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스텝, 사람들이 매장이 멋지다고 난리야. 막 와서 사진 찍어가고 그러네, 하하. 조만간 이 매장을 프랜차이즈로 확장하려려고. 조 스텝이 확장되는 매장 관리나 오픈 준비 이런 걸 좀 맡아주면 좋겠는데, 어때요? 회사에서 차도 주고, 기름값도 주고, 법인 카드 주고 그럴 건데. 그러면 조 스텝은 전국에 오픈되는 매장에 가서 물건 배열해주고, 포스 사용 알려주고 그러는 거지.” “우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좀 더 구체적인 제안을 주셔야 저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차랑, 법인 카드, 월 200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네, 그럼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정말이지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나만 해도 이렇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틈틈이 농사를 짓고, 집 안팎을 살피는 삶을 살..
동그란 사람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을 풍성히 가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주어진 삶의 조건을 인정하고 나아가 극복하려는 자세이며,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신뢰하고 긍정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이런 사람을 흔히 ‘부지런한 사람’이나 ‘살림꾼’ 등으로 부르곤 한다. 여기에서 언어가 그 의미를 축소해버리는 한계를 경험한다. ‘부지런한 사람’이나 ‘살림꾼’으로 그 존재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니 말이다. 지인 중에도 자신의 삶을 부지런히 일구어 나가는 사람이 여럿 있다. “밤이 엄마”는 그중 한 사람이자, 단연 으뜸이라 여겨지는 사람이다. 그녀를 알게 된 건 두 해 전 사회학 세미나에서였다. 초롱초롱한 눈, 둥근 얼굴과 광대, 또 둥그런 코와 입,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동글동글했다. 심지어..
봄이 왔다 한낮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 덕에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추위에 약하지만 더위에 강한 나는, 날이 풀리자 입맛이 돌고, 활동량도 상당히 증가했다. 집안 곳곳, 매장 곳곳을 청소하는 재미로 일상을 채우고 있다. 일하고 있는 편의점은 작고 알차다. 매장의 규모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기본적인 라면, 과자부터 냉장식품과 냉동식품, 면장갑이나 비옷 같은 잡화류와 A4용지, 지우개 같은 문구류까지. 잘 나가는 상품은 담배와 라면, 즉석식품, 건전지 정도다. 작년 여름에는 계절에 맞춰 썬크림도 들여놨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고,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시내가 있다 보니 간편한 상품들만 나가는 편이다. 상품 발주는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한다. 다만 발주 통..
요즘 하는 생각 요즘에는 몸을 ‘지니고’ 산다는 생각을 많이 생각해요. 처음에는 몸을 ‘데리고’ 혹은 몸에 ‘이끌려’ 산다고 생각했어요. 의지와 상관없이 새벽에 출근해야 할 때,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면 특히 이런 생각이 짙어졌죠. 내가 힘들지 않아야 몸을 건강히 살필 수 있는 것인지, 몸이 건강해야 나도 힘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전자가 몸을 ‘데리고’ 사는 것일 테고, 후자가 몸에 ‘이끌려’ 사는 것일 텐데… 그러다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몸인가 정신인가, 무엇이 우선인가, 우선을 논할 수 없는 것인가? 둘 다인가? 이러한 논의에 관련된 여러 도서를 읽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아쉽게도 도서관이 휴관 중이네요. 허허, 너..
레모네이드 손님 무덥던 여름날, 가게에 젊은 여성이 들어와 길을 물었다. 어눌한 한국말이지만 발음만큼은 정확하다. 특히 ‘~요’라는 어미를 분명하게 발음해냈다. 그녀가 물어본 상호는 근처에 있는 닭 가공 공장의 이름이었다. 생긋 웃어 보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그녀는 또다시 뙤약볕 속으로 사라졌다. 삼십 분이나 지났을까. 그녀가 또다시 매장을 찾았다. 내내 무례한 태도로 담배를 달라는 아저씨들만 보다가 생긋 웃으며 레모네이드를 주문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몽골 사람이다. 네팔, 중국 상하이, 미국 동부와 남부 그리고 몽골. 내가 밟아 본 이국 땅인데, 이 모든 일정을 ‘여행’이라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싶다. 모름지기 여행이라면 원하는 사람과 함께, 계획이든 즉흥..
미용실 투블럭으로 잘라달라는 나의 요청에 미용사가 조심스럽게 되물어 왔다. “실연 당한 거는… 아니죠?” “아니에요, 더워서 짧게 자르려고요. 버킷리스트이기도 했고요.” 겸연쩍게 웃어넘기며 대답했지만 사실 어떠한 결정적인 이유를 갖고 투블럭을 결정한 건 아니다. 그저 무더운 여름 더위에 긴 시간 머리 말리는 게 곤욕으로 느껴진 게 투블럭 유혹의 시작이랄까.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머리카락이야 또 자라니 뭐. 그런데 긴 머리는 댕강 묶으면 그만이지만 짧은 머리는 손질이 힘들 텐데. 밤에 감고 잤다가 아침에 뻗치면? 흠, 머리는 밤에 감는 게 좋다는데. 게다가 매달 미용실 가서 정리하려면 긴 머리보다 돈도 더 들고. 무엇보다 투블럭이 안 어울리면 어떡하지? 되돌릴 수도 없고. 하..
하루는 코가 빨갛게 달아오른 손님이 등장했다. 풍기는 냄새와 흐느적거리는 몸사위에서 그의 코를 빨갛게 만든 건 이미 물러간 추위가 아닌 알코올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꽤 취해보였음에도 자연스럽게 소주를 한 병 집었다. 이 매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술에 취해 진상을 부리는 손님을 만난 적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이 다행스러운 일이 지금 앞에 서 있는 코 빨간 아저씨로 인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긴장된 마음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어 가며 소주를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그는 또 자연스럽게 딸깍하고 소주 병을 땄다. “저기, 손님… 여기는 편의점이라 실내에서 술을 드실 수 없어요. 저기 밖에 테라스에서는 가능한데…” “아가씨, 나도 알아요. 뭐!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봐서?” 아, 네. 그렇..
감사인사 성탄의 아침부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더니 감기몸살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일 년 만에 찾아온 몸살로 인해, 연말과 연초에는 모든 에너지를 건강 회복에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처음으로 웹진 쪽의 연재 날을 어기고야 말았습니다. 원고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만족보다는 늘 아쉬움과 후회를 달고 삽니다. 그나마 마감일을 잘 지켜냈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어디에라도 마음을 기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위로받을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감일을 지키지 못한 것을 두고 그 누구도 저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마감일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그 어느 때보다 충실히 이 지면을 위해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일상을 돌이켜보게 해..
살면서 딱 두 번 들은 이야기 살면서 딱 두 번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엄마가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회사 동료를 두고, “그 사람은 자기 아들 팬티까지도 다려 입혔데.”라며 결벽증과 신경증, 완벽주의가 있다는 듯이 그 동료를 묘사했을 때 처음 들었다. ‘아들의 팬티까지도 다려 입히는 엄마’라니. 너무나도 놀라운 것도 잠시,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아 이런 엄마 얘기를 또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고 본인이 그러한 엄마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 장가가기 전까지 팬티까지 다 다려 입혔어.” 이런 말을 한 사람은 150cm 조금 넘어 보이는 왜소한 키에 깡마른, 그러나 나보다 기운이 좋으시고, 젊은 시절 공인중..
매장 오픈을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일은 참 힘겨웠다. 이른 기상을 위해 전날 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늦잠에 대한 걱정과 긴장으로 새벽 한 시 반, 두 시 반, 세 시 반, 네 시 반… 새벽 내내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평소 나는 머리만 대면 잠에 들어 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잠의 질이 좋았다. 잠의 질이 떨어져 겪는 고통은 상당했다. 출근 시간에 대한 긴장으로 어떻게 출근까지는 해내도 도무지 노동을 할 힘이 나질 않았다. 자꾸 몸이 밑으로 축축 쳐졌고, 속이 늘 답답했는데 나른한 몸과 달리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차듯이 맥박이 빨랐다. 게다가 늘 결리고 뻐근한 허리 치료를 위해 난생처음 P.T.를 하고 있던 터라 일곱 시간의 노동이 끝나면 또 정신없이 헬스장으로 가야 했다...
장마 비가 연일 지속되던 여름날에 블루베리 아저씨는 “파전 먹고 싶지 않냐?” 하셨다. 아무래도 본인이 먹고 싶은 눈치였다. 그가 틈틈이 가꾼 텃밭에서 부추를 베고, 옆집 호박을 서리해다가 부쳐 온 부침개는 따뜻해서, 함께 먹어서, 비가 와서 더 맛있었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간장 소스가 새콤달콤 짭조름한 게 얼마나 감칠맛이 나던지. 그 비결이 무언지 그는 끝내 알려주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별로 궁금하지가 않아 아쉽지가 않았다. 지난여름 내내 나는 그와 자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 개통된 IC 이야기, 시에서 주관하여 마을 안쪽에 분양되고 있는 큰 부지의 산업단지 이야기, 도로 확장 이야기, 상속 절차와 토지 가처분 이야기, 법무사와 개발업자에 대한 이야기, 마당 보수 이야기, 전기..
산다는 게 참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끼니를 제때 잘 챙겨 먹고, 잠을 제때 잘 자고, 화장실을 제때 잘 가기만 해도 심신이 평안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는 것. 너무나도 간단하고 단순해 보잘것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지켜내기 어렵고, 또 보다 나은 의식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잃고야 만다는 것이 나만의 경험은 아니리라. 여성, 청년, 파트타이머의 정체성으로 하루 일곱 시간 이곳에서 노동을 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안간힘을 써도 이 기본을 지켜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침에 눈 떠 세수랑 양치만 간단히 하고 옷을 갈아입고 5분 정도 운전을 해서 출근하는데, 따뜻한 물 좀 마시고 간단히 요기를 ..
뭐든지 처음은 낯설고 그 낯섦은 결국 어려움이 되어버린다. 해내야 하는 업무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낯설기에 어렵게 느껴진다. 이 아르바이트 일도 그러하다. 오랜만에 마주한 포스는 예전에 사용하던 포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았다. 카드 결제를 누르면 바로 결제되지 않고 승인 키를 한 번 더 눌러야 결제가 된다는 것이나, 바코드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품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때마다 가격을 확인하여 그 값을 결제하고 후에 시간이 있을 때 몇 번의 클릭을 걸쳐 바코드와 가격을 등록해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포스 조작의 낯섦뿐만 아니라, 편의점 업무와 동시에 샷을 내려 커피나 기타 음료를 제조해야 하는 카페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도 큰 낯섦이었다. 늘 그렇듯 시간은 꽤나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얼마..
- 안녕하세요, 알바몬에서 보고 연락드립니다. 조이 / 27세 / 여성 / 차로 5분 거리에 거주, 자차 있음 / 카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 있습니다. 커피와 음료 제조 가능, 선입선출과 청소, 포스 사용 잘 합니다. 문자를 작성하는데 내심 ‘나를 뽑을 수밖에 없지’ 하는 자신이 든다. 생존에 쫓겨 해왔던 편의점, 카페, 식당, 주유소 등의 많은 아르바이트 경험과 1년 좀 넘게 근무한 회사 생활 이력은 대기업 취업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되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아르바이트 자리에 갈 때는 큰 자산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인력이 드문 노동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텐데 이 동네가 딱 그런 상황이다. 문자를 발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 안녕하세요, 문자 보고 연락드려요. 정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