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는 페미니스트 선언을 계기로 내가 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돌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달에 통장에 들어 올 돈, 내년에 살게 될 집, 삼 년 후 내가 가 있을 곳, 이런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쉽게 죽고 싶은 기분이 드는 보면 지금을 딱히 멀쩡한 상태라고 하긴 어렵지만, 선언 이후의 내가 그 이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뭔가 이상 상태였다. 하지만 이게 단지 나 하나만의 서사가 아니었기에, 어떤 식의 의미화가 가능하다. 당시 인터넷에는 기존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글들이 넘쳐났다. 과거에 남들에게 밝힐 수 없었던, 또는 애매하고 불쾌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또는 아..
고양이 또 100시간을 보냈다. 자격증 두 개를 따려고 식구들에게 돈과 돌봄노동을 빚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딘가로 이동하고 앉아서 꼬박 200시간을 보냈다니 놀랍다. 모 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코스를 수료하고, 이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전문상담원교육코스를 수료했다. 간단히 요약된 소감을 말하면,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공시한 기관이라고 이 자격 코스의 수준과 내용이 다 똑같지 않아서 앞의 100시간은 정말 힘들었다. 뒤의 100시간은 그에 비해서는 즐거웠다. 하지만 온갖 스케줄의 틈바구니에서, 주 2회나, 저기 저 세상의 끝(처럼 내게는 느껴지는) 불광에 아침 10시부터 가서 앉아 있으려니 좀 죽을 맛이긴 했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도 나는 왜 이 자격증들을 따자고 마음먹었을까?..
고양이 ‘페미니즘을 배워야 아는 것인가,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오래 고민했다.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쓰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자. 우리 모두는 자신의 위치에 따른 당파성을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하고, 다만 자신이 인지하는 세계가 얼마나 편협한지를 잘 인지하고 있는지가 문제라는 것. 그래서 중립 지대에서 답을 내릴 수 있는 판관 같은 건 세상에 없다는 것. 이것들이 내가 지금껏 페미니즘 정치학에서 배워 온 바다. 그러니 내 위치부터 밝히자.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이 세대의 어떤 페미니즘이 너무 쉽게 ‘더 가진’ 사람들의 것이 되어 온 현상에 늘 불만을 가져 온 쪽이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성별이 여자인 것 빼고는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페미니..
고양이 곧 부양의무제가 전면 폐지된다고 하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마음속으로 안 들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부양의무제가 있는 나라에 산다는 건, 한 사람이 기초생활수급 등을 탈 정도로 충분히 가난해도, 그 사람의 부모·자녀· 배우자, 그러니까 가족(!)들이 충분히 가난하지 않으면 가난을 인정받을 수가 없단 얘기다. 다들 원가족은 자기가 고른 게 아니라서, ‘가족’ 사이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다. 그런 수많은 일들 때문에 가족이 연락을 안 하고 사는 사이가 된다면? 국가가 정보망을 동원해 한 사람의 가족을 찾아 내 ‘부양의 의무’를 고지한다. 월급과 재산을 차압해서라도 책임을 떠넘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부양의무제는 원래는 국가가 했어야 할 일을 ‘비용절감’을 위해 가족에게 떠넘기는 데 이..
고양이 오늘도 먹고 살기는 바쁘다. 오전 일찍부터 과외를 하고 원고를 쓰려고 카페에 들어 와 앉았다. 다른 원고 하나를 마무리해서 보내고,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붙잡고 이 원고 아이디어 메모를 붙잡고 있는데, 바짝 붙은 옆 자리에 커플이 들어와 앉았다. 둘의 대화가 너무 시끄러워서 이어폰을 끼고 원고 작업을 계속 하려고 했지만, 오늘따라 이어폰을 안 가지고 왔다.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둘의 대화를 듣고 앉아 있었다. 여자는 하이힐을 신고 왔는데, 앉자 마자 발이 너무 아프다며 올리브영에 가서 신발에 붙이는 패드를 사다 달랬다. 남자는 “누가 그런 신발을 신고 오래?” 했지만 선뜻 카페 밖까지 나갔다 왔다. 이후 둘은 핸드폰을 들여다 보거나 여자가 화장을 고치거나 하며 별 내용 없는 대화를 계속 했다. 여자..
고민을 해 봐도 뭐라고 달리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여전히 그를 여기서부터는 ‘엄마’라고 적을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깝다. 가명을 쉽게 짓기도 저어되는데, 엄마의 이름은 설상가상 엄마의 아빠가 동사무소 직원에게 고민 끝에 지은 이름 석 자를 불러주었을 때, 그만 사투리 화자들의 조음 능력 및 모음 변별 능력을 사유로 한 의사소통 상의 오류로 덜컥, 잘못 쓰여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이혼을 해내는 날 자신이 갖고 싶은 이름을 새로 갖기를 바라며 엄마를 섣불리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를 저어한다. 남의 선물 포장지를 뜯어버리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될까 봐. 여튼, 엄마에게 나 어릴 때를 물어 보면, 엄마는 늘 ‘갓난쟁이’였던 나를 어디든 안고 다니며 엄마가 말도 못하는 내게 얼마나 많은 말을 걸었는지..
나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화 되는 그 순간들이 모두에게 어땠는지 늘 궁금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언어로 쏟아져 나오는 그 순간들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응원하고 싶다. 두 번째 글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말하기에 대해 계속 얘기하면서 이전의 삶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써 보려고 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이 연재물 전체의 소재가 될 것이다.) 그저께는 국회에 다녀 왔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듣고 있고,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국회 방문 일정이 있었다. 일정 중에 방문한 헌정기념관 한 켠에는 ‘발언속도가 가장 빨랐던 의원’의 이름과 얼굴이 붙어 있었다. 기념관의 안내문에 따르면 국회의원 평균 발언 속도는 분당 300자, 숙련된 속기사의 최대 속..
지면을 얻었으니, 나를 소개해야 한다. 이런 나를 도대체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자기소개는 매번 어렵지만, 그걸 하기 전에 먼저 이에 대한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자기소개를 어디서든 무리없이 비슷비슷하게 해 내고도 무탈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인격 수준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이 사회의 강자, 권력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인자한 표정을 하고 있어도, 나는 좀처럼 그를 믿기 어려울 것이다. 또, 나는 자기소개 자리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에게 쉽게 나의 호의를 내어 주지 않기도 한다. (이런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비사교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내 이야기를 이렇게 공개된 지면에 가감없이 풀어 말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종다양해서, 사람이 제대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