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하는 인간

6. <분류하는 인간>

 

    우리나라에서 책을 분류할 땐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분류를 한다. 한국십진분류법은 듀이십진분류법에서 유래했지만 아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혀 다른 분류체계를 보여준다.

 

    -한국십진분류법

    000 총류

    100 철학

    200 종교

    300 사회과학

    400 자연과학

    500 기술과학

    600 예술

    700 언어

    800 문학

    900 역사

 

    -듀이십진분류법

    000 -컴퓨터 과학, 정보 총류

    100 –철학, 심리학 (Philosophy & psychology)

    200 –종교 (Religion) -서양, 기독교 중심적 분류

    300 –사회 과학 (Social sciences)

    400 –언어 (Language) -서양 중심의 분류

    500 –과학 (Science)

    600 –기술 (Technology)

    700 –예술, 레크리에이션 (Arts & recreation)

    800 –문학 (Literature)

    900 –역사, 지리 (History & geography)

 

    위키백과에서 검색되는 10개의 주류이다. 듀이십진분류법은 듀이가 고안해낸 도서 분류 체계로 2011년까지 총 23판이 나왔다고 한다. 위 예시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종교와 언어가 서양 중심 분류라고 되어 있다.(내가 추가 설명을 넣은 것이 아니라, 위키백과에 이렇게 나온다.) 듀이십진분류표 중 400번대인 ‘언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해보겠다.

 

    400 언어 (Language) -서양 중심의 분류

    410 언어학 Linguistics

    420 영어와 고대언어 English & Old English

    430 독일어 관련언어 Germanic languages

    440 프랑스 관련언어 Romance languages

    450 이탈리아, 루마니아어Italian, Romanian ,Rhaeto- Romanic

    460 스페인, 포르투갈어Spanish & Portuguese languages

    470 라틴과 이탤릭 언어 Italic languages

    480 고대, 현대 그리서어 Hellenic languages

    490 다른 기타 언어 Other languages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 동양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480에 있는 고대 그리스어보다 아래에 있는 ‘다른 기타 언어’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반면 한국십진분류법은 700번대가 언어인데 분류표를 보면 우리나라 근처에 있는 중국, 일본, 영미 순으로 지리적 접근성에 기초해 분류되어 있다. 이러하니, 듀이십진분류법을 수정하여 새롭게 분류체계를 조합한 건 당연해 보인다. 이처럼 도서를 분류하는 것만 봐도 한 나라의 정신과 가치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대충은 가늠해볼 수 있다.

 

    얼마 전, 영화 <컨텍트>(원제 <arrival>)를 다시 봤다. 테드 창의 원작도 훌륭하지만 영화 역시 언어에 대해 낯선 감각을 일깨워줘 다시 봐도 좋았던 작품이다. 여기에서 독특한 지점은 언어가 전혀 다른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주인공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국의 언어(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컨텍트>를 보고 며칠 뒤, 토미 웅거러 원작 그림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달사람(원제 <Moon Man>)을 보았다. 천천히 흐르는 음악과 그림이 애잔한, 참 좋은 영화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달사람이 지구에 도착하자 박사는 달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영어)를 가르친다. 전혀 다른 두 영화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선한 지구인이 낯선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가르치는 것.

    처음엔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치려고 했을까?

    옆에 있던 이이(오랜만에 등장한다.)한테 물었다.

 

    “여보, 이상하지 않아? <컨택트>도 그렇고 <달사람>도 그렇고 다들 낯선 존재한테 자기들 언어를 가르쳐주는데 그걸 또 선한 일이고 소통을 위한 최상의 것으로 생각하잖아. 물론 폭력이 아닌 언어로 관계를 맺는 건 좋긴 한데 난 왜 불편하지?”

    그러자 이이가 뜻밖에 맞장구를 쳤다.

    “원래 서양에서 다른 나라 정복할 때 제일 먼저 한 게 언어를 가르친 거야. 자기중심적인 거지.”

 

    그렇게 생각이 닿자 듀이십진분류법이 퍼뜩 떠오른 것이다. 비약이 심한 건가? 나는 서양 중심적 사고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생각한다. 듀이십진분류법처럼 여실히 드러나는 것도 경우도 있지만, 위에 언급한 영화에서처럼(물론 영화가 담고자 한 가치와 내용은 참신하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생각해본다. 분류란 무엇일까?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좀 삐딱하게 바라본다. 권력의 문제로. 책은 언어로 만들어지며 분류도 이 언어를 기초로 이루어진다. 모국의 언어를 어디에 놓을 것인지,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누구의 언어로 소통할 것인지는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가 영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영화 <기생충>을 볼 때 미국인들이 자막 읽는 것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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