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2 개인주의자적 삶(세 번째 조각)

    언젠간 하게 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되도록 천천히, 언젠가는. 그러나 생각보다 조금 빠르게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나의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이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으니까. 내 우울을 따라오고 내 우울을 이끄는 이야기, 나의 경험이자 비밀이었던 이야기.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드는 친구이자 가장 큰 적. 나의 숙제.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 16년이 지나도 여전히 어떤 부분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 나는 성폭행 피해자다.

    폭력은 늘 일방적이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듯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바라보고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국어사전이나 교과서 등의 가르침에는, 우리의 머릿속에는 폭력의 이미지만이 그려져 있다. 주먹질과 상처와 비명과 몸부림의 이미지. 전형적인 폭력의 이미지다. 국어사전에 실린 폭력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저 정의대로라면 폭력의 피해자는 눈에 보이는 상처를 동반하기 쉽다. ‘거칠고’ ‘사납게’ ‘제압’당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선명하다. 그러니 우리는 더는 묻지 않는다. 그 폭력은 왜 발생되었고 어떻게 폭력이 되었는지. 왜 이것이 폭력이고 왜 저것은 폭력이 아닌지. 눈에 보이지 않으면 폭력이라고 할 수 없는 건지. 눈에 보이는 상처가 있다면 모두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폭력이 무엇인지. 나는 폭력을 당한 것인지, 가한 것인지. ‘거칠고’ ‘사납게’ ‘제압’당한 것인지. 폭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도 될 만큼의 상처를 입은 것인지.

    폭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었다. 내게는 눈에 보이는 상처도,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는 전형적 폭력의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폭력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싫었던 건지, 무서웠던 건지, 화가 났던 건지, 강제성이란 무엇인지, 내가 겪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부분은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로 알 수 있는 부분은 어떻게든 되는 대로 입력 중인데 몸으로 감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텅 빈 느낌이라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다. 나의 우울이 채운 자리는 바로 그 자리였을 것이다. 또 그 자리가 날 우울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 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미 놓친 감각은 다시 채워질 수 없다. 생각은 색과 온도가 없어서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감정과 감각은 늘 색과 온도를 가지기 때문에. 상황이 지나가면 놓쳐버린 색과 온도는 다시 느낄 수 없다. 나는 피해 상황 당시에 미움도 두려움도 절망도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 상황 직전까지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거라곤 내가 나에게서 빠져나가 나를 관조하는 기분이 전부였다. 그래서 폭력이라고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후에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사실은 그 경험이 강한 충격을 받았을 시 겪을 수 있는 해리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내가 해리 증상을 경험했던 건 그 순간만큼은 말 그대로 ‘물건’으로 대해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폭력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세우게 되었다. 그 순간은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텅 비어버린 그 자리는 다시 채워질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전부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16년을 내 안에서 싸웠고 어떤 순간엔 좌절을, 어떤 순간엔 깨달음을 느꼈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지겹다. 지겹고, 또 지겹다. 잊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르고 나는 또 싸워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분명한 것은 나는 이렇게 16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꽤나 오랜 시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잊고, 떠오르고 또 싸우며.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온 내가 조금은 안쓰럽다.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연민을 느낀 것은 작년이었다. 처음엔 나는 나에게 연민은커녕 분노만 잔뜩 가지고 있었다. 타인에게 분노해야 할 부분을 전부 나한테 쏟아낸 것이다. 외부에 대한 미움이 없는 고통은 나를 자책하게 했다. 왜 나를 고통스럽게 하냐고, 왜 나를 그 상황에 몰았냐고 추궁하고 미워하고 벌을 주고 주저앉혔다. 피해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상담사가 내게 그건 성폭행이라고 처음으로 알려주기 전까지 나는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내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단어로나마 알 수 있게 된 지금, 나를 향한 분노는 연민으로 바뀌었다. 지난 6년은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애쓴 시간이었다. 여전히 어떤 부분은 석연찮지만, 이제는 그래도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날 사로잡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는 놓아준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나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걸. 왜 나 자신을 그 상황에 몰아넣었는지 더는 추궁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잃어버린 채 버티며 살아온 시간이 대견하고 또 안쓰러울 뿐이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렇게 계속 날 안쓰러워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잊어버릴 수도 없다. 여전히 어떤 흔적은 내게 남아 있고 자꾸만 그게 보인다. 그냥 넘어가기가 힘이 든다. 흔적들을 안고 살아가는 삶. 내가 가진 흔적은 어떤 것인지, 내가 받은 상처는 어떤 상처였는지, 전형성의 허울이 전형성을 벗어난 이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어떤 피해자의 삶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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