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어린이도서관은 일주일 중 6일 동안 문을 열었다. 이 6일 중 5일을 도서관에 오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오늘은 그 아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 아이가 도서관에 오는 날이면, 모든 배경이 희미해지고 공간이 음소거가 된다. 이용자가 많을 때도, 적을 때도 그 아이만 등장하면 오로지 그 아이만 보인다. 간단히 목례만 하고 서가 쪽으로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늘 눈으로 좇는다. 언제 왔냐는 듯이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서다.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책장 넘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럴 땐 꼭 잠자러 온 바람 같다. 하지만 대체로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도서관에 온다. 살금살금, 사뿐사뿐, 인간 세상에 잠시 놀러온 고양이 같다. 놀러오긴 했지만 종이 다른 동물들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으므로 조심스럽고 낯설어한다. 그래서 바람 같고 고양이 같은 아이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보통의 또래 아이들과 조금은 다르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 아이의 시간에 내가 들어간 것만 같다. 그러다 너무 조용하게 느껴지는 순간엔,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를 찾으러 서가 쪽으로 간다. 이땐 나도 바람처럼 고양이처럼 움직인다. 그러면 아이는 납작 엎드려 책에 코를 박고 활자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해 들여다보고 있다. 또 어떤 날엔 몸을 잔뜩 웅크리고 구석에 붙어 있을 때도 있다. 이럴 때의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 보인다. 그 무엇도,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해방된 모습이다. 마치 하루 종일 인간 노릇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내’가 되어서 마음껏 몸을 말고 엎드리고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아이는 근처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이 와도 말을 섞는 일이 거의 없다. 재잘거리는 여자아이들 틈에 끼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가끔 어떤 남자아이랑 게임이나 로봇 이야기를 할 때가 있지만 이건 정말 ‘아주 간혹’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어느 날, 동그란 미소와 환한 치아를 드러내며 꽤 길게(그래봤자 10분 정도다.)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자기가 만든 캐릭터가 사는 상상의 세계다. 상상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아이는 꽤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상상 세계에서 절실함을 보았다. 너무나 특별해서 꼭 안아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은 세상이었다. 이날만큼은 아이의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럼 그 특별함은 무엇일까? 상상력이 뛰어나서? 그림이 멋져서? 둘 다 아니다. 그 아이가 상상의 세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왜 남들과 다르지, 남들은 무리를 짓는데 왜 나만 혼자지, 그런데 난 왜 이런 지구에 ‘지금과 같은 나’로 태어났지, 나는 왜 다르게 생각하지, 나는 왜 어울리지 못하지, 라는 끝없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아이의 말이 아니라 내 상상이고 미루어 짐작이다.) 그러다 책을 만나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나 외계인이나 고립된 자들이나 섬에 갇힌 자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책이 도피처이자 위로자이고 치유의 공간임을 알아차렸으리라. 물론 이런 구체적인 단어로 알아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설명이 되었을까? 한 아이가 있고, 이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는 사서가 있다. 어느 날, 아이는 사서에게 자기의 상상 세계를 보여준다. 그 세계 안에는 아이와 비슷한 동물과 외계인들이 가득하고 모두 본능대로 살지만 행복하다. 그 세계를 잠시 잠깐 들여다본 사서는 그 아이가 되어본다.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가 상상하는 세계는 어떤 위안을 줄까?’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사서는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그때 읽었던 책과 자기만의 공간도 떠올린다. 그러다 이 아이에게 날마다 오는 도서관이 어떤 의미인지 곱씹는다. 그러니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아이를 위해서 어린이도서관은 꼭 필요하다.’
   
어떨 땐 하교를 마친 아이들이 우르르 왔다가 썰물 빠지듯 싹 빠져나가고 갑자기 적막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때 조용히 이 아이가 도서관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그 공간에 아이와 나만 존재한다. 그럼 난 다시 아이의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문득 아이 생각에 서가로 가기도 하고, 아이가 말해준 상상 세계를 떠올리며 그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기도 한다.
   
이때만큼은 ‘미루어 짐작’이란 말이 얼마나 큰 배려의 마음인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배려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아이의 시간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함을 아는 것이다. 아이가 세상의 모든 소리들로부터 음소거를 누르러 도서관에 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도 아이와 함께 음소거 버튼을 누른다. 알은척도, 질문도, 때론 안부 없이도 아이와 그 시간을 함께할 수 있음을 배운다.         

댓글(2)

  • 2022.01.14 16:04 신고

    안녕하세요. 파이채굴러입니다.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들어왔는데,
    포스팅 진짜 잘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배워갑니다.
    시간되실때 제 블로그도
    한번 들려주세요.🤗🤗🤗

  • 익명
    2022.01.15 09:1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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