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으면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다시 살아난 감각은 ‘청각’이었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편견이 깨지면서 얼마나 다양한 소리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더듬더듬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책 읽는 소리는 설레는 봄의 소리였다. 또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는, 책에 빠져 있는 독자의 숨소리와 어우러져 도서관이란 공간을 청각적으로도 확장시켜 더욱 도서관답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어린 아기에게 손짓발짓 써가며 읽어주는 그림책은 어떠한가? 다분히 책에 실린 글자만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온갖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책을 물성으로써도 두드리고 돌리고 만져보게 하는) 소리는 이 아기가 책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겠구나, 란 확신이 들게 한다. 아기는 엄마의 목소리와 엄마가 만들어내는 그 모든 소리에 화답하듯 박수를 치고, 까르륵 웃고, 옹알옹알 말하며 자기만의 언어로 책을 받아들인다.

 

   책보(책 읽어주는 엄마 모임) 동아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을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간단한 독후활동을 하는 재능기부를 해주었다. 또 어린이집, 유치원을 대상으로 견학과 단체열람을 진행했는데 나는 이때 꼭 그림책 한 권씩을 읽어주었다. 한동안 화요일 오전엔 ‘화요 낭독회’를 열어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직접 낭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런 활동과 모임들의 공통점은 ‘소리 내어 읽기’이다. 입 밖으로 활자를 뱉게 되면 신기하게도 그 말을 곱씹게 된다. 묵독을 할 땐, 정신 차리고 읽지 않는 한 생각이 삼천포로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낭독은 어떤가? 소리를 내야 하니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고, 공기 중에 글자들이, 문장들이, 이야기가 울려 퍼지면서 그곳에 있는 다른 누군가와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꼭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혼자 낭독을 해도 이런 경험은 가능하다. 내 목소리로 듣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묘하면서도 매력적인 구석이 많다. 이런 낭독의 기쁨도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책을 매개로 부담 없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것 중에 함께 읽기는 그야말로 으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것이라도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는 입장이 되면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떤 톤으로 읽을 것인지, 어느 부분을 강조해서 읽을 것인지, 다 읽은 뒤 질문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등 ‘읽어주는 자’의 권력과 힘을 획득하게 된다. 특히 어른이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아직 모든 게 처음인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아이에게 책은, 때론 삶 전체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어른들은 책으로 권력을 행사할 때가 적지 않게 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다양한 시선을 제공해주는 것이 맨 처음 책을 접하게 해주는 어른의 몫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읽어주는 자’의 시선을 주입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을까, 라는 의심을 품는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잘되지는 않는다. 내 기준이 또렷할수록 알게 모르게 내가 가진 생각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고르고 읽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에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그 일을 사서가 한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나는 가끔 언제 읽을지 알 수 없는 책을 사기도 한다. ‘언젠가’ 읽겠지만 그게 꼭 지금이 아님에도 기어이 장바구니에 담고 급히 주문을 누르는 것이다. 도서 리스트가 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책만큼은 꼭 주문해서 그 책의 작가에게, 출판 관계자분들에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셨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에 산 책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책은 <김지은입니다>이다. 나는 이 책을 제일 먼저 남편에게 읽어주었다. 차례와 뒤표지뿐이었지만 충분히, 그래 충분히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서 선물이라고, 나보다 먼저 읽길 원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어떤 구절을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뒤엔 내 생각 역시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김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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