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눈 가린 자의 세상

이밈달, <우린 서로 다른 곳을 보고>, 2021, 지점토, 아크릴물감, 비즈, 11X13X12cm

    다행히 중학교 3학년 무렵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나는 그 일이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살피지 못하고, 눈앞의 사사로운 고통과 편견에 휘둘리던 나의 가족. 그 모습은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는 순순히 이혼해주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무작정 아빠의 짐부터 정리했다. 함께 살던 친할머니는 약 1년 전부터 큰고모와 함께 집을 얻어 분가하신 참이었다. 아빠가 나간 사이 엄마 차에 짐을 싣고 친할머니 집에 내려다 놨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내가 홀로 할머니 집 앞에 짐을 옮겼던 것 같다. 소란스러움에 문을 연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았었지. 엄마보다 더 엄마같이 느껴지던 친할머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와 내연녀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 비밀에 부친 나쁜 사람이었다. 매정한 얼굴로 날 더러 짐이나 두고 가라며 소리를 지르는 낯선 사람이었다.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던 할머니. 까만 밤 센 숨을 쉬며 잠든 할머니를 보고 나는 그녀가 죽는다면 너무나 슬플 것 같아 몰래 눈물 훔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내게 더 이상 그런 사람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때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아버지는 무작정 엄마의 가게에 찾아오거나, 내가 혼자 있는 집에 찾아왔다. 다세대 주택의 유리문을 부수고는 강제로 집에 들어온 날도 있었다. 나는 방문을 잠군 다음 옷장 안에 숨어 덜덜 떨었다. ‘주연아.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냐.’ 잠가놓은 방문 너머로 들은 말.

    아빠는 다시 집에 들어오려는 게 아니라 뭔가를 가지러 온 듯 했다. 한참이 지난 뒤 방문을 열어보니 그가 현관문도 닫지 않은 채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곧장 겉옷 하나를 둘러 입고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엄마의 가게로 향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가 내게 더 황당한 말을 했는데, ‘바로 가게로 뛰어오지 왜 숨느냐.’며 나를 다그친 것이다.

    물론 서른을 앞둔 지금의 나라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16살의 주연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아빠가 너무 무서운데, 그런 인간을 어떻게 면전에서 무시하고 가게로 달려오라는 말인가? 내가 아빠에게 맞아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린다는 것을 엄마는 전혀 알지 못했다.

    엄마는 나의 감정에 정말 무관심했다. 이십대 초중반쯤이었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싸움을 보며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를 지나가듯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어떻게 그걸 기억하니?’라고 말했다. ‘네가 그것 때문에 힘들었을 줄 정말 몰랐어.’ 하며 놀라는 기색을 내비치는 것이다.

    내 가슴은 또 다시 속절없이 무너졌다. 살아온 인생 전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고생이란 고생은 어른들만 다 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 헤헤거리며 행복하게만 살아온 줄 알았어?’

    엄마는 여전히 내 상처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당시 우울의 만성화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서러움과 배신감, 당혹감 사이로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엄마.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
    ‘언니랑 네가 결혼할 때, 식장에서 손 붙잡고 들어갈 아빠는 있어야 돼. 아빠 없는 딸 만들기 싫어서 그래.’

    그런데 과연 그게 진짜 이유였을까? 엄마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정말 딸의 결혼식이었을까? 자신의 선택을 부정할 용기가 없어 부린 미련한 고집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엄마는 가정을 위해 헌신한 책임감의 화신이 아니라혼자됨의 두려움을 외면하기 위해 애쓴 한 명의 외로운 인간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네가 그것 때문에 힘들었을 줄 정말 몰랐어.’

    그리고 동시에 알게 되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보고, 받아들였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럼 고생이란 고생은 어른들만 다 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 헤헤거리며 행복하게만 살아온 줄 알았어?'

    엄마가 그녀의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아버지 없는 자식이란 레퍼토리를 끌어다 쓴 것처럼 나 역시 나의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엄마에게 애증의 굴레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토록 원망해온 엄마인데, 나는 거푸집에라도 찍어낸 듯 그녀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와 보니 엄마는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살아온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내가 털어놓은 감정에 어쩔 줄 모르며 뚝딱거리는 이 사람에게 대체 무슨 죄를 묻고 뭘 보상받으려 한 걸까. 우리는 이토록 다른 세상을 보며 살고 있는데.

    결국 이혼을 결정했을 때, 엄마도 이렇게 길을 잃은 기분이었을까 궁금했다. 엄마에게도 나름대로의 지도가 있었겠지. ‘이혼이라는 두 글자가 빠진 지도. 그리고 나 역시 나만의 지도가 있었던 것이다. ‘억눌린 감정을 모두 털어내고, 만족할 만큼 고생을 인정을 받은 뒤, 불쌍한 어린아이의 학대를 방조한 어른들의 뼈아픈 반성을 관람하는 지도.

    허망했다. 그래서 허무했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똑같은 코끼리를 앞에 두고선 누구는 다리를 만지고 누구는 꼬리를 만지고 있을 뿐이었구나. 그렇게 화산은 멎고 공허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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