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드라마 에는 주인공 킬러인 빌라넬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한 여성 킬러가 등장한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그는 ‘깨끗하고 윤리적인’ 그만의 방식을 사용할 뿐 아니라 늘 투명하게, 소리 없이 움직인다. 여기서 투명과 적막의 핵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그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배경처럼 그곳에 있기다. 영화의 이런 내레이션에 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다름 아닌 여성 청소노동자다. 철벽같은 보안이 구비된 기업체라 해도, 비슷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청소노동자를 진짜, 가짜로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아니, 가려내거나 신경 쓰는 일 자체가 불필요하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고, 침묵하며, 자세를 낮춰 걷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그들이..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는 것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조심스럽다. 예전에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좀 지나면 나아질 것이란 생각으로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러면 어찌어찌 친구나 연인으로 진척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안 좋은 형국으로 끝이 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조심하다가 아예 누군가와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별로 내키지 않는 어두운(예를 들면, 암울한 미래를 다룬) 내용의 영화를 평단의 호평이나 영화제 수상을 이유로 본 적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거의 보는 내내 내상이 쌓여 정신이 피폐해진 채 끝나곤 했다. 현실적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인 때는 그런 영화가 주는 여파가 크지 않지만, 요즘처럼 전 지구가 특정 감염병으로 지쳐 있는..
사건의 시작 사체가 발견된 것은 지난밤이었다. 마지막 퇴근자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문득 로비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체는 놀라울 만치 깨끗했지만,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곧 경찰이 도착했다. 왜, 누가 사체를 그곳에 두었는지, 어떻게 그가 죽었는지에 대해 대중의 관심의 집중됐다. 사체는 신원불명이었고, 기이한 것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이 사체의 부검 결과였다. 내상으로만 판단했을 때, 이 사체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어야 했다. 사지는 아무렇게나 절단되어 있었고, 여러 차례 찔린 듯한 자상으로 인해 장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얼굴은 기묘하게 어그러져 있었는데, 매치되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외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전날 회의에서 여러 차례 ..
2008년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해에,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 둘을 맡기면서까지 직장을 다니는 것이 수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시에는 경제적 계산 때문인 거라 여겼다. 남편 월급이 내 월급보다 많았으니까 내가 그만두는 게 맞다고.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엄마니까, 여자니까 내가 그만둬야 하는 거였다. 한 가족 단위에서 누군가 하나 직장생활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여자가 집에 ‘들어앉아야’ 했다. 가장인 남성이 ‘가족임금’을 수령하고, 일개 아내일 뿐인 여성은 그에 종속되어 무임금으로 돌봄노동과 육아를 맡는 게 당연했다. 보이지 않는 이러한 억압을 당시에는 몰랐거나, 모르는 척 했다. 첫 아이 출산 때는 몸과 마음 모두 회복이 빨랐다. 돌아갈 직장이..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XX염색체 소지자에게 특화된 훌륭한 토양의 영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어려서부터 불만이 참 많았습니다. 불만투성이 인생이다 보니 이놈의 세상이 대체 어디서부터 글러먹은 건지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사회학을 복수전공했는데, 그로 인해 형성된 사회학 전공자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어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본인의 것을 뺏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선택적으로 둥글둥글한 다수결 신봉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문제점과 위계관계에 대해, 전공을 살려 학문적으로 진단한 사회학 교수님의 책을, 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광대가 하늘높이 승천한 것도 모른 채 후루룩 읽어버렸습니다. 프롤로그의 ‘읽으면 우울해지는 글을 쓸 것이다’..
요즈음 잇몸이 시린 정도가 아니라 냉장고에서 갓 꺼낸 반찬을 한입 씹고는 몸서리를 치는 수준이라 치과를 갔더니, 치경부마모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칫솔질을 가로로 하는 경우(a.k.a 차인표의 ‘분노의 칫솔질’) 잇몸이 파이면서 생기기 쉬운 질환인데, 내 경우는 두통 완화 목적으로 한 교정치료 과정에서 잇몸에 파묻혀 있던 치아의 뿌리가 드러나는 부작용 때문이라고 했다. 칫솔질만큼은 일찍부터 제대로 배웠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배웠다기보다는 관찰해 스스로 터득했다고 해야 하나? 할아버지가 칫솔질을 마치 신성한 의식마냥 정성 들여서 하던 모습이 칫솔질을 할 때마다 떠올라서, 이를 닦을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결코 의도하지는 않은 건조한 연상작용에 불과하지만.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지난 가을, 첫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를 냈다. 시집 제목은 시집의 가장 마지막에 놓인 시 에서 따왔다. 출간을 앞두고 시집 제목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어느 하루, 운명처럼 이 그림책을 만났다. 경의선책거리의 한 책방에서였다. 당시 책방지기는 번역도 하고 출판도 하는, 내가 신뢰하는 어떤 선생님이었다. 시집 제목을 ‘치마’가 들어간 이 제목으로 바꾸려 하는데 괜찮은 생각인지 확신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선생님은 별안간 등을 훽 돌리더니 울긋불긋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시집 제목 너무 좋아요. 이 그림책이 당장 떠올랐거든요. 이 책, 놀랍지 않아요?” 맑고 높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더 높게 날아올라 새의 부리처럼 책방 천장을 콕콕콕 두드렸다. 나는 재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선생님의..
by soon 유영순 서울에서 마산으로 내려오는 열차에서의 추억여행코로나로 인해 조금은 한산해진 열차내 옆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문득 앞자리 젊은이들에게 눈길이 간다연인인지 부부인지 손을 만지고 뺨을 부비고 화장실도 따라가준다 나 젊을 때를 생각해본다우린 겉옷으로 팔을 덮어두고 손을 잡곤 했었지이들도 한 명이 윗도리를 벗어 덮어준다이 나이에 부럽기도 하고 보기도 좋다 남진과 윤복희가 사랑하므로 헤어진다고 했을 때우리도 사랑하니 헤어져야겠다고 다투다가영도 태종대로 향하던 버스에서 말도 없이 급히 내려버렸다 그땐 자가용도 휴대폰도 아니 가정집 전화도 귀하던 시절내가 내린 정류장으로 뛰어오는 모습 봤을 때쌤통이라고 생각하며 웃음 지었다 1979년 10월의 어느 날부산에서 진주 가는 시외버스 안 옆자리 사람비슷..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노래를 지어 장안에 퍼트린 서동처럼, 이런 설화를 세간에 퍼트리고 싶다는. 「이 세상을 짓기로 결심한 신은 삼라만상을 있게 한 뒤 마지막으로 인간을 빚었다. 한 인간은 여자로, 다른 한 인간은 남자로 이름하였다. 신의 실수였는지 무능의 소산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어느 날 남자로도 여자로도 이름 지을 수 없는 인간이 태어났다. 너는 나의 아이가 아니로구나! 조리에 어긋난 탄생에 의구심을 느낀 신은 이 ‘이상한’ 인간을 세상 밖으로 내쫓았다. 더불어 ‘이상한’ 인간에게 그가 지은 세상이라면 그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저주를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지. 인간은 죽지도 않고 오래도록 걸으며 보았다, 계속해서 이름-바깥의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신..
어려서부터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나보다 3년 일찍 태어난 엄마의 아들 때문에 인생 첫날부터 줄곧 입은 옷이 당연하게도 바지 일색인 것이 지겨워 ‘이왕 옷을 물려 입어야 한다면 치마를 입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도 한몫 했고요. 언제든 내 편인 동성의 동년배 인생선배가 있다면, 친구와 이야기할 때 어느 정도 요구되는 자기검열을 내려놓고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테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울까 싶어 엄마에게 언니를 만들어달라며 조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나름대로의 고충을 토로하며 ‘상냥하고 다정한’ 오빠에 대한 판타지를 풀어놓았고, 그렇다면 우리 서로 집에 있는 생명체를 교환하는 게 어떻겠냐며 실없는 거래를 제안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잠깐일 줄 알았던 언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