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건조함도 밤이슬이 내린 이불을 말리기는 역부족이었는지 이불은 눅눅했다. 사막의 밤은 추웠다. 두껍고 눅눅한 이불을 네 겹이나 덮으니 그런대로 하늘의 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사이에서 눈을 부쳐야 하는 처지였던지라 이불이나마 나는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파리 투어에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여행객이 있었고 나는 유일한 여자였다. 그 덕분에 사파리로 먹고 사는 자칭 사막의 왕자들은 함께 웃고 떠드는 중에도 나를 주요한 대화 상대로 삼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나는 세이프존에 있는 느낌을 받았고 동시에 또 조금 슬펐다. 나머지 두 명의 여행객은 잘 자란 교양있는 청년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 중 한 명은 인도 출신의 매우 호방한 성격에 ..
혼자 인도로 여행 간다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둘로 나뉜다. ‘여자 혼자서는 위험할텐데’와 같은 우려 또는 ‘여자 혼자 대단하다’와 같은 감탄. 혼자 떠나서 혹은 그곳이 인도라서 더 위험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다. 전 세계 어디든 여자가 여행하기에 혹은 살기에 안전한 곳은 별로 없다. 그리하여 나는 인도로 떠났다. 타지마할의 도시로 알려진 아그라. 아그라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칸의 레이더망에 걸려 들었다. 그는 아그라의 툭툭 드라이버다.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타지마할로 가는 길에 그는 내게 일일 투어를 좋은 가격에 제시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꽤나 좋은 조건이라 생각해 딜을 체결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의 밥이 되었다. 타지마할에서 두 시간여를 보내고 다시 칸을..
나는 굳이 따지자면 비혼주의자다. 비혼의 삶을 적극적으로 택했다기보다는 결혼할 이유를 찾지 못해 비혼주의자다. 그런데 그 비혼주의, 더 못할 수도 있겠다. 결혼할 이유가 생겼으므로. 나는 집을 좀 사야겠다. 이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쪽으로 난 큰 창으로 사시사철 나무를 볼 수 있는 집이다. 창으로 나무를 볼 수 있는 집, 내 오랜 드림하우스다. 집 앞에 작은 대나무 숲이 있고, 그 앞으로 무려 '불국사'라는 이름의 절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눈 오는 날 자그마한 대웅전 기와에 쌓인 눈은 세상 모든 운치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 집은 3층밖에 되지 않는 지은 지 40년 된 연립주택이지만,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도심을 굽어보게 하는 능력이 있다. 뜨끈한 차 한 잔을 후루룩 마시며 그 풍경을 내려다보는 ..
델리에 와보니 어딜 가도 개들이 참 많다. 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주로 중 대형견들이다. 낮이고 밤이고 거리에 널브러 자는 개들이 정말 많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해치기는커녕 긴장한 이방인에게 ‘느긋하라’ 말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개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는 것은 개새끼라 호명되는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수의 인간 새끼 아니 정확하게는 남자들이다. 개들은 죄가 없다. 그 날은 뉴델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델리의 혼돈이 무섭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후마윤의 무덤"이라는 데를 꾸역꾸역 다녀왔다. 죽은 남편을 기리며 왕후가 지은 우아한 무덤 정원으로 느릿느릿 진입하는데 교복 입은 사내아이들이 꽤 보인다. 고등학생일까.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체구가 ..
막 성에 눈을 뜬 사람 마냥 지나가는 바지춤만 봐도 침을 꼴깍 삼킬 만큼 성적 에너지가 활활 타오르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그 화력을 키운 마른(Thin) 장작 같은 한 사내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길쭉하고 말라서 흡사 마른 장작 같았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나는 속으로 그의 물건을 추앙해 마지않았다. 그것은 단연코 그의 신체 중 가장 덜 마른 장작스러운 것이었다. 그 역시 경험적으로 자신의 물건이 값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앞으로 결코 다른 사람과의 잠자리를 만족하기 어려울 거라며 저주에 가까운 허풍을 떨었다. 나는 피식 웃어주었다. 그도 별 수 없는 ‘한국 남자’였다. 마른 장작의 ㅈ부심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는 게 뒤이어 만난 한 사람을 통해 드러났다. 그이의 그것은 일명 피넛 (땅콩)이라고,..
김해 공항에 오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서울-부산 장거리로 사 개월 정도를 만났는데 그런 연애는 또 없을 예정이다. 그날은 내가 부산으로 데이트를 하러 간 날이었다. 기차역으로 마중 나온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김해 공항 근처로 날 데려갔다. 억새가 듬성듬성한 허허벌판이었는데 착륙하는 여객기가 머리 위로 지나다녔다. 어둑어둑한 들판 위로 비행기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 저기 비행기가 온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속으로 '그래 비행기가 오네' 했지만 들뜬 시늉을 했다. 예상한 대로 비행기는 불나방처럼 날아들어 활주로를 향해 부지불식간 지나갔다. 굉음과 함께 몸체가 손에 닿을 듯 하강하는 모습을 그토록 가까이 볼 기회는 다시없으리라. 놀랍게도 감흥이 일지 않았지만 그저 그런..
애인을 만난 지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애인과 나의 양친이 만났다. 더 정확하게는 만나게 해줬다. ‘미혼’인 내가 창피해 동창회도 못 나간다는 부친과 부친의 등쌀에 못살겠다는 모친에게 애인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나는 일상의 무료함을 깨는 이벤트를 부모에게 선사한다는 사실에 고무되었고, 여러 관전 포인트를 눈앞에 두고 한껏 들떴다. 노년의 커플은 어느 횟집 룸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친은 이마에 ‘나근엄’이라고 써 붙이고 상당한 인상을 때려 쓰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우리 아빠는 근엄 병에 걸렸어요” 라고 하자 그제야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웃긴 모양) 초면에 ‘말 놔도 돼제?’ 식의 반말이 튀어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부친은 꽤나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