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쪽. 싸우는 여자 ‘안은영’과 할머니: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
- 그림책 처음 일기: 희음
- 2020. 12. 28. 13:38
2015년의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6년의 문단내성폭력 말하기 운동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하고 노골적이며 일상적인가 하는 비밀이 폭로된 사건이었다. 비밀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비밀이 아니라, 비밀이 되어야만 하는 당위로서의 비밀이었다. 폭력의 행위자들이 욕망하고 요구하는 비밀 말이다.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는 그 비밀을 더 이상 비밀로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들의 총합에 다름 아니었다. 도처에서 증언들이 이어졌고, 증언들 뒤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연대체들이 생겨났다. 증언과 연대의 주체는 거개가 여자들이었다.
그 이후로 내 눈에 보이는 여성의 모습은 주로 ‘싸우는 여성’이었다. 방식과 영역은 달랐지만 모두가 그들 나름으로 싸우고 있었다. 광장과 거리에서 깃발을 들거나,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의 주체로 싸우거나 혹은 그 현장 자체의 성폭력 문제에 맞서 싸웠다. SNS 환경에서 고발과 증언, 지지와 연대를 통해 싸움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나 역시 광장과 거리에서, 일상적인 공간과 시간 안에서 내 방식의 싸움을 했다.
싸우는 여성은 대중 재현물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2015년 개봉된 영화 <매드맥스>가 그렇고 2016년의 <서프러제트>, <비밀은 없다> 역시 같은 흐름 안에 있었다. 무엇보다 2015년 말에 출판되어 넷플릭스 시리즈로까지 제작되는 등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정세랑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안은영’은 현실적 실체가 아닌, 환상적 상대와 싸우는 사람이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젤리 괴물과 싸우는 사람. 그가 사용하는 싸움의 도구도 보잘것없고 터무니없다. 깔때기 칼과 비비탄 총이라니, 말이 되는가. 그러나 안은영은 진지하다. 젤리 괴물 퇴치는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다. 퇴치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다친다. 이 때문이다. 이것이 안은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자신에게는 보이지만 그 밖의 대다수는 모르는 세계, 그 세계에서 외롭고 진지한 싸움을 지속하는 사람이 안은영인 것이다.
그림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에 등장하는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힐드리드 할머니’ 역시 싸우는 사람이다. 밤과 싸우는 사람. 아침이 되면 물러가는 밤이지만, 할머니는 그걸 모른다. 밤이면 밤마다 밤을 퇴치하기 위해서 싸운다.
손수 만든 거대한 삼베 자루 안에다 밤을 우겨넣어서 갖다버리려고도 하고, 커다란 가마솥에다 불을 지펴 밤을 펄펄 끓여 김으로 날려 보내려고도 한다. 어느 날에는 가위로 밤을 찰칵찰칵 잘라내고, 자신의 침대 속이나 우물 속에다 밤을 쿡쿡 쑤셔 넣기도 한다. 심지어 밤에게 자장가도 불러준다. 밤을 향해 온 힘을 그러모아 멀리 멀리 침을 뱉는 장면에서는 한참동안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할머니의 싸움에 대한 이 짧은 요약을 통해서도 익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할머니의 싸움은 매일같이 여지없이 실패한다.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올 때쯤 할머니는 하룻밤 동안의 힘겨운 싸움에 지쳐 잠이 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책 말미의 해설 페이지에서도 이 싸움의 실패에 대해 부각해서 쓰고 있다.
“그림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은 밤과 싸우는, 어리석고 엉뚱한 힐드리드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즐거운 유머로 가득한 엉뚱한 할머니의 행동은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밤에 일찍 잠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유쾌하게 가르쳐준다. 할머니의 모습은 밤에 잠을 자기 싫어하는 아이들, 바로 그 모습이다.”
할머니는 너무 어리석게도 밤에 저항하다 실패하는 삶을 살았으니 이를 교훈삼아 당신들(아이들)만큼은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할머니는 어리석고 한심한 존재이기만 한가. 할머니는 정말 실패만을 거듭했는가. 정말 이것이 이야기의 결론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할머니의 싸움을 지켜본 독자들이 한심함만을 느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대한 삼베 자루를 만들고 커다란 솥에 불을 지피는 것은 할머니가 가진 살림 능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밤을 가위로 자르는 일은 할머니가 아니면 고안해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할머니의 이런 엄청난 행위 능력과 상상력의 스케일에서 해방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나로선 더 어려운 일인 듯 느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할머니가 믿는 진실은 누구나 아는 보편적 진실에서 조금 빗겨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는 밤과 낮으로 이루어져 있고, 밤과 낮이 공존하기는 어려우며, 밤이 가면 낮이 온다는 사실. 우리는 이것을 과학적 진리로서 이해한다. 하지만 이 진리를 더 밀고 나가면, 북극과 남극 지방은 여름 내내 낮이며, 한겨울에는 밤만 계속된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밤이 가면 낮이 온다는 것은 일부 지역을 예외로 하는, 부분적인 진실일 뿐인 것이다.
이 사회가 지지해온 많은 진실과 보편적 진리 역시 힘의 원리에 의해 구축된, 부분적인 진실, 반쪽짜리 진실인 경우가 많았다. 여성과 소수자에게 가해져온 폭력에 관한 비밀이 지금껏 잘 지켜져 왔던 것, 그리하여 이 사회의 많은 남성 권력자나 지식인들의 정의로움이 검증 과정 없이도 존경받아온 것, 그렇게 은폐되어온 그들의 은밀한 폭력 행위가 최근에야 폭로된 것 또한 이를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은영이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젤리 괴물, 힐드리드 할머니가 온갖 상상력과 자신의 능력을 다 동원해 퇴치하려 하는 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사실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의 이 싸움을 우리가 그저 비웃음거리로 소비하거나 어리석고 쓸데없는 일로 치부해버려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해, 여성 및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행위와 그 많은 투쟁과 싸움을 통해 우리 앞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진실들을 보자. 그것들 역시 그전에는 진실 또는 현실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었으며, 그 진실이 진실임을 드러내기 위해 치러진 희생들이 너무 많았다는 점 또한 생각해보자. 안은영에게만 보이는 젤리 괴물과 힐드리드 할머니 앞에 나타난 밤이라는 괴물을 우리가 다수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은폐되어온 진실에 대한 은유로 읽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대중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믿는 진실, 그에게만 보이는 현실에 의지해 싸우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최선이라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친절이고 다정일 수 있다면, 그 싸움은 이미 승패라는 경계를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다는 것을. 안은영의 싸움과 힐드리드 할머니의 싸움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그 자체로 진실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며,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을. 나는 대중들이 안은영에 대해 보이는 환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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