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말하고 싶어 - 에바 린드스트룀 그림책을 읽고 ⓵

    어릴 때 손바닥과 발바닥에 무엇인가 묻히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래서 과자가 아무리 욕심나도 양껏 손으로 확 움켜쥐지 않았다. 대신 과자를 손끝으로 살짝 집어 올려 아주 빠른 속도로 먹는 건 자신 있었다. 그래야 동생보다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로션도 손바닥에 쭉 짜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손등에 살짝 넘치지 않게 짜서는(양 조절이 관건이다. 만약 실패하면 물컹한 로션이 손바닥으로 침범하고 만다!) 고양이가 앞발로 얼굴을 세수하듯, 나도 손등으로 얼굴을 조심조심 문질렀더랬다.   
    그뿐인가. 샤워를 하거나 발을 씻고 나오면 물 묻은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싫어서 최대한 발 가장자리로만 체중을 싣고 뒤뚱뒤뚱 걸어서 간신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가끔 샤워를 하고 나오거나 발을 씻고 나오면 그럴 때가 있다. 아직 이 습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러했던 이유가 깔끔해서였을까? ,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주 조금.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냥이다. 그냥 손바닥 발바닥에 무엇인가 이물감이 느껴지는 게 싫었다. 그럴 수 있다. 이제야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인정하고 이해해준다.
    그런데 얼마 전, 나와 비슷한 아이가 나오는 책을 만났다. 그래서 이번 화에서는 그 책과, 같은 작가의 또 다른 그림책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딱 두 권이라.) 두 책 다 참 마음에 들어서 작가 초상화도 그려보았는데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쿨럭.

    우연히 발견한 스웨덴 작가 에바 린드스트룀의 그림책은 우리나라에 <모두 가 버리고><나는 물이 싫어>, 이렇게 두 권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왜 이제야 이 작가를 알았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시선과 깊이에 푹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나는 물이 싫어>부터 이야기해보면, 너무나 통쾌하게 첫 장부터 말해버린다.(아니, 표지에서부터, 제목부터!)

내 이름은 알프. 나는 물이 싫어.

    주인공 알프는 물이 싫단다. 개울도 시내도 바다도 수영장도 밀물도 모두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하지만 알프는 친구들 모두 물놀이와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거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력한다. 카누도 타려고 하고 수영장에도 친구들과 같이 가긴 한다. 하지만 물과 친해지기는커녕 --말 싫어.”란 확신만 뚜렷해질 뿐이다.  
    그러다 겨울이 오고 모든 물들이 얼어버리자 드디어 알프도 썰매를 타고 타고 또 타고 타고 또 타고 타고할 정도로 그 시간을 즐긴다. 타고 타고 또 타고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즐기고 또 즐기고로 읽힌다. 알프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러니 썰매를 타고 또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탔던 좋은 기억 때문에 결국 물과 친해졌어요. 친구들하고도 더 재미있게 물에서 놀았고요.’로 끝날까? 아니다. 다시 해가 빛나고 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손을 번쩍 들 때 알프는 한 구석에서 커다란 썬베드 튜브에 펌프로 바람을 넣고 있다. 그리고 그림책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른 친구들은 물놀이를 하는데 나는 행복해.
나는 내가 개구리가 아니라서 너무 기뻐.
너무너무 좋아.
나는 물놀이를 안 해도 돼.

    싫어하는 물을 극복해서 행복하다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외려 헤엄쳐 다니는, 물에서 사는 개구리가 아니라서 너무 기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물놀이를 하는데 나는 행복하단다. 물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물을 싫어하는 나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놀이를 안 해도 돼.”라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안 해도 될까?’가 아니다.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다.
    와! 나는 이 책을 다양성이란 카테고리에 꼭 넣고 싶다. 모든 책을 어떤 분류에 넣을 필요는 없지만 이 책만큼은 다양성 영역에 꼭 넣고 싶다. 얼마나 멋진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할 권리. 그리고 그 권리를 지지하는 작가의 글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그림책. 널널한 듯 꽉 찬 그림 안에서 유영하는 새로운 감정의 씨앗을 발견하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은 평론가는 비중과 가치에 대해 다루는 것이 곧 다양성이라고 했다. 이 그림책은 그 비중과 가치안에 또 하나의 시선을 추가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딸아이와 잠자리에서 <나는 물이 싫어>를 함께 봤을 때 알콩이(등장인물 소개한 뒤 처음 등장한 딸)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니. ? 왜 물이 싫어? 왜 싫은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알콩이의 표정과 말투.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더 혼란스러워하는 알콩이. 그렇게 책을 덮고 누워서 한참 동안 이 책 이야기를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데 다른 사람은 왜 싫다고 하지, 라는 질문 속에서 피어나는 씨앗들이 자라고 자라서 비중과 가치라는 너른 들판에 새로운 나무 하나가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딸과 함께 읽어서 참 행복했고, 기뻤고, 너무너무 좋았다.(알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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