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왜 낳은 거야? 내 허락도 없이? 청소년 시절, 목젖 끝까지 이런 말이 차오른 적이 종종 있다. 삼키고 또 삼켰다. 그게 내 부모든 신이든, 대답은 침묵으로 돌아올 게 뻔했으므로. 그때 세상은 온통 숙제로만 가득했다. 고통과 환멸과 지루함으로 이뤄진 숙제. 숙제를 내주는 사람의 기쁨만을 위해 숙제가 존재하는 세계. 거기에 종종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란 말이 기쁨을 더 찬란한 기쁨으로 만드는 액세서리가 되기도 하는 세계. 초등학교 때 만났던 단 한 명의 선생님을 존경했다. 아이들을 조건 없이 골고루 살피고 보듬고 있다고 느낀 유일한 분이었다. 나머지는 이내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가 다 보였다. 그들이 더 많이 호명하고 더 많이 웃어주는 학생의 경우, 예외가 없었다. 그들 어머니의 얼굴을 번번이 ..
오, 빛나는 아침이여 오, 하루의 청춘인 빛나는 아침이여 그토록 긴 밤을 보내고 다시 만날 황금빛 오전을 위해 윙윙거리고 활기찬 말벌처럼, 따스하게 자연을 쏘아 올리며 놀라는 아침이여. 멋들어진 장미들과 허브들이 파티하는 아침은 민첩한 바람에 웃고, 두 눈처럼 뜨인 빛나는 수풀 속에서 차분한 밤이 되기까지 꽃들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하루의 시선. 수증기와 숨결과 빛을 뒤섞으면서 무구한 분위기 속에서 뛰노는 기분 좋은 희망의 시간 하얀 새벽이 떠오르는 풀로 뒤덮인 언덕에서 수북한 토끼풀들이 그들의 귀뚜라미에게 노래를 시키는 곳 아래에서. 생명수를 머금어 완전히 촉촉해진 아름다운 시간 바다가 적셔 떨리는 태양빛 움직이는 나뭇가지들 속에서 느닷없이 깨우네 아침 새들이 즐겁고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를. 건강하..
사회생활 시작하고 몇 번째 이직했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회사에서 친해지게 된 프리랜서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슬하에 아들 둘이 있었는데, 딸 하나 있는 친구분이 아이들 동반 모임에서 선생님의 아이를 보고 “너희 애 ADHD 아니니?”라는 말을 해서 기분이 몹시 나빴다고 하더라고요. 매우 활동적인 아이이긴 하지만 병적일 만큼은 아닌데 친구가 말을 심하게 했다면서요. 세월이 흘러 그 친구분이 둘째 자녀로 남자아이를 낳았고 몇 년 뒤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렇게 말해서 미안했다“고 뒤늦게 사과를 했다면서, 여자아이는 얌전하고 남자아이는 부산스러운 ‘일반적’ 성향을 키우면서야 알게 되었다더라는 말을 전해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세간의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
다정한 은수 님께 모든 게 흘러내릴 것 같은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네요. 잠깐 외출해도 마스크 안이 땀으로 범벅되는 게 너무 싫어요. 요즘 마음은 너무 혼란스러운데 무료한 날을 보내고 있어요. 일도 손에 안 잡혀서 해야 할 일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만 해요. 너무 심심한데 아무도 만나기가 싫고요. 조금쯤 충동적인 상태이면서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답답한지 잘 모르겠어요. 한 달 정도 자기 전에 게임을 하고 잤는데요. 게임에서 친구가 한 명 생겼어요. 어쩌다 보니 처음으로 음성으로 대화하며 게임을 하게 됐고 사적인 대화도 나누며 친해진 거예요. 근데 이 친구가 이성이기도 하고 늦게까지 같이 노는 경우가 많다 보니 배우자가 싫어했어요. 그래도 제가 워낙 재밌어하니 적당히 알아서 하라..
엄마, 엄마한테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그날 걸레질하는 엄마의 굽은 등을 보고는 절대 이 말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마치 노을 지는 언덕 같은 엄마의 등. 눈물이 많은 엄마는 그날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렸죠. 그 눈물이 마치 나를 찌르는 빗방울들 같아서 엄마에게 이 말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네요. 엄마는 고등학생인 제 머리를 빗겨주고 제 양말을 신겨주곤 해요. 아침에 비몽사몽인 제 입에 김에 싼 밥을 하나씩 물려주죠. 마치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처럼요. 저는 눈을 반쯤만 뜬 채로 김밥을 받아먹었어요. 엄마 눈에 저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어린아이예요. 제 방 침대에는 분홍색 캐노피가 걸려 있어요. 제 방 벽지는 구름 그림이 그려져 있죠. 여전히 강아지인 나. 아마도 엄마는 저..
이다는 비행체가 퇴각한 이후부터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구토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비행체의 공격 이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암환자가 늘었다고. 아마도 방사선 노출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작 그들과 가장 많이 접촉했을 나는 멀쩡했기 때문에 나는 그 뉴스를 믿지 않았다. 원래 사람이란 게 그렇다. 제 눈앞에 없으면 타인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다가, 바로 그 피해자였다. 보호자가 피습으로 모두 사망한 이다는 국가의 ‘보호’ 차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종종 이다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정부 사람들. 이라고 누군지 묻는 나에게 이다는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답했다. 이다는 채혈을 자주 했다. 얇고 허연 팔뚝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가..
직업이 바뀌고 아침 6시 반에 일어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첫 출근을 하기 전에 기상 연습이라도 해둘까 싶었지만 역시 인생은 실전이지, 하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으로 출근 전날을 맞았다. 정작 그날이 되자 나는 새벽 총 4번에 걸쳐 눈을 번쩍 뜨며 실제 수면 시간이 3시간밖에 안 되어 무거워진 몸으로 어렵게 침대를 벗어났다. 몇 주가 흐른 지금은 주말이 되면 같은 시간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일어나지는 않고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더 수면을 취한다. 호기롭게, 눈뜬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난 적이 있기도 했지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 건지 반수면 상태에서 온종일 누워만 있었다. 기상 후에는 비가 어마무시하게 내리지 않는 한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연다. 직업이 바뀜과 동시에 이사도 하였..
십대의 후반이었을까, 소크라테스의 직계 후손인 것마냥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정언명령으로 삼아 살던 시기가 있었다. 존재의 의미를 찾는 데 골몰하며 유난히 자신을 기록하는 데 여념이 없던 어느 날이었다. 블로그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올리고 무어라고 기록을 했다. 댓글이 달렸다. 나도 그 노래 좋아한다고. 그 댓글에 이야기를 더 이어 붙였다. 취향이 비슷한가 보다, 혹시 그 가수의 다른 노래도 좋아하느냐고. 이어진 댓글에 아는 노래 제목이 쓰여 있었다.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랜데?' 나는 외적으로는 다수의 취향이길 원하고, 내적으로는 나만 알고 있는 것들이 가득하길 바라는 모순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공유할 수 있는 소수의 단짝을 늘 갈망했다. 황급히 댓글을 더 달았다. 단어와..
달을 향한 말들 달님, 우리에게 말해주세요, 오, 완미하신 달님! 마치 너울대는 바다처럼, 인간들이 당신의 욕망대로 따르는 것이 즐거움이라면요. 그것이 당신의 바람인가요, 온종일 은은하고 잔잔하던 인간들이 밤중엔 들판들 낱낱이, 도시들마다 사랑의 죄악에 사로잡히는 것이요? 입맞춤들, 그건 당신을 향하여 솟아오르나요,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물기처럼, 당신의 도도한 이마 위로 어렴풋이 반짝이는 무지개 빛무리를 만들기 위해서요? 당신이 삐죽일 때면, 당신을 사로잡기 위해서, 혹은 당신의 기분을 달래기 위하여, 아름다운 두 뺨의 달님이시여, 사람들은 목을 매거나 침잠하게 될까요? 신발 없이, 기쁨 없이, 동전 한 푼 없이 걷는 그들을 위해, 거친 길 위 발걸음에 빛을 가질 수 있도록 당신이 청명하게 빛을 발하는..
나는 20-30대 자살 사별자 여성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 시작해 햇수로는 2년째다. 매달 수요일 저녁의 두 시간을 우리는 서로를 위해 쓴다. 코로나가 심했던 지난 겨울 몇 달간을 빼고는 빠짐없이 진행했으니 시간이 꽤 쌓였다. 모임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가도 예상치 못한 파도를 맞게 되는 주도 있다. 지난달 모임이 끝나고는 오랜만에 많이 앓았다. 숲에 다녀온 뒤라 마음이 열려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흙냄새를 맡으면서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여행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꿈을 꿔서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 오늘 세션이 어땠냐고 물으니 사람들이 죄다 명치께가 아프다고 했다. 한 분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동안 숨을 잘 못 쉬고 손가락을 뜯었다.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