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판타지


    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그중 아이들과의 만남은 당연하게도 나를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간다. 지금의 어린이들을 보면서 내 안의 어린이를 바라보는 건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보통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는 건 마음이 순수해지고 어려진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외려 늙은이가 된 것처럼 마음이 고단해진다. 그런데 이런 고단한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얼마 전 ‘찾아왔다.’ ‘있었다’라고 하지 않고, ‘찾아왔다’라고 한 건 그만큼 그 사건이, 그 한마디 질문이, 운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날마다 도서관에 오는, 나보다 두 살 위인 운영위원님이 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 여자 형제가 없는 내게 그녀는 친정언니 같은 존재가 되었고, 그러다 그 언니 집에서 밤새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밤은 참 이상하다. 특히나 여름밤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아주 깊은 밤, 베란다에 놓인 캠핑 의자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은 평소의 나라면 이제 막 친해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이 말들을 당시 다 쏟아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꼭 그 언니한테 말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밤에 취해, 내 어린 시절의 고단함을 덜고자, 끌어안고자, 어린 나를 달래듯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소리는 ‘아빠의 발소리’였다. 밤에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언제쯤 아빠의 발소리가 들릴까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빨리 그 소리를 들어야 잠을 자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지기 때문에 나는 밤마다 10시 전에 아빠의 발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쿵쿵. 드디어 계단을 오르는 아빠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어린 나는 가늠한다. 아빠가 얼마나 취했는지. 그 비틀거리는 소리에 안심하기도, 두려움도 느낀다. 그리고 또 가늠한다. 오늘은 몇 시간짜리일까를. 노랫소리가 들리면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렇게 발소리 이후에 문을 쾅 여닫는 소리가 들리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펼쳐지는 악다구니와 술상을 봐오라는 소리와 강제 취식과 욕설이 지겨운 래퍼토리처럼 이어졌다.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날엔 엄마와 그 밤을, 그 집을 탈출했다. 엄마와 나는 아빠를 피해 뛰었다. 있는 힘껏 뛰었다. 가끔 술이 덜 취한 아빠가 힘차게 우리를 뒤쫓는다. 그러다 신발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이때 여관이라는 곳을 처음 가봤다. 아빠가 우릴 때린 적은 없다. 하지만 밤새도록 이어지는 아빠의 폭언과 칼 가는 소리와 불 지를 거란 협박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아빤 밤새도록 깨어 우리를 힘들게 하고 낮 동안엔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할퀴어진 마음과 몸으로 간신히 다음날을 맞은 엄마는 일터로, 나는 학교에 가야만 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적고 나니, 무안해진다. 나는 아직도 이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참 짧고 서툰 표현들이 어색하게 나열된 꼴처럼 여겨져서다. 아마 그날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힘든 이야기는 데자뷔 같다. 드라마를 볼 때도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겪는 불행 이야기는 어디서 본 것처럼 식상하게 느껴진다. 내 어린 시절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아마 그럴 것이다. 식상하고 지겹다. 그래서 나는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내 어린 시절을 따로 떼어내어 상자 안에 담고 잘 잠가놓았다. 이 얘기는 너무 뻔하고 뻔한 불행 이야기라 남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아예 그 상자를 묻어버렸다. 그리고 독립하면서부터는 아빠에 대해서도 차츰 기억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요양원에 있는 아빠의 존재를 애써 떠올리지 않는다.

    나의 판타지는 여기부터 시작이다. 그날 밤, 어찌하다가 내 어린 시절 말고도 아빠의 월남전 참전 얘기도 그 언니에게 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언니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날마다 술 드셨던 게 그때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아니에요. 아빠 말로는 취사병이어서, 그리고 자원해서 갔더니 그 부대 높으신 분이 우연치 않게 친척 형이라서, 총 들고 베트남 군인들을 만난 적은 없대요.”
    나는 머뭇거림 없이 말했다.
   
하지만 내 기억은 이미 30년 전 어느 날로 날아갔다. 나는 평생에 딱 한 번, 아빠한테 베트남 참전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얘기가 바로 취사병이어서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무사히 귀국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말을 30여 년 동안 굳게 믿고 있었다. 술 취한 아빠가 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술 취하지 않은 아빠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술 취한 아빠는 속에 있는 온갖 말들을 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순간, 내 상상력의 부재에 너무나 놀랐다.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이 딸에게 들려준 전쟁 얘기가 단 한 번이었는데, 취사병이어서 총을 안 만져봤다, 라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니. 아무리 취사병이었다고 해도 어떻게 함께 생활하던 전우들의 잘려 나간 팔다리와 흘린 피와, 베트남인들의 아우성을 못 들었을까.
   
그래서 나는 상상한다. 상상할 수밖에 없다. 아빠한테 그날의 기억들을 다시 묻는 상상. 딸로서가 아니라 제 3자로서, 아니, 슬픈 역사에 빚진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어떻게 그 긴 시간을 통과했는지 묻고 싶다. 하지만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아빠에게 이게 가능할까. 불가능을 먼저 생각하는 내게 이건 정말 꿈같은 일이다. 게다가 나는 아직 아빠를 용서하지 않았고 아빠도 내게 용서를 구한 적이 없지 않은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예상을 깨며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건’을 담은 것이 판타지이다. 그래서 다음에 올 마지막 문장은 내게는 신비로운 주문 같은 말이다.
   
“내 인생에도 한 번쯤은 판타지 같은 일이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 판타지의 주인공은 바로 아빠와 나이길.

댓글(1)

  • 익명
    2022.01.28 17:5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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