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쪽. 돌봄의 회로에 대하여 : 『괜찮을 거야』
- 그림책 처음 일기: 희음
- 2021. 2. 1. 12:35
“나는 알아, 이 도시에서 작은 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책의 처음부터 이런 작은 목소리가 있다. 끄덕이는 목소리. 목소리 아래에는 겨울 도시의 풍경과 한 아이의 뒷모습이 행인1처럼 부려져 있다. 물론 아이의 몸은 그 밖의 행인1들에 비해 턱없이 작다. 작은 몸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 건 추위로 빨갛게 달아오른 아이의 볼 때문이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아이가 단단히 짊어진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목소리는 아이의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 목소리가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도시의 골목골목에 대하여 낱낱이 알려주고, 도시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을 속삭여주고, 도시 안의 숨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을 찾아 귀띔해준다. 목소리 안에는 다정이 가득하다.
“숨기 좋은 곳도 많아. 뽕나무 덤불 아래처럼 말이야. 아니면 검은호두나무 위도 괜찮아.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통풍구도 있어. 거기선 한여름 같은 냄새가 나.”
페이지를 조금 더 넘기면 아이가 단단히 짊어지고 있던 자신의 가방을 잠시 내려놓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핑크색 전단 중 한 장을 꺼내 거리의 벽에다 붙인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지나간 거리의 벽 도처에 핑크색 전단이 하나씩 붙어 있던 게 기억난다. 전단 속에는 고양이의 모습이 하나 그려져 있다.
“찾습니다.”
이제야 안다. 그렇게 다정했던 목소리가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아이는 왜 그리 오래도록 도시 속을 걷고 또 걸었는지. 그리고 그 목소리가 지닌 깊은 다정 속에 왜 불안과 안타까움이 다정과 비슷한 깊이로 스며 있었던 건지.
아이는 고양이를 잃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함께 살던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고양이는 웅크린 채 길게 울고 있을 것이고, 지친 몸은 내내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의 몫으로 남겨진 추위와 두려움은 아이의 마음 안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났을 게 뻔하다. 상상 속 한계의 테두리는 현실의 것보다 더 쉽게 파열되니까. 그럼에도 아이는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힘센 목소리였다. 도시와 관련한 그 많은 시시콜콜한 정보를 세세히 알려주는 목소리보다도 더 힘센 목소리. 고양이에 대한 온갖 걱정과 두려움을 삼키고 또 무릅쓴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화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지 않았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나고야 마는 일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는 마음.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것 앞에서 용기를 내는 마음. 용기를 내어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기어이 힘주어 말하는 마음.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힘 있게 말하는 장면 뒤에 배경처럼 깔리는 풍경이 있다. 아이보다 키가 큰 한 사람이 아이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 안으로 꼬옥 끌어안아주는 풍경. 가방을 멘 볼 빨간 아이가 작은 숨을 내쉬며 당연한 듯 그 품에 안기는 풍경. 설명은 없지만, 긴 머리를 하고 있는 그 사람은 아이의 엄마이거나 누나쯤으로 보인다. 아이와 한집에 살고 아이의 사정을 잘 알며 아이와 가족공동체를 이룬, 조건 없이 아이를 사랑하는 누군가일 것이다. 그가 아이의 엄마인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당연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의 힘은 허허벌판에서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는 말. 나의 행위나 의도와 상관없이 나를 소외시키고 나를 아프게 하면서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면하는 그 힘은, 내 안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 그건 사랑받은 경험에서, 포옥 끝까지 안겨본 경험에서, 나라는 전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받은 경험에서 나온다. 당연한 듯 달려가 안겼던 이의 품을 기억하는 힘이야말로 나를 오래도록 괜찮을 수 있게끔 하는 힘이고, 누군가를 향해 괜찮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러니까 아이는 ‘나는 너를 믿으며 네가 괜찮을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을 것이며, 들은 것을 자신의 입으로 되풀이해 말하는 것이리라. 들은 말을 들려준 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필요한 다른 존재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말이 사랑의 말일 때, 이렇게 하여 비로소 사랑의 회로는 탄생하는 게 아닐까.
아이는 고양이라는 작은 존재를 향해 말하고 있지만, 아이 역시 이곳의 풍경을 점령한 다른 많은 행인들에 비해서는 작은 몸을 가진 작은 존재다. “이 도시에서 작은 몸으로” 사는 건 고양이뿐만이 아닌 것이다. 도시 안에서 자주 웅크리고 자꾸 움츠러드는 이라면, 춥고 가난한 마음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 역시 작은 몸일 수 있다. 이 도시에서, 이 사회에서 너무 적은 지분만을 배당받았거나, 끊임없이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 이를 더 확장한다면 우리는 모두 작은 존재이거나, 작은 몸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작은 존재임’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바로 기댐이 필요한 존재,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고도 일컬을 수 있지 않을까. 돌봄은 실질적이고 물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일 수도 있고 기억에 대한 요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일방적이지도, 무조건적이거나 절대적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그림책 속 아이가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존재인 동시에, 다시 누군가를 찾아 나서며 그 누군가를 향해 전위적인 마음의 돌봄 세례를 퍼붓는 존재이기도 했던 것처럼.
그림책 속 아이는 능력의 주체다. 단지 돌봄의 수혜자 자리에만 있지 않고 돌봄의 행위 주체의 자리로 기꺼이 스스로를 옮겨 놓는 능력, 지나간 돌봄의 기억을 현재적인 것으로 당겨오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끝까지 포옥 안겨본 경험을 가진 이라면 아이와 같은 능력은 그의 안에 이미 잠재돼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그 한 번의 경험을 기억해내기만 하면 된다. 그 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괜찮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나를 뜨겁게 끌어안았는지를.
그 기억을 잊지 않고 그 기억이 부여한 힘을 내 손이 닿는 곳까지만이라도 소환해내는 실천들이 모였을 때, 돌봄의 회로와 사랑의 회로는 더 넓은 반경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게서 시작되어 누군가에게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잡았을 그 돌봄의 실천은, 다른 모양의 돌봄으로 어느 먼 작은 존재에게 전달되어 그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기억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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