리고 나를 보면 어김없이 귀이개로 내 귀를 파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한번은 왼쪽 귀에 귀이개가 너무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정말 너무 아파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였지만, 언니한테 화낼 수는 없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였고 고의가 아니었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왠지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언니가 많이 혼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병원도 안 가고 그 치료시기를 놓쳐버렸다. 
    이때부터다. 내가 특정 음역대의 소리를 잘 못 듣거나, 습기 차고 축축한 날이나 웅웅거리는 넓은 공간 등에서 사오정이 되는 건. 그렇다고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니었다. 못 들으면 못 듣는 대로 그냥 지낼 만했다. 그런데 가끔 면접 날과 같은 오해가 생기긴 했다.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난 왠지 (물론 아무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겠지만)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도도함과는 거리가 멀고, 개성이나 독특함과도 거리가 먼 난, 뭔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자존심 센 여성이 된 것만 같았다. 숨겨진 로망이 성취된 듯한 뿌듯함도 살짝 느꼈다. 그런데 이런 베일은 얼마 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도 빨리 내 허당끼를 들켜버린 것이다. 역시 사람의 본질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말이다. 도도하고 싶은 욕망은 헐렁한 본질(본능)을 앞서지 못했던 것이다.

 

3. <인수인계 목록엔 화분 세 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출근 이튿날, 전임 사서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쏟아졌다. 이쪽으론 전공만 했지, 정보와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인수인계 받는 날부터 한동안 외계어를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분류를 배운 게 20여 년 전이어서, 책 등록 설명을 들을 땐 수학공식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한참 동안 인수인계를 해준 전임 사서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었다. 이제 정말 떠날 때라는 몸놀림이었다. 어쩐지 그 움직임이 애잔했다. 그러다 무엇인가 중요한 걸 빠뜨렸다는 듯이 “아!” 하고 작게 놀란 소리를 냈다.

    “이렇게 모니터에 제가 포스트잇을 붙여놨거든요. 자꾸 까먹기도 하고... 중요한 거기도 해서.”

    정말 커다란 모니터 오른쪽 상단 위쪽에 민트 빛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검정색 볼펜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 화분에 물 주  

    그렇게 내 인수인계 목록엔 화분 세 개에 심겨진 식물들의 생명 유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니터 건너 창가에 놓인 세 화분엔 다육이, 선인장, 미니 장미가 각기 심겨져 있었다. 전임 사서의 화분 인수인계 설명은 이랬다. 
    미니 장미(당시엔 아직 장미가 피지 않았다. 겨울이었으니까.)는 일주일에 한 번씩 흠뻑 물을 주면 곧 예쁜 장미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육이는 잎을 살짝 만져보고 통통한 느낌이 아니면 물을 주면 된다고 했다. 자주 만져보고 자주 봐야 알 수 있는 ‘감’에 의존해야 하는 설명이었다. 미니 선인장도 육안으로 봤을 때 좀 말라 보이거나 흙이 너무 바짝 말라 있으면 물을 주라고 했다. 무심히 있다가 까먹을 만하면 한 번씩 주라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인수인계가 끝났다는 표정으로 전임 사서가 떠나고 화분이 온전히 나에게로 왔을 때 난 좀 비장한 마음이 되었다. 지금껏 식물을 제대로 길러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다육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는데 아마 뿌리가 각각 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육 화분 흙에 꽂힌 작고 흰 팻말에 작은 글씨로 ‘유트, 미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육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혹시 이게 다육이 학명이 아닐까 찾아볼까 하다가 부러 찾지 않았다. 그냥 전전 주인이 애정을 가지고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 여기고 싶어서였다. 
    세 화분은 도서관에 처음부터 있었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모두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이곳으로 온 것들이었는데 미니장미와 선인장은 기억나지 않고, 다육이 사연만 기억한다.
    유트와 미르는 천안에 있는 어느 직원이 키우다가 임신을 하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그 세월이 짧지 않고 사연이 없지 않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또 위로를 주며 곁에 있었을 이 사랑스런 작은 생명들은, 내게도 초록의 생명 빛을 알게 모르게 스며들게 해주었다. 생명을 죽지 않도록 돌보는 일은 서로에게 초록을 선물하는 일이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치니 당연하다. 도서관에 있는 동안 이 아이들은 무탈하게 내 곁에 있어줬다. 시들거나 죽지 않아서 나도 시들거나 죽지 않았다. 
    사시사철 저마다 다른 초록빛을 뽐내며 작지만 강한 생명을 느끼게 해줬으며, 봄이 되면 정말 아이보리 색 미니 장미가 찾아와주었다. 활짝 핀 장미 덕분에 지인들에게 장미 사진을 보내며 인사를 건네 고마운 시간을 허락해줬다.    

댓글(1)

  • 박지숙
    2021.08.01 14:24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라고요? ㅎㅎ
    송 작가님에겐 꿈 같은 별명이었겠네요. 원래 평생 들을 수 없는 그런 것에, 우린 종종 감격하잖아요.
    도서관 사서 님들의 일상을 엿보게 되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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