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은 있는 그대로를 나누는 사랑을 했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직감은 했다. 우리는 언어적 소통을 통한 관계 이상의 관계가 될 거라는 것을. 그와의 첫 만남, 노래방에서 음정을 틀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부하고 또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의 영혼을 보았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보였으니까. 서툴고 솔직하고 그래서 이리저리 다쳤지만, 그런 그의 모습 그대로 여지껏 살아남은 그의 영혼이. 아니,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으론 내가 본 것이 다 담기지 않는다. 마치 사과의 맛을 아무리 언어로 표현한다 한들 그 맛이 느껴질 수는 없는 것처럼.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발견과 소통을 나눈 관계, 그와 나의 사랑이다.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뭐지, 이 온도 차?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다. "한국 영화"라는 장르 하나가 생겨도 좋을 만큼 한국 영화의 소재 및 서사는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 영화인이 배제된 소위 '알탕 영화'들이 매번 다른 제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환경 탓도 있겠지만, 정형화된 남성 중심 서사의 시장 공급에 문제가 될 만큼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남성 중심 서사/여성혐오 영화에 대한 폐기를 주장하는 비판 여론이 강하게 일면서, 한국 영화판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조금씩 시장을 넓혀가면서, 지난해 하반기에는 , , , 등의 다양한 여성 서사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는 국내외 ..
앞선 글 ‘#19 연말의 대전쟁’을 쓰고 처음 보여준 사람은 애인이었다. 당사자가 보기에는 너무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쁜 일을 서로에게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오히려 소외시키는 거라고 강조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전할 말과 못 전할 말이 있는 게 아닐까 고민스러웠다. 그 글을 읽으면 분명 나와 헤어지겠다고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설사 헤어지겠다고 하지 않더라도 내 부모님이 본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니 속상할 것이었다. 누군가 나를 탐탁치 않아한다는 것도 그다지 기분이 안 좋은데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 그렇다면 더욱 마음이 아플 터였다. 그런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하다니 가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
하루는 코가 빨갛게 달아오른 손님이 등장했다. 풍기는 냄새와 흐느적거리는 몸사위에서 그의 코를 빨갛게 만든 건 이미 물러간 추위가 아닌 알코올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꽤 취해보였음에도 자연스럽게 소주를 한 병 집었다. 이 매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술에 취해 진상을 부리는 손님을 만난 적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이 다행스러운 일이 지금 앞에 서 있는 코 빨간 아저씨로 인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긴장된 마음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어 가며 소주를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그는 또 자연스럽게 딸깍하고 소주 병을 땄다. “저기, 손님… 여기는 편의점이라 실내에서 술을 드실 수 없어요. 저기 밖에 테라스에서는 가능한데…” “아가씨, 나도 알아요. 뭐!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봐서?” 아, 네. 그렇..
삵은 자신을 채워줄 사랑을 했다. 우리는 많이 아팠다. 새빨간 나와 새까만 그. 열아홉의 우리는 서로를 만나 보듬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며 같이 자랐다.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처럼 도로 위에 누웠던 기억, 밤거리를 밤새 함께 걷던 기억. 거친 싸움과 눈물과 무너짐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11년이라는 세월이 됐다. 11년이라는 시간의 끝은 나쁘지 않았다. 싸움도, 일방적인 통보도 아니었다. 더는 연인이 아니기로 하자는 내 제안을 그가 수락했고, 그렇게 우린 연인이 아닌 관계가 되는 것에 합의했다. 그런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그런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그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이다. 우리는 행복했다. 어느 곳에 서..
-1980년대 오정희 소설의 여성 신체를 다시 읽기 1. 낳거나, 낳지 못하거나, 낳지 않거나 1980년대 여성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이 새로운 여성서사를 요구하는 페미니스트 동년배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바로잡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성서사와 신체를 사유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한국문학/비평장의 일련의 문법을 거치면서 오정희 소설의 여성 인물의 신체는 아이를 지나치게 많이 낳거나, 낳지 못하거나, 낳지 않는 신체로 구분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삶과 출산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여성성의 계보는 아이를 낳다가 낳지 않는 것으로 세대 간의 차이와 공통된 자궁의 가능성을 공유한다. 가부장제를 통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의 신체를 읽을 수 없게 되어버려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거나..
당시 나를 케어해 주었던 배우의 말처럼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의 삶인지는 알 수 없다. 연재를 늦추는 기간 동안 지금껏 그러한 삶을 상상해보려 노력했지만, 나는 아직껏 행복한 상태와 잘 견디는 상태 사이의 어떤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제껏 꾸준히 써온 바에 의하면 나의 삶은 견디고, 끌어안고, 수렴시키는 연습의 일환이었던 듯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넘어지고, 넘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느린 속도로 한 손에 흙을 그러쥔 채 일어난다. 한 손으로는 몸을 지탱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살아냄에 스스로 내려보는 진단이다. 진단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직면하고자 하는 의지이므로, 나는 스스로의 삶을 때때로 진단하고 이름 붙이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며 살 것이다. 반복과 추가, 나는..
사건의 발단은 2019년이 3일 남은 12월 29일 저녁 식사에서 시작된 아빠의 반찬투정이었다. 엄마와 아빠, 나와 동생 모든 식구가 모여 밥을 먹는데 아빠가 코다리찜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화를 냈다. 처음에는 가만히 있던 동생이 점점 강도가 세지자 맞붙어서 싸웠다. 그걸 말리려는 나와 엄마도 같이 소리를 질러 결국 부엌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동생과 아빠가 일찍 퇴장하고 식탁에는 나와 엄마만 남았다. 엄마가 은근하지만 굳센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가 몸이 아프니까 저러는 거야. 아빠가 너네 이렇게 키워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니. 얼른 아빠 손잡고 결혼식장 들어가야 은혜를 갚지. 이번 주에 남자 친구 데리고 와라.” 이 무슨 길 걷다 새똥 맞는 소리인지. 앞서 벌어진 상황과 엄마가 한 말이 전부 충..
감사인사 성탄의 아침부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더니 감기몸살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일 년 만에 찾아온 몸살로 인해, 연말과 연초에는 모든 에너지를 건강 회복에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처음으로 웹진 쪽의 연재 날을 어기고야 말았습니다. 원고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만족보다는 늘 아쉬움과 후회를 달고 삽니다. 그나마 마감일을 잘 지켜냈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어디에라도 마음을 기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위로받을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감일을 지키지 못한 것을 두고 그 누구도 저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마감일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그 어느 때보다 충실히 이 지면을 위해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일상을 돌이켜보게 해..
변화를 원한다지만 최근 몇 년 간 회사 내 직원들의 불만은 날로 쌓여갔고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사실상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창립 이후로 쌓여온 그릇된 조직문화에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으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근로 환경 및 업무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했다. 사측은 근로자총회를 통해 제기되는 근로자들의 의견을 번번이 묵살해왔고, 나은 경우엔 개선 방법을 제시하라고 답했다. 사실 직원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노동인권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부당하고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 것인가 근로자 측에도 뚜렷한 묘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 근로자총회에서 노조 결성을 위한 찬반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