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과 엘리베이터

    윙- 띵~! 스르륵.
    또다. 곁눈질로 흘깃 보니 아주 건강해 보이는 비장애인이 씩씩하고 당당하게 2층 도서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팔다리의 불편함 말고, 배가 아프다거나 어지러운 것일 수도 있어서 재빨리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혈색도 좋고, 심지어 아주 활짝 웃고 있다.
    혹시 무거운 짐이라도 들었나 다시 살폈다. 역시나 어깨에 착 멘 작은 가방이 다다.
    ‘아니, 계단도 몇 개 없는데 왜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거야?’
    은근한 불만에 눈이 가늘어지고 입이 삐죽 나왔다.

    어린이도서관은 아담한 2층짜리 건물로, 1층엔 장난감도서관과 프로그램실, 사무실이 있고 2층엔 어린이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자리는 2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에 유난히 민감했다. 사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 기준은 내가 출근한 날만을 말한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엘리베이터 이용은 비장애인 이용자의 이동과, 책이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비장애인들의 너무 잦은 엘리베이터 이용이 못마땅했다. 고작 2층짜리 건물인데도 이용자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무나 ‘쉽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 문제를 가지고 어린이 사서들과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어린이 사서들은 무엇보다 어린이 이용자들이 엘리베이터를 술래잡기 할 때 이용하거나, 그 안에서 장난치는 것이 문제라는 새로운 지적도 했다.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 사서들은 엘리베이터 이용 시 이렇게 해주세요, 라는 <주의사항> 포스터를 만들었다. 복기해보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1. 몸이 불편하지 않은 분들은 계단을 이용해주세요. (계단을 이용하면 건강해져요.)
    2. 계단을 이용하면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어요. (에너지 절약!)
    3.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내릴 때 절대로 장난치지 말아요. 다칠 수 있어요.

    직접 그린 그림과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만든 포스터를 1층과 2층 엘리베이터 앞에 붙였다. 확실히 엘리베이터 사용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말 그대로 ‘아담한’ 어린이도서관에 비장애인들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꼭 있어야 할까, 라는 생각. 비록 2층까지 있는 도서관이지만 전체적인 건물 몸체에 비해 엘리베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게 느껴졌다. 관리하기도 은근히 까다로웠다. 그리고 또 한 번도 보지 못한 시각장애 이용자들을 위한 점자 블록도 제 구실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비장애인인 내 눈엔 장식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게다가 어린이도서관엔 녹음도서나 점자도서도 없었으니, 더더욱 점자 블록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나는 몸이 떨릴 정도로 화들짝 놀랐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끔찍한 악몽을 꾼 것처럼 심장이 마구 뛰었다. 남의 것을 탐내고 훔친 도둑처럼 누가 내 생각을 알아차릴까 봐 얼굴까지 벌게졌다. 그런데, 맞다. 남의 것을 탐내고 훔친 도둑이. 비장애인들이 너무 쉽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신경이 거슬린다고, 관리하기 까다롭다고, 한 번도 장애인 이용자를 못 봤다고, 규모에 비해 비효율적이라고, 아이들이 다칠 수 있다고, 이런 변명 같은 이유를 들이대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권리를 손쉽게 앗아가는’ 권력자의 입장에 발을 담갔다. 이럴 때 사람은 참으로 무참해진다.
    그리고 나 역시 잠재적 ‘장애인’이다. 아니,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걸쳐 있는 ‘애매한’ 비장애인이다. ‘장애인’이라는 것은 누가 규정하는 것일까? 사실, 노화 역시 넓은 의미로 보면 장애인이 되는 과정일 수 있다. 신체적 약자가 되기는 너무도 쉬운 세상이고 장애라는 기준도 누가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많은 차별과 혐오가 있기에 비교적 가벼운 장애는 감추고 드러내지 않은 채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간신히 붙이지 않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사계절공정여행’에서 기획한 ‘무장애 여행’ 웹자보를 본 적이 있다. ‘무장애 여행’이라니, 충격적이었다. 이건 내 삶에 균열을 내려고 찾아온, 망치와도 같은 말이었다. 여기에서 장애 앞에 붙은 ‘무(無)’는 장애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장애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신체에 있는 장애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세상의 장애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턱과 계단과 지하철 리프트와 비품실로 전락해버리는 장애인 화장실 등이 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진짜 ‘장애’물들이다. 이런 장애물들을 없애는 것이 사계절공정여행이 만든 ‘무장애 여행’의 취지였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골목 탐방 맞춤 여행과 1인 가구를 위한‘혼자 또 같이’ 여행을 기획한 것이리라.

    이전까지 난 시각장애인들의 여행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인 가구의 여행 역시 그렇다. 그 차별과 소외의 틈새를 발견하여 멋진 여행 계획으로 탈바꿈한 시도가 멋졌고, 그래서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는 그 존재를 ‘삭제’해버리는 무지와 무례를 범하고 만다. 장애인이 오지 않는 공간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왜 오지 않는지를 살피는 것, 장애를 결핍의 서사로 보지 않는 눈을 비장애 이용자들과 공유하는 것, 어린이도서관 도서 목록에 (비록 많은 수를 확보하진 못하더라도) 점자도서와 녹음도서, 촉각도서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너무나 당연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여긴 특수 도서관이 아니니 가르고 나누어 분리해버리는 기만을 저지르지 않는 것들이 도서관의 ‘진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작은도서관의 미래는 연대와 돌봄이다. 특히 어린이도서관의 미래는 더더욱 그렇다. ‘소수자의 연대와 돌봄’이 되어야만 한다. 이 단어들의 담박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면, 연대와 돌봄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연대와 돌봄을 받고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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