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끝물에 어쩐지 자꾸만 유월이가 떠올랐다. 유월이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의 미용실에 놀러 가면 만날 수 있는 강아지였다. 미용실 옆 꽃가게 아저씨는 뒷마당에 유월이를 묶어놓고 길렀는데, 6월에 그 집의 일원이 되어서 이름이 유월이라고 했다. 그는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몸집이 작은 강아지였다. 다가가면 피하지도 않았다. 그전까지 난 동물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도 아닌데 덩치는 벌레나 식물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움직임도 활발하고 큰 소리도 내니까, 사실 무섭기만 했다. 반면 유월이는 당시에 만나봤던 동물 중에 가장 얌전했다. 크게 짖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유월이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짖거나 낑낑거렸던 적이 있기는 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큰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겁먹지..
그러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못 끊는 것이 있다면 ‘다른 집 식물 부러워하기’이다. 내 실내 정원의 식구들은 작다. 화분 두 개로 나눠 심은 싱고니움도 다른 집보다 유독 잎이 조그맣고, 커지면 토끼 귀 같은 잎을 내준다던 캄포스포토아넘도 어찌 된 영문인지 자랄수록 내놓는 새순이 작아졌다.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들의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대품 식구들을 보며 ‘앞으론 그냥 처음부터 다 큰 애를 살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심 ‘그렇게 작았던 애가 이렇게 커졌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이상한 욕망도 있었다. 우리집 작은 식구들을 괜히 얄궂어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집에도 커다란 친구가 있었다는 걸! 그 친구의 이름은 여인초. 여인초의 키는 나보다 조금 작고 잎은 내 얼굴보다 크다. 여인초는 인외식구..
친구가 포인세티아를 한 포트 줄 수 있다고 해서 집에 놀러 갈 겸 약속을 잡았다. 새로운 식물을 얻으러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평소엔 문을 바로 열어주던 친구가 유독 뜸을 들였다. 조금 기다리자 문이 열렸고 생전 처음 듣는 발소리가 들렸다. 오도도도도. 그건 기니피그 오구가 운동하는 소리였다. 오구는 유기된 기니피그였고, 친구는 오구를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입양을 결심했다고 한다. 기니피그를 실제로 본 건 오구가 처음이었다. 상상하던 것보다 컸는데, 또 내 몸집에 비해서는 아찔할 정도로 작았다. 가방을 아무 데나 턱 내려놓는 순간, 근처에 있던 오구가 놀라 우다다 도망을 갔고 그때 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니피그는 이름에 피그가 들어있는데 생물학적으로는 설치류고 얼굴만 보면 ..
어린 나에게 ‘돼지’는 가장 화가 나는 욕이었다. 스스로 뚱뚱하다고 여겼다. 확실히 마른 몸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많이 먹으면 금방 비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주변인들에게 돼지 소리를 들을 것 같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돼지 호칭을 경멸하면서도 삼겹살 냄새를 맡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왔다. 동생이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고깃집에 자주 갔다. 외식을 하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많이 먹게 되었고, 고깃집에서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뱃살이 평소보다 더 나와 있었고 그런 나의 몸이 징그러워 보였다. 그런 날들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고 난 돼지는 물론 모든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처음 비건 선언을 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그런다고 살 안 빠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 없다. 독립과 홀로서기에 대한 열망은 매우 컸지만, 청소년 시절엔 부모님과 살았고 스무 살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부모님과 살다가 지방을 떠나 서울로 와서는 친구들과 살았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지금은 배우자와 산다. 별일이 없는 이상 나는 이대로 평생 2인 가구로 살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공유 공간이 사유 공간보다 넓다는 이야기이다. 공유 공간과 분리된 사유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좁았고 그곳에서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할 방법을 찾아내야했다. 내가 선택한 건 유튜브 시청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부터 틈만 나면 유튜브를 들여다봤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유튜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대학을 다..
날씨는 더워졌고, 나는 가난해지고 있었다. 직장이 구해지지 않아서 일하지 못했던 여름은 겪어본 적 있었지만, 나의 의지로 일하지 않는 여름은 처음이었다. 2020년 연말에, 2021년의 목표를 ‘직장 구하지 않기’로 잡았었다. 글을 쓰고, 창작을 하고, 나의 양에 알맞은 정도만 일을 하는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12월에 다니던 직장의 계약이 만료되고 실업 급여를 받으며 2021년의 상반기를 버텼다. 실업 급여 수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달이었던 7월이 되었고, 잔고와 모아놓은 돈을 보며 일주일 넘게 우울해하기도 했다.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올해는 온라인 신점을 두 번이나 봤고, 오프라인 타로도 보고 타로 어플도 계속 들락날락했다. 누군가 미래를 점지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창작..
지난 화에서 함께 사는 반려동물을 물화하고 귀여워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표한 바 있다. 글을 쓰며 몇 명의 사람들이 유독 생각났다. 그중 한 명은 특히나, ‘고양이는 나에게 위안이 된다’며 내게 수줍어하면서 털어놓은 적 있었다. 위안이라니. 밥을 챙기는 것도 화장실을 치우는 것도 게을리하면서 감히 동물에게 위안을 받으려 하다니. 끔찍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딱히 그런 사람들에 대한 내 의견은 변동 없다. 다만, 그들에게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별개로, 내가 그들과 크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외식구를 쓰며 몇 회차를 거쳐 말해온 것처럼, 나 또한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며, 단지 최대한 덜 유해해지고 싶어서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터놓고 말하자면 나는 ‘존중’이나 ..
동물을 귀여워하는 마음에는, 항상 뻐근한 죄책감이 뒤따른다. 그 어떤 동물이라도 마찬가지지만, 고양이와 강아지는 쉽게 물화 된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애완’, 사랑하는 장난감이라 불리며 외모와 행동을 나노 단위로 관찰 당했다. 그들을 조각조각 내어 소비하는 양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웰시코기의 엉덩이를 확대한 굿즈, 고양이의 발바닥 모양의 키링, 그들의 귀와 꼬리를 형상화한 액세서리들이 그 증거다. 나 또한 동물 대상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양이를 보면 예쁘고 강아지를 보면 사랑스럽다. 동물 모습인데 인간처럼 구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를 재미있게 보고 동물들의 어떤 행위를 담은 동영상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동물을 단순히 어여삐 여기는 것과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늘 아슬아슬한 줄..
나는 벌레를 보면 습관처럼 가슴이 철렁한다. ‘생김새로 살아 있는 존재를 무서워하면 안 돼.’, ‘이 두려움은 전부 학습된 결과일 뿐이야.’ 하고 스스로를 세뇌해 보지만, 다음에 또 다른 벌레를 마주치면 흠칫 놀라고 소리를 지른다. 심지어, 벌레를 죽이려고 손을 휘두르기도 한다. 그런 행동은 말 그대로 자동인형처럼 튀어나왔다. 비건으로 생활한 이후에도 한참 그 버릇을 떨쳐내지 못했다. 다행히, 새집으로 이사를 온 후로는 벌레를 덜 죽이게 되었다. 일단 새로 얻은 집은 이전에 살던 곳에 비하면 신축이고 깨끗해서 집 안에 벌레가 들어오는 일 자체가 없었다. 기껏해야 날파리 정도가 눈에 보였다. 이따금 집게벌레나 개미가 외부에서 들어오기도 했다. 내 시야를 방해하는 작은 날파리는 손부채질을 해서 다른 곳으로 ..
‘덕질의 끝은 부동산’이라는 말을 요즘 따라 심심찮게 발견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다 보면 그것과 관련된 재화가 쌓이고, 그 재화를 감당하려면 넉넉한 사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화분에 담긴 식구들이 늘어날수록 부동산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충분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2단 선반은 비좁아졌다. 내가 원하는 식물을 모두 사들이면 베란다에 있는 인간의 물건들을 모조리 빼내야 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베란다가 있는 집을 구한 것만으로도 기적으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담한 일자형 베란다 공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땅으로 재산을 늘리거나 권리 혹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기괴한 일이다. 누군가는 땅으로 돈을 벌지만, 누군가는 그 땅의 흙 한 줌 챙기지 못하고 쫓겨난다...
틀어놓은 노래의 박자가 몸을 맡기기에 적절할 때. 집안일을 막 마무리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을 때. 남편은 가끔 춤을 추지 않겠냐고 묻는다. 우리는 빙글빙글 돌며 왈츠도 아니고 블루스도 아닌 정체 모를 춤을 춘다. 아래층에 울리지 않을 정도로만 발을 굴리며, 동작이 서로 꼬여서 몸이 부딪히면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면서. 온 집 안을 휘저으며 춤출 때도 있지만, 주된 무대는 거실과 부엌이다. 지금은 식물 선반으로 옮겨놓았으나, 입주 후 한동안 거실과 부엌 사이 선반에 자리 잡고 있었던 화분이 있었다. 당근 마켓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칼라데아 뷰티스타. 짙은 녹색 위에 하얀색과 분홍색이 오묘하게 섞인 줄무늬가 매력적이어서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남편이 춤을 추면 뷰티스타의 앞을 몇 번이고 스쳐가게 된..
꼬박 2년 동안 나는 꼴초였다. 3년 전쯤 한 달에 몇 개비씩 입에 대기 시작해서 2년 전부터는 틈만 나면 흡연을 했다. 담배를 피우는 내내, 담배를 끊고 싶어 했다.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이 버려진 꽁초를 가지고 논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다. 나는 그 글을 보고도 한참이나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는’ 하지 못했다. 이따금 끊을 거라고 끊을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공연한 농담처럼 가벼운 말들이었다. 비건을 시작하고도 담배는 한참 피웠다. 크루얼티 프리 비건 제품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고통에 동하여 니코틴을 떨쳐버리기엔 난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었다. 못난이가 우리 가족의 일상에 나타난 시기는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정확히 맞물린다. ..
나는 글을 쓰면 되겠다. 초등학생일 때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5학년 담임선생님이 원흉이었다. 어느 말하고 듣고 쓰는 수업 시간에 지목을 당했고, 모두의 앞에서 죽은 할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발표를 했다. 가만 듣던 선생님은 너는 글을 쓰면 되겠구나, 하셨다. 그러고는 글을 짓는 행사에 종종 나를 보내서 대회에 참가하게 해주셨다. 상은 기껏 한두 번 밖에 받지 못했는데도, 꼭 나를 부르셨다. 넌 글을 쓰면 돼. 계속 그렇게 덧붙이면서 말이다. 좋은 종류의 세뇌였다. 그 말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면 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엔, 어떤 글을 써나갈지 다짐할 차례였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슬픈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 써본 글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게 영향이 컸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