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40분 겨울에는 아직도 어두운 이른 아침, 오늘도 새벽길을 달려 손녀, 손자가 기다리는 딸네 집으로 향한다.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는 방학이라지만 요즘의 교사는 방학 때 더 바쁘다. 연수에 출장에 기타 등등. 그러다 보니 애들 아침밥 챙기는 것부터 심지어 저녁 식사까지 내 차지일 때가 많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있는 식자재를 조합해 창의적인 요리를 식탁에 올리면 작은 손자 녀석은 숟가락을 잡지도 않는다. 떠먹여야 겨우 입을 벌린다. 어린이집에서나 또 지 에미랑 먹을 땐 잘도 떠먹는다는데 할미는 만만해서 그런가 아니면 응석이라도 부리는 건가. 손녀 손자 아침밥 먹는 동안에도 또 점심엔 무얼 먹이지? 하는 생각뿐이다. 언제나 나의 숙제다. 애들 식사 챙기고 먹이는 게 제일 큰일인 것 같다. ..
아이보다 못한 어른 우리 대부분은, 같은 또래에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을 친구라 부르지 않나요? 친구가 별로 없는 나 말이 약간 느린 나는 모임 자리에 가면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듣는 곳은 두 곳이요, 말하는 곳은 한 곳이라고 많이 듣고 말은 적게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말도 없이 잘 어울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제주도의 9살짜리 동화작가 전이수라는 아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두가 친구라 하네 난 아이보다 못한 어른이라고 느꼈다 속이 좁은 나 생각이 짧은 나 친구를 많이 가지고 싶은 나 나이만 많이 먹어 욕심이 많은 나 부끄럽다 내일이 있다는 건 아픔의 어제 고통의 오늘 내일이 있다는 건 분명 희망의 빛이 있다는 것 어제의 ..
illust by soon 나의 달을 찾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없네아주 조그만 눈썹달과 초롱초롱한 별 둘2월 초 어느 날 우연히 보고 반해서 나의 달로 삼았네휴대폰 카메라에 담았건만 더 예쁜 모습 내일 새벽에 찍어야지 하고 지워버린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날은 날마다 바뀌지달은 달마다 바뀌지 흐린 날 안개 낀 날 비오는 날 요즘은 미세먼지보고 또 봐도찾을 길 없고 아쉬움만 가득 찾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보이지 않을 때의 아쉬움 또 기다림 나의 달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어느 시상식 와아짝짝짝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누가 주는 상인지 모르지만 내가 상을 받고 있다주최 측도 모르고 상의 이름도 모르고 나는 어떤 좋은 일을 했을까 얼마나 잘했을까모든 걸 모른 채 나의 마음은 들떠 있네 누군가가 주는..
by soon 어머님 전상서 유영순 1 어머니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우리는 64년 전 엄마와 딸로 처음 만났지요가난한 집의 삼남오녀 중 셋째 딸별로 환영받진 못했을 것 같아요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18년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히 계시겠지요아버지도 만나셨을 테고 우리 형제들 지난날을 추억하며 아직은 형제애로 잘 지내고 있어요 아주 어릴 적 시골에서의 생활은 대나무 골목길에서 먼 산 중턱을 바라보며 일하러 부산 가신 어머니를 태운 버스를 기다렸던 기억밖에 잘 나지 않아요 부산으로 이사 와서는 온천장 파출소 사거리에서 진주 가신 어머니가 탄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지요 언제부터인지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이 많았지요부모님 솜털 타는 일 하실 때 집에서 잠시 쉬던 어머..
by soon 유영순 서울에서 마산으로 내려오는 열차에서의 추억여행코로나로 인해 조금은 한산해진 열차내 옆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문득 앞자리 젊은이들에게 눈길이 간다연인인지 부부인지 손을 만지고 뺨을 부비고 화장실도 따라가준다 나 젊을 때를 생각해본다우린 겉옷으로 팔을 덮어두고 손을 잡곤 했었지이들도 한 명이 윗도리를 벗어 덮어준다이 나이에 부럽기도 하고 보기도 좋다 남진과 윤복희가 사랑하므로 헤어진다고 했을 때우리도 사랑하니 헤어져야겠다고 다투다가영도 태종대로 향하던 버스에서 말도 없이 급히 내려버렸다 그땐 자가용도 휴대폰도 아니 가정집 전화도 귀하던 시절내가 내린 정류장으로 뛰어오는 모습 봤을 때쌤통이라고 생각하며 웃음 지었다 1979년 10월의 어느 날부산에서 진주 가는 시외버스 안 옆자리 사람비슷..
by soon 혼자놀기 유영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큰 혹이 생겼다나도 스스로 혹이 되어 무게감을 느낀다 친구도 떠나가고취미도 특기도 떠나가고슬픔도 기쁨도 떠나가고 하물며 형제까지도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사네 보람되고 재미나고 기쁘고, 어떤 게 있을까아직도 생각은 진행 중 새벽.나만의 님을 만난다.마음의 평안함과 기쁨을 얻는다참 좋다 아침.운동 삼아 아침 길을 걸으며이름도 성도 모른 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나눈다.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XX교회 집사님, 67세 형님또 어떤 사람들기쁘다 낮에는 나를 닮은 볼품없는 화분을들여다보고 물도 주고 이야기 나눈다어제보다 조금 컸네대견하다 수세미를 뜨개질하면서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의 부엌을 상상해보고반짝거리는 그릇을 떠올려본다 싱크대의 세..
“괜찮아요. 아마 내가 더 좋아하나 봐요.”(내편이 아닌 남편) - (2019. 2. 2.) 유영순(68) - by soon “니 어디 갔다가 두 시간이나 있다가 오노!” 그는 절룩거리는 다리로, 펴지지 않는 주먹을 힘껏 쥐고 화를 내며 거실로 나온다. 곧장 한 주먹 날릴 기세다. “어디 갔다 오기는… 새벽 예배 갔다 오지.” “두 시간이면 부산을 갔다 와도 될 시간이다. 니 옛날 애인 부산 살았잖아!” 칠원, 남지, 함안, 근교의 지역들을 다 들먹인다. “왜 그러노? 당신 요즘 좀 이상해진 것 같다…” 오늘 새벽도 여느 때처럼 나를 기다렸나 보다. “거실에 불은 켜 있는데 사람이 없대?” “오자마자 쓰레기 버리러 갔었다.” “그래” 오늘은 그냥 조용히 넘어간다. 8년 6개월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