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대출

    건축가 유현준은 그의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얼마나 큰 도서관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작더라도 얼마나 촘촘하게 도시 내에 분포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서가 되기 전에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도시에 커다란 ‘○○중앙도서관’만 있어서 도서관은 그냥 그렇게 커야‘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보면 쭉 진열된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의 이미지만을 보고 자라 도서관은 근엄하고 딱딱한 공기가 흘러 ‘절대 정숙’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나도 모르게 뿌리내려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통 인터넷이나 대형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샀고, 도서관은 책들을 검색해 빌려오는 게 전부였다. 한마디로, 도서관이란 공간에 대한 향유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작은도서관 사서가 되고 나니, ‘얼마나 촘촘하게 도시 내에 분포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느낀 실감은 도시 내 도서관의 밀도만이 아니었다. 당연히도 도서관 안엔 그 공간을 무형의 것들로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촘촘한’ 정성과 노고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촘촘한 밀도감이 무엇인지와, 이런 밀도감이 나오기 위해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아주 잠깐 발을 담근 내가 감히 얘기해 보려고 한다.

    ‘(사)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라는 곳이 있다. 1998년에 창립된 민간 비영리 단체이다. 보통 ‘협회’라고 불리는 곳과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뭔가 딱딱하고 고지식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협회는,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뭔가 다른 낌새를 느꼈다. 저 짧은 명칭과 소개 안에 왠지 든든하고 단단한 믿음이 깃들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오랜 시간 스스로의 힘으로 버틴 공동체이자, 커다란 나무처럼 전국에 있는 ‘어린이’와 ‘작은도서관’들을 위해 그늘이 되었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와 ‘작은도서관’이란 조합은 세상에 그 많은 것들 중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깨닫고 그 중요한 것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뿌린 씨앗 같았다. 씨앗이 없으면 나무도 없고 꽃과 과실도 없다. 그러니 무척 중요하지만 너무 작기에, 땅속에 뿌리내려야 하기에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씨앗의 다른 이름이 연대이자 돌봄인 걸 안 사람들이 잘 드러나지 않아도 기필코 이 일을 하겠다, 작심했기에 전국에 작은도서관들의 밀도가 정말로 촘촘해지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튼, 작은도서관 사서가 되고 한 여러 가지 일 중에 이 협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회원 워크숍에 참여한 것도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입사하고 첫 해, 회원 워크숍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1박 2일 일정이었고 그해 테마는 ‘휴’였다. 1박 2일 동안 충분히 잘 쉬고 오면 되겠거니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료들과 함께 공기 맑고 숲이 우거진 워크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짐을 풀기가 무섭게 우리는 강당으로 모여야만 했다. 갑자기 체조를 시키고 운동회를 한다는 것이다. 아, ‘휴’라더니 첫 시간부터 운. 동. 회. 라니! 운동회라는 단어가 태곳적 신화처럼 참 낯설게 다가왔다. 적지 않은 나이인 40대 초반이었던 나는 쭈뼛대며 그 시간을 적당히 때우려고 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난 젊은 축에 속했다. 50대로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더러 60대처럼 보이는 분들도 계셨다. 청주 한 도서관에서 오신 관장님은 사람들이 자꾸 ‘삼엽충’이라고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작은도서관계의 삼엽충’이었다.
    그러니까, 작은도서관계의 삼엽충이라신 분도 몸을 날려 강당을 휘젓고 다니는데 이제 갓 태어난 사서인 내가 공벌레마냥 계속 몸을 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몸을 쓰는 게 익숙해지더니 어린이가 된 것처럼 뛰고 넘어지고 구르며 그 시간을 즐기게 됐다. 땀까지 흘리며. 그러다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 얼굴을 보게 되었다. 모두 함박웃음을 띠고 있었다. 게임에 져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 깔깔깔 소리 내 웃는 사람,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는 사람, 심지어 바닥에 뒹굴며 자지러지게 웃는 사람까지 강당 안은 금세 후끈한 열기로 달아올랐다. 오랜 시간 ‘어린이’와 ‘작은도서관’에 몸담고 있으면 저런 표정과 몸짓이 나온다는 것을, 그날의 순수한 열기가 증명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몸을 쓰는 첫 시간이 끝나자 강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강연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모둠별 토론까지 한다고 했다. 아, 테마가 ‘휴’라더니. 그런데 슬그머니 생긴 불만이 쑥 들어가 버렸다. 정말이지, 이런 열정과 순수한 마음으로 했던 토론과 워크숍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진정성 있는 시간으로 꽉 채워졌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한뜻으로 모여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은, 그것도 작은 것들의 시작을 준비하는 일이란 게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어른들이 만나서 하는 부동산, 투자, 주식, 아이들 성적, 대학, 학군 얘기가 아니라 지역 내 작은도서관과 자기가 꾸리는 프로그램과 지역 공동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을 하고 저녁을 먹고 씻으니 밤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이젠 정말 쉬겠거니 했는데 그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진짜 이야기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배정받은 방으로 가서 씻고 나오니, 방바닥에 커다란 전지 두세 장과 매직펜이 놓여 있고 같은 방에서 함께 잘 분들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이제부터 각자 도서관의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 조언과 도움을 주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아, 밤 9시에!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98년 이래, 아니, 협회가 이때 창립한 거니 이런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기 전부터 얼마나 많은 고민과 행동으로 이 자리까지 왔을까, 란 생각이 미치자 바로 오늘과 같은 자세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해 워크숍 테마가 ‘휴’인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분들에겐 이것이야말로 쉼이겠구나, 란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나는 반은 졸음과 반은 신성한 마음으로 도서관의 삼엽충과 알타미라 벽화 같은 말들을 탁본을 뜨는 마음으로 들었다. 그 말들은 멀고도 먼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들렸고 정말 전설 같았다. 전설 같은 이야기를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 시장 안 오래된 건물 3층에 위치한 작은도서관에서 오신 한 관계자분은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도서관에 와서 책도 읽고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사랑방처럼 담소도 나누게 할까, 고민하다가 밖으로 나가 일일이 홍보를 했더랬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효과는 미비했다. 현실의 벽을 뚫기 힘들었던 것이다. 시장 상인 분들이 ‘장사’라는 생업에 매여 자리를 이탈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이분이 생각해낸 것이 찾아가는 ‘리어카 대출’이었다. 시장 상인 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 또는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큐레이션해 리어카에 가득 싣고 맞춤으로 책 배달을 다녔다는 것이다. 턱을 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잠이 확 달아났다.
    그다음에 이어진 이야기도 놀라웠다. 오래된 골목에 위치한 또 다른 작은도서관 역시 ‘어떻게 하면 동네 사람들이 도서관에 오게 할 것인가?’ 고민, 고민하다가 오지 않으면 가면 되지, 란 마음으로 책을 가득 들고 미용실을 찾아간다. 책꽂이까지 준비해서! 책꽂이에 가지런히 직접 꽂아 대출해준 책들은 15일이나 한 달 간격으로 바꿔서 큐레이션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정말이지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삶 밀착형 큐레이션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안달하지?
-왜 이렇게 어렵게 살지?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내 건너편에 앉아 있던 도서관계의 삼엽충 친구쯤 되시는 분이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서 할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니까. 하하.” 그 말투와 표정은 뽐내는 자신감도 아니었고 불만도 아니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자의 눈빛과 말투였다. 몇 년이 지났지만 이분의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리어카에 가득 담고 시장을 누빈 책 배달 이야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서 이렇게 글 끝에 매달리듯 나오지만, 제목으로 정한 것이다. 이 ‘리어카 대출’이 작은도서관 활동의 뿌리가 되는 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거의 무보수로 일하는 이분들의 사회적 지위는, 얼마 받고 일하는지가 너무나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단단한 자존감과 자부심이 있기에 리어카에 책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마지막 날에 부족하나마 이분들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기쁘다.
    큰 도서관이 위용을 뽐내며 떡하니 있는 것보다 작은도서관들이 작은 불빛들을 빛내며 아주 작은 데까지 퍼지길 바란다. 그럼 그곳은 분명 환대의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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