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_서로의 곁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고 있을 때도, 외로움에 지쳐 죽고 싶을 때도, 내가 짜증을 부릴 때도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준.
    항상 얼굴을 마주하며 잠들고, 낮잠을 자고 있으면 어느새 내 품에 안겨 있는.
    품 안에 얼굴을 숨길 때 닿는 코의 차가운 감촉이 기분 좋은.
    나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이는.

    너는 나의 친구고 가족이고 분신 같은 존재야. 14년을 함께한 내 낡고 오래된 사랑의 주인공 나의 고양이 미쉘.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어릴 때 무심코 번쩍 안았던 고양이가 등에 손톱을 박고 떨어지지 않았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 즈음이었을까.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에 앉아 나를 보고 울었다. 나를 향해 계속 야옹야옹 우는 게 난 너무 무서워서 그 넓은 길목을 지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결국 동생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와 달라고 애원해 어이없어하는 동생 손에 이끌려 간신히 길목을 지나 왔다. 다음날 집 앞 슈퍼에 갔더니 어제 만난 그 고양이가 식빵을 구우며(고양이가 다리를 숨기고 식빵 모양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을 뜻함-작가 주) 앉아 있었다. 슈퍼 사장님이 밥을 가끔 챙겨준다고 했다. 아마 어제 그 고양이는 배가 고파서 날 불렀던 것 같다. 그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그 후로는 길냥이들이 신경 쓰였고 고양이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도 고양이와 가족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난 만약 동물을 기른다면 까마귀를 기르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깨에 까마귀를 앉혀서 다니는 것이 로망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동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가족처럼 챙기는 친구를 보면, 동물에게 애정을 쏟는 만큼 나한테나 신경을 좀 써줄 것이지, 하는 참 못난 생각을 하던 인간이었다.

    서울에 상경한 뒤에도 가난한 생활에 입 하나 늘릴 사정이 전혀 안 되었기에 반려동물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도 결국 난 미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내 최악의 인연 B와 함께 살 때 B는 친칠라 고양이를 분양받아서 키웠다. 나도 그 고양이를 예뻐했지만 털이 너무 많이 날려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느 날 B는 길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B는 낮에 학교에 다녀야 하니 아기 고양이는 대부분 내가 돌봐야 했다. 그래서인지 난 그 아기 고양이 N을 참 많이 좋아했다.

    B와 헤어지면서 고양이들과도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내가 가장 가난했던 시절인 옥탑에 살 때 근처에 이사 온 B를 다시 만나게 됐고 고양이 N도 다시 만났다. 호랑이 같은 얼룩의 갈색 고양이 N. N은 이미 날 잊었지만 참 멋진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쯤 N은 임신을 한 상태였고 N이 낳은 고양이 중 한 마리가 나의 미쉘이다. 하얀 털에 N의 얼룩무늬와 코를 꼭 빼닮은 미쉘을 본 순간 우린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함께 열악한 환경과 가난을 이겨내야 했는데 미쉘은 크게 불평 한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방 접종도 하지 못했고 중성화수술도 늦게 했다. 제일 저렴한 모래를 사용했고 7kg에 만 원하는 사료도 꾸역꾸역 다 먹어주었다. 아마 고양이 집사들이 알면 이런 날 비난하거나 어쩌면 그들에 의해 매장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난 미쉘도 나와 함께인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을 수 있도록 미쉘은 미쉘의 방식대로 내게 사랑을 준다.

    탁묘를 하고 길냥이 새끼들을 키워 입양을 보내기도 하면서 내 곁을 스쳐 간 고양이가 꽤 있다. 그러다가 집 안에 고양이가 잠시 여섯 마리나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고양이 알러지가 생겨서 혼이 났다. 눈이 붓고 콧물이 흐르고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가 났지만 그래도 약 한 알을 먹으면 괜찮아졌다. 알러지 약은 내게 필수품이 됐고 조금 고생도 했지만 그렇게 갑자기 생긴 알러지는 몇 년이 지나 점점 나아졌고 언젠가부터는 괜찮아졌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했다. 내가 귀찮게 하니 뿔이 난 미쉘이 날 때렸을 때 나도 너무 화가 나 밀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미쉘은 하루 종일 내 곁에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간식을 줘도 멀리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다음 날 화를 풀고 다시 내 곁에 와주었다. 미쉘은 내가 큰소리 내는 걸 싫어해서 지금도 조금만 큰소리를 내거나 동거인과 말다툼을 하면 후다닥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그 모습이 민망해서 우리는 말다툼을 멈추곤 한다.

    미쉘은 좁디좁은 내 세계를 넓혀주었다. 동물을 나와 동등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반성하게 되었고, 수많은 동물학대 사건을 마주하며 분노와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미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로 인한 많은 우연과 운명이 없었다면 나 역시 동물을 무시하고 가벼운 목숨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바른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존재다. 난 인간을 믿지 않는다.
    난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적절한 선에서 동물과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려 한다.

    동거인과 함께 살면서 8살 찰리도 함께 살게 됐다. 새끼 고양이일 때 비 오는 날 혼자 울고 있는 찰리를 남자친구가 데려왔다. 아기일 때는 내가 돌봤기 때문에 미쉘과도 친했지만 조금 크고나서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한참을 떨어져 살다가 성묘가 돼서 만나니 둘은 지금 같은 공간에서 잘 지내기는 해도 자주 투덕거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친해질 거 같지는 않다.

    올해로 14살이 된 미쉘은 너무 고맙게도 여전히 건강하고 식욕도 왕성하다(다이어트는 좀 해야 하지만).
    침대 머리맡의 내 얼굴 옆자리를 둘째 찰리에게 뺏기고 내 발밑에서 자는 신세가 됐지만 거실 소파는 미쉘과 나의 영역이다. 내가 소파에 누워 있으면 꼭 내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와 안긴다.
    아침을 날 깨우는 건 여전히 미쉘이다. 내가 이불을 들면 그 안에 들어와서 안긴다.
    이렇게 날 사랑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미쉘에 대해서는 잠시잠깐 그 존재를 떠올리기만 해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에 온통 차오른다. 우리 미쉘이 세계 최고 장수 고양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둘째 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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