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생생한 미소지니, <네 눈동자 안의 지옥>

 


    학부시절 여성학개론을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는 소신과 가치관을 삶으로 확장시키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은 분이셨어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본인의 박사학위를 위해 유학을 결심했고, 출산시기를 자신의 커리어에 맞춰 계획하고 실행했다고 하셨습니다. 학령기에 다다른 자녀가 하교 후 집에 혼자 있으면 정서상 좋지 않다는 주변의 우려(라 쓰고 오지랖이라 읽읍시다)를 무시하고 경력을 빌드업하면서 ‘아이도 부모의 사정에 적응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눈을 반짝이며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흉자로서의 정체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남편 되시는 분이 참 대단하고 배려심이 많다’느니, ‘교수님 자녀분은 어려서부터 참 외로웠겠다’느니 하는 생각도 했었네요(먼 산). 졸업하고 나서부터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록새록 느낄 때마다, 그 교수님을 비롯하여 여혐 및 모성신화의 왕국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사투중인 많은 자매님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느꼈던 감정마저 온전히 제 것이 아닌, 사회가 강요한 그들만의 이상향이 평생에 걸쳐 주입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일련의 욕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감정으로서, 생리/안전/애정/자기존중의 욕구를 순차적으로 충족하게 되면 자연스레 열망하게 된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유독 여성에게만 하위 단계의 욕구 만족에 그치는 것을 장려할까요? 하나의 주체적인 사회 성원으로서, 성취욕을 충족하고자 고분군투하는 유자녀 취업 여성들로 하여금 ‘너의 자리는 사회가 아니라 가정’이라며 그들의 욕망에 죄책감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버리는 것은 결코 건강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또한,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세대의 유지와 번영을 위한 번식이라는
중차대한 이슈를 어떠한 연유에서라도 그 행위자에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방법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리하지 못한 방법인데, 이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안 보이는 지독한 아집에 의구심도 들고요(물론 ‘진심’으로 궁금하지는 않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생물학적 여성이라면 누구나 원치 않아도 정혈을 시작하고부터 임신과 출산, 육아(이하 임출육)라는 지긋지긋한 가능성이 망령처럼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자라온 성장환경이나 현재 속
해 있는 사회계층에 따라 임출육은 벅차오르는 설렘 내지는 태초로부터 내려온 형벌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감정 또한 철저히 타자화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진짜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충돌하여 정신적 혼란을 겪는 것은 단지 시기의 문제라 해도 무리는 아닙니다. 최소 절반의 산모가 출산 후 우울감을, 그중 일부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1,000명에 1명 정도는 환청과 망상을 동반한 산후정신증을 경험한다는 통계 기록을 미루어보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러한 여성의 심리상태를 단지 특이한 개별적 질환으로 치부함으로써 여성이 출산 후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가 바로 이곳 대한민국인 것이지요(...비출산 동지들, 조금만 더 힘내봅시다). 오늘 소개할 책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은 한국계 미국인인 저자가 출산 후 겪은 산후정신증에 대한 솔직한 고백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과 자아와의 심각한 갈등의 이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자가 어려서부터 겪은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출산 후 스스로를 돌볼 새도 없이 지워지는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따른 수많은 의무는 읽는 이의 정신마저 피폐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주변에서 이어지는 염려와 관심이라는 이름의 간섭은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에게 새삼스레 한국 산모, 한국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뒤늦게 부여하려는 양가의 고집스러운 억지는 보기에도 고통스럽습니다. 글의 흐름이 분절되고 시간 순서가 헝클어지는 등의 표현은 저자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걱정해주는 거라고는 해도 이런 지적과 비판은 내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엄마인가? 내가 하는 일이 전부 잘못되었나?”


    저자가 살아온 환경은 체념과 순응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정서적 학대와 전 남자친구의 폭력 그 이면에는 이를 묵인하는 어머니들이 저자를 옭아매는 동시에 희망의 여지를 주는 대립항적 존재로 자리합니다. 한 대상을 괴롭히고 또 달래는 상반된 감정적 활동이 번갈아 행해지는 과정에서 형성된 관계의 수렁은, 저자로 하여금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병적인 체계성을 구축해 저자를 억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가해자라고 욕할 수만은 없습니다. 피해자에서 피해자로 전가되는 폭력은 대를 이어 내려온 탓이기 때문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매 맞는 아내, 가스라이팅, 스톡홀름 증후군 등 감정적 학대로 발현되는 여러 병적 심리증상이 요즘만큼 대중들의 관심을 얻은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싫으면 도망치면 되잖아?’, ‘세뇌되는 사람이 바보지’라며 도저히 이를 이해할 수 없어 하던 특정 성별들이 ‘김정현·서예지’ 일화 덕분에(?!) 단기간에 이해력이 향상된 것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어요.


    아, 잠깐 옆길로 샜네요. 각설하고,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회적 존재는 없기에 저자가 겪은 고난은 한 개인의 탓이라기보다 총체적이며 복합적인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저자에게 ‘커다란 사랑에는 커다란 징벌과 희생이 따른다’는 한국 설화를 각인시켜 전 남자친구의 가스라이팅 앞에
서 저자를 무력화하는 데에 일조한 외할머니도 의도적으로 손녀에게 병적 사고를 심어줬다기보다는 단지 한국 구습의 희생양으로서 기능했을 뿐이고, 저자와 남동생에게 폭력적 자아를 발현하기보다 미성숙한 자녀를 사랑으로 보듬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어야 했던 아버지도 성장과정에서 바람직한 부성애를 접해본 경험이 없었던 거겠죠. 예민하고 불안감이 큰 남편을 보듬어 화목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항복’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시모에게도 희생과 순종을 은연중에 강요당한 어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저자를 망상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해준 남편은 친부모의 불안에 잠식되지 않은 ‘밝고 건강한’ 존재였지만, 저자의 산후정신증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또다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어두운 불안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대는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애정의 크고 작음에 따라 상대가 받는 상처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도 아니기에, 이는 개인이 아닌 사회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병든 사회에서는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며 건설적이며 건강한 개인이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학대와 전 남자친구의 폭력이라는 첩첩산중을 가까스로 탈출하여 일상을 영위하던 저자는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잠시나마 평온을 얻지만 결혼 후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감정적 혼란을 겪는데, 그간 육체적, 정신적 젠더폭력으로 받은 상처가 무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심신을 가장 취약한 상태로 만드는 요소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임신으로 내가 내 몸과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이 미리 프로그램된 길을 따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고, 나는 통제권을 상실했다. 어떤 손이 내 영혼을 내 몸으로 확 잡아끄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신이라는 현실로의 복귀였다. 임신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느끼지 못했다. 나라는 존재가 나뉘고 공유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몸은 내 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운반자였고 생명을 품은 자였다. 임신은 내 몸이 피와 뼈의 집합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문득 임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해리성 장애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아닐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도 듭니다. 출산 비슷한 경험도 없는 얼치기의 눈에도 임신은 내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느낌, 나라는 세계를 다른 세계와 공유해야 한다는 생경함, 그간 독립적 존재였던 자아와 생리적 존재로 ‘기능’하는 육체 및 양육자로서의 자아와의 충돌 등 가늠하기도 힘든 요소들로 인해 정신적 혼란을 겪기에 충분한 계기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은 또 얼마나 막중할까요. 저는 그저, 알면 알수록 무섭기만 한 이 모든 것들을 한쪽 성별에만 부과하려고 애쓰는 불합리에 분노하게 될 따름입니다.


    저자는 출산 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호전되어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것으로 이 책을 끝맺지만, 저자와는 달리 모성신화에 절여진 위정자들이 이를 감추려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가임기(악!!! 이 말도 너무 싫어요!!!) 여성들의 내일에 대한 회의감은 오늘도 짙어만 갑니다. 나날이 치졸하고도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텅 빈 중심을 감춘 백래시 때문에 정신적 피로도는 깊어만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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