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분에서 나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썼다. 친구의 가족사와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은 목격자로서 나의 책임에 관한 내용이었다. 민감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발행 전 친구에게 동의를 구해야 했다. 떨면서 카톡을 했다. 일단 내가 자살 사별과 애도에 관련된 내용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친구에게 말하고(나는 가까운 몇 명의 친구들에게만 이 연재의 존재를 알렸다.) 그 에세이에 본인의 이야기를 싣고 싶다고 제안해야 했다. 그 글에는 내가 차마 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들어가 있었다.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초조하게 이 일 저 일을 꺼내 들다 말았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먼저 흔쾌히 글을 발행해도 좋다고 허락해줬고, 한 문장을 빼달라고 했다. 그것은 내가 수정이..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본 친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작년 여름인지 재작년 여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건대 앞, 도삭면이 유명하다는 집에서 밥을 먹었다. 딤섬 찌는 통에서 나온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식당이었다. 비가 오는데 좁은 처마 밑에 앉아 입장 순서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약속을 매번 미루기만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만나자고 날짜를 정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보고싶다는 친구의 말에, 그럼 강아지를 데리고 한강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갔었던 서래마을의 버거집에서 음식을 포장했다. 한강 공원은 인산인해였다. 강아지를 태운 채 운전을 하고 꽉..
자조모임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색의 팔찌다. 각 색깔은 고인과 사별자의 관계를 상징한다. 고인이 자신의 형제자매라면 주황색을, 애인이나 파트너라면 빨간색을, 친구라면 보라색을, 부모라면 흰 색을 착용한다. 이렇게 팔찌를 착용하는 이유는 고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가 애도의 모습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모든 죽음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숙제다. 그런데 이 팔찌 색깔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간에 긴장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나도 2년 넘게 매달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말하는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필리핀 북부에 살고 있는 일롱고트(Ilongot) 부족에게는 ‘머리 사냥(head hunting)’이라는 문화가 있다. 말 그대로 다른 부족 사람의 머리를 사냥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사람을 죽인 자를 찾아가 목을 베고, 마을 어귀에 매다는 것이다. 사람의 머리를 잘라 전시한다는 무시무시한 행위는 ‘야만인’들에 대한 서양인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인류학자들은 일롱고트인이 머리 사냥을 하는 이유를 제각각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밀림에 사는 작은 부족들이 전쟁을 감당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전쟁이 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기 때문에 상징적인 복수를 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낫다는 것이다. 죽음을 죽음으로 교환하는, 일종의 교환 경제가 작동하는 것이..
전 애인과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엄마가 느닷없이 그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기 전부터 엄마는 그가 내게 너무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모른 척해왔으나, 무언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 못마땅함의 정체가 추접스러운 호모포비아일 것이 걱정되었던 나는 딱히 왜인지 묻지 않았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와 헤어지고도 몇 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갑자기 그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이름 다음에 듣게 된 이야기는 당혹보다도 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전 애인은 내가 동생을 자살로 잃은 직후부터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 내가 자취방을 청산하지 않고 가족들이 함께 사는 집으로부터 도망쳐 쉴 수 있도록 지탱해 주었고, 고통에 질려 팽팽하게 당겨진 내..
나는 20-30대 자살 사별자 여성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 시작해 햇수로는 2년째다. 매달 수요일 저녁의 두 시간을 우리는 서로를 위해 쓴다. 코로나가 심했던 지난 겨울 몇 달간을 빼고는 빠짐없이 진행했으니 시간이 꽤 쌓였다. 모임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가도 예상치 못한 파도를 맞게 되는 주도 있다. 지난달 모임이 끝나고는 오랜만에 많이 앓았다. 숲에 다녀온 뒤라 마음이 열려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흙냄새를 맡으면서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여행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꿈을 꿔서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 오늘 세션이 어땠냐고 물으니 사람들이 죄다 명치께가 아프다고 했다. 한 분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동안 숨을 잘 못 쉬고 손가락을 뜯었다.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