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분이 도서관에 오셨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잔뜩 모은 미간이 오늘은 더 깊어 보인다.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 날마다는 아니지만 2주일 전쯤부터 한 여성이 수험서를 잔뜩 짊어지고 도서관을 찾았다. 어린이도서관은 따로 열람실이 없고 둥글고 넓은 모서리를 가진 커다란 개방형 책상 세 개가 자료실과 어우러져 놓여 있었다. 오전엔 아직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영유아와 보호자 들이 북스타트 후속모임을 하거나 책을 빌리고 열람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1층엔 장난감 도서관, 2층엔 어린이도서관으로 꾸려져서 1층보다는 2층이 공간도 여유가 있고 조용했다. 그래도 어린이도서관답게 이용자가 몇 명만 와도 금세 활기가 돌았다. 이때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어디까지 소음(이걸 소음이라고 부를..
맨 처음 어린이도서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눈에 띈 건,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웰컴 공간의 북큐레이션이었다. 공룡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기다란 나무 탁자 위 미니 이젤에 보기 좋게 비치되어 있고, 책 속에 등장하는 공룡들을 확대 복사한 그림들이 나름의 흐름을 가지고 벽과 창문에 입체적으로 붙어 있었다. 군데군데 아이들이 그린 듯한 그림들도 있었는데 책 속 그림들과 묘하게 어우러져 신선한 풍경을 연출했다. 책 속에서 튀어나온 공룡들이 나를 맞아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중 티렉스가 커다란 이빨을 번쩍거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낸다. - 어서 와. 이곳은 처음이지? 긴장할 거 없어. 너를 맞으러 우리가 문 앞까지 나온 거니까. 익룡이 내 머리 위를 날며 새로운 세계에, 놀라운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며 날개..
더운 여름날이었다. 출장을 갔다가 시원한 도서관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총총총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때 왼쪽 200미터쯤 옆 시야에 학교 뒷문 담을 넘는 몇 명의 사람들이 포착됐다. 휙~!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학교 담을 넘는 건 그냥 사람들이 아니었다. 늘 나와 도서관에서 투덕거리고 실랑이를 벌이며 반성문도 벌써 몇 장씩이나 쓴 남자 아이들 무리였다.(사실, 반성문이라기보단 편지에 가까웠다. 이용 규칙을 심하게 어길 때마다 사서 샘에게 편지 쓰기 벌칙이 있었다.) 멀쩡한 정문을 놔두고 왜 뒷문 담을 넘고 있는 건지! 혹시 땡땡이?! 땡땡이치는 게 확실해! 오지랖이 발동했다. 난 발길을 돌려 총초총초총초총총 더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을 향해 뛰다시피 걸었다. 아이들은 내 표정 같은 건 못 본 건..
사서의 역할 중 하나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좋은 이야기가 담긴 글일 것이다. 그럼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대답에 관해서는 아주 오래 전 권정생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고 싶다. 권정생 선생님은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남기셨다.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이 인터뷰를 접한 이후로 좋은 글은 곧 불편한 글이란 등식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지금 소개하는 책 역시 이런 불편함이 점령하고 있으며, 내 삶의 불편함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로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내용은 무겁고 아프지만, 기꺼운 마음으..
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그중 아이들과의 만남은 당연하게도 나를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간다. 지금의 어린이들을 보면서 내 안의 어린이를 바라보는 건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보통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는 건 마음이 순수해지고 어려진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외려 늙은이가 된 것처럼 마음이 고단해진다. 그런데 이런 고단한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얼마 전 ‘찾아왔다.’ ‘있었다’라고 하지 않고, ‘찾아왔다’라고 한 건 그만큼 그 사건이, 그 한마디 질문이, 운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날마다 도서관에 오는, 나보다 두 살 위인 운영위원님이 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 여자 형제가 없는 내게 그녀는 친정언니 같은 존재가 되었고, 그러다 그 언니 집에서 밤..
어린이도서관은 일주일 중 6일 동안 문을 열었다. 이 6일 중 5일을 도서관에 오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오늘은 그 아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 아이가 도서관에 오는 날이면, 모든 배경이 희미해지고 공간이 음소거가 된다. 이용자가 많을 때도, 적을 때도 그 아이만 등장하면 오로지 그 아이만 보인다. 간단히 목례만 하고 서가 쪽으로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늘 눈으로 좇는다. 언제 왔냐는 듯이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서다.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책장 넘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럴 땐 꼭 잠자러 온 바람 같다. 하지만 대체로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도서관에 온다. 살금살금, 사뿐사뿐, 인간 세상에 잠시 놀러온 고양이 같다. 놀러오긴 했지만 종이 다른 동물들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으므로 조심..
건축가 유현준은 그의 저서 에서 “얼마나 큰 도서관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작더라도 얼마나 촘촘하게 도시 내에 분포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서가 되기 전에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도시에 커다란 ‘○○중앙도서관’만 있어서 도서관은 그냥 그렇게 커야‘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보면 쭉 진열된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의 이미지만을 보고 자라 도서관은 근엄하고 딱딱한 공기가 흘러 ‘절대 정숙’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나도 모르게 뿌리내려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통 인터넷이나 대형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샀고, 도서관은 책들을 검색해 빌려오는 게 전부였다. 한마디로, 도서관이란 공간에 대한 향유가 전혀 없었..
모두 가 버렸어. 에바 린드스트룀 그림책 의 첫 문장이다. 표지에 주인공 프랑크가 ‘모두 가 버리고’라는 제목 아래에 서 있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면, 세 명의 친구들이 몸은 오른쪽을 향해 있지만 시선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이어 보면, 프랑크와 친구들이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프랑크는 시선과 몸이 모두 한곳을 향해 있지만, 친구들은 어딘가를 가고 있는데 시선만 반대쪽으로 곁눈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화면에 담기진 않았지만 단절되어 보이는 시선 처리가 이 책의 주제와 잘 닿아 있다. 표지에서부터 이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글의 시작부터 첫 문장과 표지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이유가 있다. ..
어릴 때 손바닥과 발바닥에 무엇인가 묻히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래서 과자가 아무리 욕심나도 양껏 손으로 확 움켜쥐지 않았다. 대신 과자를 손끝으로 살짝 집어 올려 아주 빠른 속도로 먹는 건 자신 있었다. 그래야 동생보다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로션도 손바닥에 쭉 짜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손등에 살짝 넘치지 않게 짜서는(양 조절이 관건이다. 만약 실패하면 물컹한 로션이 손바닥으로 침범하고 만다!) 고양이가 앞발로 얼굴을 세수하듯, 나도 손등으로 얼굴을 조심조심 문질렀더랬다. 그뿐인가. 샤워를 하거나 발을 씻고 나오면 물 묻은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싫어서 최대한 발 가장자리로만 체중을 싣고 뒤뚱뒤뚱 걸어서 간신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가끔 샤워를 하고 나오거나 발을 씻고 나오면 그럴 때가..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찾는 단어는 ‘연결감’이다. ‘쓰는’ 대신 ‘찾는’이라고 한 건, 말 그대로 내가 이 단어를 찾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여러 상황에서 굳이 ‘연결감’이란 단어를 찾아 불러본다. 또 ‘연결감’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단어를 쉬이 무시하지 않고 아끼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 하다. 어떤 책 제목의 부제처럼 ‘어휘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내 세계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고 싶어 이 단어를 ‘마구’ 갖다 붙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러면 어떤가. 요즘 이 말처럼 나를 착 달라붙게 하는 말은 없다. 이 말을 찾아 굳이 명명할 때면 난 삶에 착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수많은 연결 속에, 그 핵심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얼마 전 출간된 정혜윤 ..
늘 내가 어려워하면서도 가장 궁금해하는 시기는 ‘청소년기’이다. 나이로 특정할 수 없지만 ‘어쩌지 못하는 낯선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장 많이 접해본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 나 역시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나’를 알고 싶어서 자꾸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온유의 『유원』은 내게 어떤 대답처럼 다가왔다. 청소년기를 어렵사리 통과했던 내가 가장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바로 ‘나는 더욱더 송지연이 되고 싶다’였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유원도 그 무엇보다 스스로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청소년 이용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아쉽다.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학교 근처에 가지 않으면 청소년들을 보기 어려웠다. 독서실..
윙- 띵~! 스르륵. 또다. 곁눈질로 흘깃 보니 아주 건강해 보이는 비장애인이 씩씩하고 당당하게 2층 도서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팔다리의 불편함 말고, 배가 아프다거나 어지러운 것일 수도 있어서 재빨리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혈색도 좋고, 심지어 아주 활짝 웃고 있다. 혹시 무거운 짐이라도 들었나 다시 살폈다. 역시나 어깨에 착 멘 작은 가방이 다다. ‘아니, 계단도 몇 개 없는데 왜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거야?’ 은근한 불만에 눈이 가늘어지고 입이 삐죽 나왔다. 어린이도서관은 아담한 2층짜리 건물로, 1층엔 장난감도서관과 프로그램실, 사무실이 있고 2층엔 어린이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자리는 2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
9 -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읽고 어린이도서관의 1년 도서 구입비는 총 4백만 원이었다. 쏟아지듯 책이 출간되고 있는 상황에서 1년 동안 고작 250여 권의 책을 구입한다는 건 심각한 선택 고민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신간 구입 목록’을 작성할 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이때는 믿을 만한 매체나 평론가, 작가가 추천한 책들을 뒤적거리고 최대한 ‘감’을 총동원한다.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으니 뒤표지와 보도자료, 서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그 책을 선택할지 말지는 그동안 수없이 책을 읽고 실패하고 웃고 울며 감동받았던, 지층처럼 쌓여서 발현된 감이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감에 의존하지 않는 예외도 있다. 바로 수상작들이다. 뉴베리 상, 볼로냐 라가치 상, 문학동네어린..
8. “얘들아~! 여기 도서관이에요. 놀이터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니?” 처음부터 이런 말을 목에 핏대 세워 가며 한 건 아니었다. “와이파이 비번 설정했어요. 당연히 비번은 비밀이야. 앞으로 게임 못해! 게임하면서 욕은 더더욱 안 돼!” 이것 역시 처음부터 아이들에게‘만’ 와이파이를 통제한 건 아니었다.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면 어떡해~! 규칙 써놓은 거 안 보여요?! 다 같이 이용하는 곳이니,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읍!!!” 이 또한 역시 처음부터 뒷목 잡아가며 규칙을 운운한 것은 아니었다. “쉿!” “쉿, 제발!” “쉿, 하자.” “쉬~~~~~~~~~잇!” ‘쉿’이란 단어가 다양하게 변주되어 육화되는 과정을 스스로 체험하리란 것도, 사서 생활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되리란 것도 예상한 건..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다시 살아난 감각은 ‘청각’이었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편견이 깨지면서 얼마나 다양한 소리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더듬더듬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책 읽는 소리는 설레는 봄의 소리였다. 또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는, 책에 빠져 있는 독자의 숨소리와 어우러져 도서관이란 공간을 청각적으로도 확장시켜 더욱 도서관답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어린 아기에게 손짓발짓 써가며 읽어주는 그림책은 어떠한가? 다분히 책에 실린 글자만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온갖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책을 물성으로써도 두드리고 돌리고 만져보게 하는) 소리는 이 아기가 책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겠구나, 란 확신이 들게 한다. 아기는 엄마의 목소리와 엄마가 만들어내..
6. 우리나라에서 책을 분류할 땐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분류를 한다. 한국십진분류법은 듀이십진분류법에서 유래했지만 아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혀 다른 분류체계를 보여준다. -한국십진분류법 000 총류 100 철학 200 종교 300 사회과학 400 자연과학 500 기술과학 600 예술 700 언어 800 문학 900 역사 -듀이십진분류법 000 -컴퓨터 과학, 정보 총류 100 –철학, 심리학 (Philosophy & psychology) 200 –종교 (Religion) -서양, 기독교 중심적 분류 300 –사회 과학 (Social sciences) 400 –언어 (Language) -서양 중심의 분류 500 –과학 (Science) 600 –기술 (Technology) 700 –예술, 레크리에이션 (..
4. 도서관의 잠을 깨우는 건 청소를 해주시는 어르신들이었다. 총 8명의 어르신들은 4인 1팀씩 격일로 근무를 하셨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걱정이 없었던 것이 어르신들이 먼저 오셔서 추울 때는 따듯하게, 더울 때는 시원하게 늘 도서관 온도를 맞춰 주셨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아이들이 오는 곳이라며 도서관 곳곳을 말 그대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해주셨다. 그리고 가끔 수줍게 들고 오시는 마법의 검정 비닐봉지. 어떨 땐 책상 위에 무심히 놓고 가시고, 어떨 땐 직접 건네주시고, 어떨 땐 청소를 마친 뒤 소풍 오신 것처럼 둘러앉아 마법의 검정 봉지를 푸신다. 그 봉지(아, 그냥 ‘봉다리’라고 부르고 싶다.) 안엔 곶감이, 사과가, 빈대떡이, 지난 명절에 남아서 냉동실에 있다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묻혀 소생..
2. 면접은 12월 20일쯤이었다. 막 추워질 때쯤이었고,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면접 날 아침, 난 아이를 낳기 전까지 입었던 감색 코트를 꺼내 입었다. 팔뚝이 꽉 끼어 겨드랑이가 몸에 착 붙지 않고 살짝 떴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근육 운동 열심히 한 사람이 이렇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 단추는 정말 간신히 잠겨 그냥 단추 잠그는 걸 포기했다. 그렇게 조금은 불편한 몸으로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앞사람이 면접 보러 들어갔는데 면접관 목소리가 우렁찼다. 문 밖에까지 들렸다. “머리를 잘랐네요!”라는 사적인 얘기가 들렸다. ‘헉, 틀렸군. 아는 사람이 분명해.’ 하는 생각이 드니까 이상하게 안 떨렸다. 책장에 꽂힌 책 중에 을 꺼내들었다. 책 읽을 여유까지 생겼다. 곧 내 차례가 되어 면접 ..
프롤로그 사서자격증을 17년 만에 꺼낸 사연 “나, 좀 쉬고 싶어.” 어느 날, 이이(그때도, 지금도, 그러니까 아직까지 남편인 사람)가 툭 내뱉었다. 나와 알콩이(당시 4세인 딸)가 곁에 있긴 했지만 딱히 누구 들으라고 말한 건 아닌 듯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한 템포 쉴 때도 됐지.’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소처럼 일한 남편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3년 일하면 한 달 안식, 이런 거 하면 좋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우린 무얼 위해서 그렇게 내달리는 걸까? “응. 그럼 육아휴직 해. 당신 살림하고 육아하는 시간 동안 내가 뭐라도 할게.” 외벌이었던 우리는, 이이가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 분명 생활비가 더 빠듯해질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이이가 쉬면 내가 짧게라도 알바를 해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