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이야기가 상처를 치유한다 - 청소년소설 『몬스터 콜스』를 읽고


    사서의 역할 중 하나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좋은 이야기가 담긴 글일 것이다. 그럼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대답에 관해서는 아주 오래 전 권정생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고 싶다. 권정생 선생님은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남기셨다.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이 인터뷰를 접한 이후로 좋은 글은 곧 불편한 글이란 등식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지금 소개하는 책 역시 이런 불편함이 점령하고 있으며, 내 삶의 불편함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로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내용은 무겁고 아프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소개한다.

 

    나의 이야기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 세계가 무너졌다. 그래서 나도 몬스터를 부른 적이 있다, 코너처럼. 코너에게 몬스터가 주목의 형태로, 그러니까 독이 든 열매를 가지고 찾아왔듯 나에게도 독이 든 열매를 가지고 ‘나의 몬스터’가 찾아왔다. 

    한 번은 고등학생 때 휴학을 한 적이 있는데 다시 복학하니, 선생님들도 한 살 어린 후배들도 나를 모두 배려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숙제를 안 해 가도, 수학문제를 못 풀어도, 야자를 빼먹어도 나는 늘 ‘봐주는’ 대상이었다. 물론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 모멸감을 안겨준 셈이었다. 어떤 것도 나에게서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나로 하여금 패배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물론 그때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기분 나쁜 감정의 잔재만 남아 있었지만. 그래서 몬스터를 불렀다. 하지만 코너처럼 이야기의 결말, 즉 진실을 제대로 대면하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만을 탓하면서 내 안에 몬스터를 가두며 흐지부지되었다. 예상했겠지만, 이때 가두었던 몬스터의 모습은 (희미해지긴 했을지언정) 지금도 나를 ‘당연히’ 따라다니고 있다. 고등학교 1년을 쉬었다고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시엔 무슨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저들과 결국엔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불안에 시달렸다. 물론 겉으론 의연한 척했지만.  

    또 한 번은 오랜 시간 투병했던 할머니를 돌봤을 때 몬스터가 찾아왔다. 15년 동안 풍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나를 자주 인내의 실험대에 올려놓았다. 결국엔 치매까지 와서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와 이불을 갈아야 했고 할머니한테 목이 쉬도록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면서 난 끈질기게 밤마다 기도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루 속히 할머니를 데려가달라고. 그러다 정말 내 기도가 이루어진 순간이 문득 찾아왔다. 할머니는 며칠을 온갖 배설물을 몸 밖으로 쏟아내더니 모든 감각이 무뎌져갔다. 그리고 이때 진실에 직면했다. 나의 모순된 진심.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건 할머니 때문이 아니고, 병 때문인 걸 알면서도 죽도록 할머니가 미웠던 기억.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꽤 오랫동안 나는 꿈속에서 할머니 밥을 차려드리지 못해 허둥댔고, 할머니는 빨리 밥을 달라고 보채는 상황에서 잠이 깨곤 했다. 이 같은 죄책감의 연유는 짐을 아직 내려놓지 못해서일 것이다.

    『몬스터 콜스』를 처음 읽었을 때나 다시 읽은 지금에도, 이 이야기는 (몬스터가 코너에게 그랬듯) 나의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사납고 놀라운 이야기, 거부할 수 없는 이야기의 힘으로 나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소환하게 한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날것 그대로의,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속 풍경을 샅샅이 살펴보게 한다. 진실의 직면은 몬스터를 만난 것처럼 두렵고 소름끼치지만 결국엔 받아들이는 맷집을 길러줬다고 해야 하나? 독인 든 열매를 품고 있는 주목이 코너의 상처를 치유했듯, 나의 몬스터 역시 도려내거나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결국 치유의 약으로 탈바꿈해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내성을 기르도록 해주었다.

  

    이야기의 무게는 같다 

    몬스터는 세 이야기를 코너에게 들려준다. 코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책 『몬스터 콜스』도 나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너의 몬스터가 무엇인지 들려달라고 요구한다. 사악한 마녀가 구원받는 이야기, 믿음을 저버린 목사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게 되었을 때 어떻게 더 외로워질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삶의 아이러니와 본질,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작은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들려준다. 마녀가 구원받은 이야기나 코너의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나 결국 삶의 무게는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진실은 속임수처럼 여겨질 때가 많고,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 말해준다. 그래서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깊은 위로를 선사한다. 인간에 대한, 여기에 더해 어린 나이에 삶의 무게와 죄의식에 휘청거리는 아이에 대한 이해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255쪽)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면 걷지 않는 몬스터를 걷게 만든 것이 바로 ‘이야기’라는 설정이다. 그리고 몬스터가 코너를 찾아와서 결국 한 것도 오로지 ‘이야기를 들려준’ 것뿐이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이야기만을 하고 이야기를 하게 만듦으로써 코너를 화나게 했고, 혼란스럽게 했으며, 파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진실을 직면해 상처를 치유하도록 했다. 몬스터가 치유한 것이 아니다. 코너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코너 자신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소설 이후의 이야기에서 코너는 ‘생활글’ 숙제를 해냈을 것이다. 그동안 엄마의 병 때문에 자신의 일상을 포기해야만 했고, 이런 일상이 포기되자 엄마 손을 놓고 싶었던 코너는 몬스터를 부름으로써 진실을 직면한다. 자신의 현재가 어떠하며,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들여다본 코너는 이제 드디어 다른 아이들처럼 ‘일상’에 발을 들여놓았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의 무게는 같다. 그러하므로 삶의 무게도 같다. 『몬스터 콜스』의 대단한 점은 나의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데 있다. 나의 이야기 역시 왕손이나 약제사의 이야기에 뒤지지 않으며 코너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종국엔 ‘위대한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은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세계를 구원하고,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온갖 모험을 통해 적을 무찌른 이야기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을 위한 이야기가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위로가 되며,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동안 나온 죽음을 통한 성장 이야기 대부분이 섬세함과 눈물과 비통함으로 채워졌다면, 이 정도의 사나움과 독창성을 가지고 독자들을 압도한 작품은 없었기에 가히 괴물과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코너가 보이는 존재로 살아가기 하기 위하여, 죄의 진실은 무엇인지 보게 하기 위하여 몬스터는 걸어왔다. 이것이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자, 이제 당신의 삶과 죽음의 문제는 무엇인지, 어떤 몬스터를 초대할 것인지 이 책 『몬스터 콜스』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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