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목격자 되기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본 친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작년 여름인지 재작년 여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건대 앞, 도삭면이 유명하다는 집에서 밥을 먹었다. 딤섬 찌는 통에서 나온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식당이었다. 비가 오는데 좁은 처마 밑에 앉아 입장 순서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약속을 매번 미루기만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만나자고 날짜를 정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보고싶다는 친구의 말에, 그럼 강아지를 데리고 한강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갔었던 서래마을의 버거집에서 음식을 포장했다. 한강 공원은 인산인해였다. 강아지를 태운 채 운전을 하고 꽉 들어찬 차들 때문에 주차장을 빙빙 돌다 보니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간신히 자리를 잡은 후 우리는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버거와 고구마 튀김을 먹었다. 

    안부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작년 가을에 내게 카톡해 상담 선생님을 추천해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자살 사별을 비롯해 애도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사와 꽤 오랫동안 상담을 이어가던 차였기 때문에 친구에게 상담사를 연결해주었다. 상담소의 위치와 번호를 넘긴 후로는 별다른 소식은 듣지 못했었는데 친구가 그때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무척 놀랐다. 그 일을 잊었다는 것은 단순히 친구가 보낸 카톡의 내용을 잊었다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친구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고, 그때 친구는 몇 년간 알고 지내면서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동생을 잃었다. 더 어린 나이였고, 살해로 인한 죽음이었다. 친구가 어떻게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줄 용기를 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인터뷰라는 형식 때문이었는지, 내가 깊은 애도 중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자신의 이야기도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것은 입밖으로 내서 다루어본 적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 이야기의 모든 디테일들이 중요했다. 죽음의 이유, 죄책감과 분노가 누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비극 속에서 관계는 어떻게 이어지는지와 같은 이야기들은 디테일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억 속에서 어렵사리 건져 올린 그 이야기를 성실하게 옮겨 적는 것이 내 의무라고 느꼈다. 나는 논문에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자세히 썼다. 

    원고를 내고 난 후 지도교수를 만났다. 그분은 아주 곤란한 얼굴로 내게 이렇게 폭력적인 일을 자세히 묘사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이것이 고통의 포르노화가 아니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의 말을 납득했음에도 화가 났다. 고통당한 사람이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옮기는 것이 ‘끔찍한 재현’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끔찍한 것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것을 목격하는 것이 비윤리적인 것이라면, 남들의 윤리를 지켜주기 위해 혼자서 목격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아니, 사실 이 질문은 게으르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 고통을 포르노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신뢰 관계 속에서 고통에 관해 들었다고 해서 그 고통을 ‘그대로’ 재현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분명히 더 고민하고 성찰하여 방법을 찾아야 했다. 논문을 쓰던 나는 신경줄이 끊어지기 직전이어서 이런 고민을 끝까지 붙들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의 이야기를 모두 지웠다. 논문의 여러가지 실패 중에서도 제일 비겁한 실패였다. 

    친구에게는 이런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원고를 수정하기 전 친구에게 원고를 읽어봐달라고 하자 그는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로 여러 번 사양했다. 나는 그의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나도 여러 연구와 글을 위해 해부되었던 적이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고 공개에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일들임에도 누군가가 쓴 글의 형태로 내가 응고되어 세상에 노출되는 순간이 오자 나는 상처받았었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냥 글로 쓰인다는 게 그런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내 예민한 살갗이 무엇이든 아프게 느끼는 건지, 진짜 아파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 많기 때문에, 이유가 있다면 이 정도 아픔은 감수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동의한 것이 무엇인지, 그 결과물을 정확히 보지 않아도 된다면 ‘이야기를 사용하는 데 동의한다’는 애매모호한 결정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더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서 글을 보여주지 말라는 친구의 말을 나는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에게 보여주지 않고 동의를 받은 이야기를 논문에 싣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싶은 것은 재현의 윤리 따위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친구의 고통을 잊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 모든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왜 나는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도삭면 가게의 찜 연기 같은 것이나 떠올리고 있었을까? 내가 저버린 것은 이야기를 사용하기를 허락해준 사람의 시간과 성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혼자 통과해야 했던 고통의 목격자였다. 그리고 고통의 목격자가 져야 하는 책임, 이해하려는 분투를 나는 다하지 못했다. 

    나는 혼자서만 목격자가 된 고통들을 다 까발려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주인공의 슬픔과 우울만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만드는 종류의 ‘윤리적’인 영화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보면 특히 그렇다. 왜냐하면 외상적 사건(이라고 쓰는 것은 참 이상하다)을 겪은 사람의 머릿속을 침범하는 것은 가장 끔찍한 순간의 구체적인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자살 사별자 자조모임에서 우리는 각자가 목격한 것이 무엇인지 아주 정확하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이런 묘사는 자기소개에서부터 시작된다. 모임이 이뤄지는 방에 들어오면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던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디서 자살을 했고, 시신을 어떻게 찾았으며, 시신을 보았는지, 보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촉감이었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꺼낸다. 이 모든 것들이 자기 소개에 포함된다. 나를 침범하고 종국에는 나를 ‘윤리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관해 우리는 자꾸 말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말을 하면 생생한 충격과 고통이 조금은 덜어진다. 말하기가 고통을 덜어주는 이유는 말함으로써 이야기가 닳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고통에 또 다른 목격자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가 더 크다. 고통의 목격자는 고통스러운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제각각의 고통 속에서 화해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그래서 서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야기하기가 더 어렵다. 고인과 별 관계가 없는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기가 더 쉬워지는 것도 그래서다. 자조모임을 찾으며 우리는 오로지 내 이야기로 구성된 고통, 그 고통을 정확히 바라봐 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그 사람이 내 고통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바라도 된다면, 그 고통 또한 이해받을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유방암의 고통을 다룬 앤 보이어의 책 <언다잉>(2021)에는 고통의 목격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보이어는 이렇게 쓴다. “고통의 목격자는 고통의 당사자에게 더 극심한 고통을 가해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끼기도 한다. (중략) 고통은 몹시도 쉽게 전달되며, 실제로 고통의 과잉 표현성에 대한 반응을 들여다보면 극심한 폭력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237) 고통의 목격자는 아주 쉽게 고통을 전달받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회피하거나 이미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더 잔인하게 내치기도 한다. 그것이 “극심한 폭력의 원인”이 된다. 나는 극심한 폭력이라는 말 위에 오래 머물렀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흡수하면서 되려 고통을 외면하고 싶은 욕망을 키우지 않고,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들을 수 있을까? 어떤 회피는 폭력이 된다. 

    나는 이 글을 친구에게 보내보려 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가 오래 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알게 된 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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