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내는 것의 치열함-『유원』(백온유 지음, 창비)을 읽고

 

    늘 내가 어려워하면서도 가장 궁금해하는 시기는 ‘청소년기’이다. 나이로 특정할 수 없지만 ‘어쩌지 못하는 낯선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장 많이 접해본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 나 역시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나’를 알고 싶어서 자꾸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온유의 『유원』은 내게 어떤 대답처럼 다가왔다. 청소년기를 어렵사리 통과했던 내가 가장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바로 ‘나는 더욱더 송지연이 되고 싶다’였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유원도 그 무엇보다 스스로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청소년 이용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아쉽다.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학교 근처에 가지 않으면 청소년들을 보기 어려웠다. 독서실 같은 열람실이 따로 없는 어린이도서관이라 더욱 그랬으리라. 이런 현실이 씁쓸하다. 그래서 자주 볼 수 없는 그들이 더욱 그리웠다. 만약 청소년들과 독서 프로그램이나 읽기 모임을 하게 된다면, 그때 함께 읽고 싶은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이번 화에선 어설프게나마 『유원』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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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관계’는 잘라내고 도려내고 밀어내야지만 비로소 시작된다. 여기, 전혀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관계의 무게를 덜어내면서 온전히 ‘혼자’가 되는 이야기. 내 안에 아주 오랜 시간 머물면서 ‘나’를 점령해버린 이상하면서도 섬뜩한 타자들에 대한 이야기.

 

나는 나를 살린 우리 언니가 싫어.
나는 나를 구해준 아저씨를 증오해.(156쪽)

 

    주인공 유원의 저 마음속 독백은 “투명인간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파란 풍선”을 들고 다녔던 언니의 소설에서처럼,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유원의 ‘파란 풍선’이다. 그래서 이 파란 풍선 같은 말을, ‘싫어.’, ‘증오해.’ 라는 날선 분노를 가만히 어루만져줄 수밖에 없다. 문학을 읽는 이유 중 하나를 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파란 풍선’ 곁에 있는, 실체가 점점 사라져가는 투명인간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일. 투명인간이 그냥 ‘인간’이 되려는 그 마음을 힘껏 응원하게 되는 일. 독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문학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체험하게 되리라.

 

오래된 점령자들과 새로운 침입자들

    유원은 동네에서 꽤 유명한 17세 소녀이다. 10여 년 전 아파트 화재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 그것도 11층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극적으로 살아난 아이. 이때 유원을 구한 건 자신을 던진 언니와 그것을 받아낸 한 아저씨의 ‘용기와 희생’이었다. 그래서 유원은 사람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 ‘희망’의 상징과도 같다. 하지만 그 이면엔 누군가를 죽게 하고 다치게 한 죄책감 역시 따라붙는다. 살아났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아이. 그래서 유원은 자기 안에 자신‘만’ 있을 수 없다. 늘 언니를 데리고 함께 살아야 하고 현실에선 아저씨의 무게 역시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언니와 아저씨는 ‘용기와 희생’으로 유원을 살렸지만, 그 이유로 유원의 ‘점령자’가 되어 간다. 그리고 이 점령자들이 더욱 그 영역을 넓혀가도록 주변에서도 자리를 보존해준다.

 

아저씨가 절뚝이며 거실로 들어오는 순간 집 전체가 미세하게 몇 도쯤 기울어졌다는 걸 나만 느꼈을까. 아저씨는 늘 이렇듯 간단히 우리를 장악하곤 했다.(46쪽)

 

    불쑥불쑥 찾아오는 아저씨는 유원의 삶을 아니, 유원 가족의 삶을 너무나도 자주 장악해버린다. 유원을 받아내고 다리뼈가 으스러진 아저씨가 계속 찾아오는 한 유원의 삶 역시 아저씨처럼 절뚝일 수밖에 없다. 유원은 자신을 점령해 버린 아저씨에게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대상에게 사나운 마음”을 갖게 되는 부조리함을 느낀다.
    그럼 유원을 곁에서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유원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언니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과 교인들은 유원을 통해 언니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살뜰히 살피는 언니의 친구인 신아 언니 역시 유원보다는 유원 안에 살아 있는 친구 ‘예정’이를 본다. 이처럼 폭력의 형태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데서 찾아오기도 한다. 유원은 “나는 엄마의 하나 남은 딸이자, 언니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품이다. 이미 끝난 언니의 삶을 연장시키며 보조하는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 유원의 삶에 신수현과 동생 신정현이 등장한다. 한 영화의 카피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내 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신수현과 신정현이 바로 이런 존재이다. 유원을 유예정의 동생이 아니라 ‘이불 아기’가 아니라 그냥 ‘유원’으로 바라본 존재들. 이들은 유원이 자신의 현재를 망치고 부술 수 있도록 한다. 유원이 주변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택한 곳은 학교 옥상으로 가는 계단 한 구석이다. 여기에서 우연히 만난 수현은 ‘나만의 아지트’에 찾아온 침입자, 불청객이다. 그런데 이 침입자가 ‘나’로 살 수 있도록 유원을 뒤흔든다. 친구를 사귀고 싶게 만들고, 누구의 바람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싶게 한다. 비로소 진짜 관계의 물꼬가 열린 것이다. 내 안에 똬리를 튼 점령자를 밀어내고 ‘내가 나이게 하는’ 새로운 침입자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진짜 용기가 아닐까.

 

‘혼자’가 되는 것, 관계의 시작

    유원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난 존재이기 때문에 나태하게 살 수 없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언니를 닮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뭐든지 잘했던 언니였기에 그에 걸맞은 아이로 자라야 한다. 그래서 유원에겐 늘 언니 ‘유예정’이 따라붙는다. 친구 없이 ‘혼자’가 편했던 유원은 사실 혼자가 아니라 언니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지만 자기만의 삶이 없었던 유원.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유원은 ‘온전히 혼자’가 된다. 이제 언니와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 감당이 안 되는 점령자가 아닌, 용기를 배우고 싶은 존재로, 미움에 익숙해 안쓰러운 존재로 뒤바뀐다. 혼자가 되니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유원의 시간들을 어떠한 이유나 바람 없이 진심으로 축복해 주고 싶다.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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