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오래 엄마를 간병하면서 알게 된 건, 병원에 있는 건 생각 이상으로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데 쓴다는 것이었고,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괴팍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꽤 노력이 필요하단 거였다. 장기 입원 환자들이 시시때때로 간호사를 호출해서 발이 시리다, 약이 제대로 투여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등등의 말도 안 되는 불평을 하는 것도 모두 시간을 보내는 방법들 중 하나였다. 이다도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별의별 방법을 써봤다고 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검정고시 공부를 했고, 겨울에 두를 목도리를 짜기도 했고, 유투브로 베이킹 기초 영상을 모조리 찾아보기도 했단다. 하지만 점점 뭔가 하는 걸 멈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정고시를 보기 위..
비행체가 퇴각하자마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나의, 그리고 우리 마법소녀들의 능력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필요로 했다. 엉망이 된 도시, 절망한 사람들. 우리의 희망으로서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첫 프로그램은 토크쇼였다. 얇은 반투명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하는 토크쇼. 무려 126명의 마법소녀들이 모두 한데 모였다. 나는 그 얼굴들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가장 맨 앞에는 하늘을 나는 걔, 가 앉았다. 걔는 끊임없이 생글생글 웃었고 토크쇼 중간의 장기자랑에는 섹시댄스까지 췄다. 아이돌이 꿈이었다고. 나는 한 번도 이런 옷을 입고 사람들을 구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대부분 검정색이나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프릴이 가득한 블라우스나 치마를 입으면 무너지는 벽..
이다는 비행체가 퇴각한 이후부터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구토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비행체의 공격 이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암환자가 늘었다고. 아마도 방사선 노출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작 그들과 가장 많이 접촉했을 나는 멀쩡했기 때문에 나는 그 뉴스를 믿지 않았다. 원래 사람이란 게 그렇다. 제 눈앞에 없으면 타인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다가, 바로 그 피해자였다. 보호자가 피습으로 모두 사망한 이다는 국가의 ‘보호’ 차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종종 이다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정부 사람들. 이라고 누군지 묻는 나에게 이다는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답했다. 이다는 채혈을 자주 했다. 얇고 허연 팔뚝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가..
어린 시절, 엄마는 나보다 내 운동회에 열심이었다. 엄마는 운동회 전날부터 ‘예쁜 도시락 싸는 법’을 열심히 검색했고 간식으로 반 전체에 들어갈 간식을 꼼꼼하게 골랐다. 나는 엄마가 간식위원을 하는 게 싫었다. 엄마는 항상 건강에 좋은 호밀 샌드위치나 유기농 과일 컵도시락을 골랐는데, 그런 게 간식으로 들어오면 반 친구들은 항상 ‘야, 또 선우 니네 엄마가 간식위원이지?’하고 온갖 핀잔을 줬다. 그래서 나는 운동회만큼은 엄마가 간식위원을 하지 않길 바랐는데, 신기하게도 꼭 엄마는 운동회 때마다 간식위원을 했다. 엄마, 이번엔 그냥 햄버거 돌리면 안 돼? 내가 눈치를 보며 엄마의 곁에서 쭈뼛대며 물으면, 엄마는 그런 건 건강에 안 좋다고 했다. 나 그거 먹고 싶은데. 차마 엄마가 그렇게 유난 떠는 거 쪽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저기 혹시…….’ 이다. 그날 이후로 나를 알아보는 모든 사람들은 저기 혹시, 하는 말로 모든 말을 시작했다. 슬로모션으로 떨어지는 전광판을 한 손으로 잡아 던져버리고, 웅크리고 앉은 할머니를 한 손으로 끌어안아 피한 바로 그날부터. 그을음으로 얼굴이 엉망이 된 나는, 까무러친 할머니를 한 손으로 들쳐 업고 금이 가는 벽을 등으로 받쳤다.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저기로 나가세요! 내가 다급하게 소리를 쳤고 허공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 선우야……! 나는 엄마의 표정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튀지 마. 적당히 해. 다들 하는 걸 왜 너는 못 하니?’ 이런 것들이었다. 엄마는 ..
“경과가 아주 좋아요. 기적적일 정돕니다. 환자분께서 의지가 강하셔서 그랬는지…… 워낙 체력도 좋았고요.” 눈이 시렸다. 의사는 열성적으로 엄마의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엄마는 암세포가 자란 가슴을 거의 절반을 도려내고 결국 이겼다. 엄마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과학 기술이 당신을 구할 것이라고, 발전한 현대 의학에 힘입어 자신은 암을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재발 위험이 높으니, 로 시작되는 고까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내 몫이었다. 퇴원 일자를 받았다. 약 열흘 후였다. 피 검사나 소화 기능의 경과를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엄마는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그 파리한 얼굴에 갑자기 무지개가 드리운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
4. 인생의 고난시기 혹은 실패경험과 그 극복과정을 기술하시오. (500자 내외) 나는 도무지 이 질문을 참을 수가 없다. 한숨을 쉬며 노트북 화면 탭을 번갈아 클릭했다. 쓰다 만 자소서 화면이 벌써 일곱 개였고, 나는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다른 자소서 탭으로 옮겨갔다. 그게 벌써 일곱 번째라는 뜻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처음 썼던 화면으로 돌아갔다. 시집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였다. 대체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왜 그 사람의 고난과 실패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 그게 그렇게도 궁금할까? 다른 사람을 처음으로 만날 때 그 사람의 고난과 실패부터 알고 싶어 하는 건 정말 고약한 일이다.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고난과 극복 경험이 궁금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경험을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