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탈진실 시대의 진실연대자들 회원) 1. 디지털 최근 포스트휴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관련 논의들도 활발해졌다. 그중에서도 이 책,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에서 눈에 띄는 점은 ‘디지털’이라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이 무엇일까? 단어 자체가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다. 문제는 그에 반해 정작 단어의 의미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을 펼치기에 앞서 디지털이라는 말의 기본적인 개념부터 찾아봐야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간단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디지털이란 기술의 하나이며 정보의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디지털 정보는 0과1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디지털 정보’란 무엇일까 하는 ..
손보미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탈진실 시대의 진실연대자들 회원) 이 책의 목적은 존재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의미심장하고 파격적인 캐스팅을 감행하는데, 새로운 존재론인 존재자론을 연출하며 그 주인공으로 바로 ‘객체’를 섭외하는 것이다. 모든 좋은 책의 본래 목적이 진실 찾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저자의 캐스팅은 파격적인 동시에 무척 영리한 것이기도 하다. ‘객체’는 그동안 수많은 철학책 속에서 가장 왜곡되고 은폐되고 또 소외된 존재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 맑스가 ‘프롤레타리아’를 통해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진실을 밝혀냈듯이 이 책의 저자 레비 R. 브라이언트는 ‘객체’를 통해 그동안 가려졌던 존재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존..
“여성, 임금노예의 노예에서 자연의 동지로 옆에 서다” 18세기 이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인권과 기회의 평등을 주장해왔고,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성차별 체계를 분석하고 비판해왔으며, 사회적 조건과 조응해 구축되는 정신구조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특정 심리와 욕망이 낳는 여성혐오를 분석해왔고, 문화 문제만큼 경제 문제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고 고용, 임금, 성별화된 분업 및 차별 등에 주목하여 여성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싸워왔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가 무엇보다 ‘가사 노동’이라는 성별화된 노동에 주목하고 ‘임금’ 요구를 통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녀 또한 자신의 싸움을 성별노동분업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선집 을 보면 달라 코스따가 197..
영국드라마 에는 주인공 킬러인 빌라넬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한 여성 킬러가 등장한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그는 ‘깨끗하고 윤리적인’ 그만의 방식을 사용할 뿐 아니라 늘 투명하게, 소리 없이 움직인다. 여기서 투명과 적막의 핵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그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배경처럼 그곳에 있기다. 영화의 이런 내레이션에 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다름 아닌 여성 청소노동자다. 철벽같은 보안이 구비된 기업체라 해도, 비슷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청소노동자를 진짜, 가짜로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아니, 가려내거나 신경 쓰는 일 자체가 불필요하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고, 침묵하며, 자세를 낮춰 걷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그들이..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는 것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조심스럽다. 예전에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좀 지나면 나아질 것이란 생각으로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러면 어찌어찌 친구나 연인으로 진척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안 좋은 형국으로 끝이 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조심하다가 아예 누군가와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별로 내키지 않는 어두운(예를 들면, 암울한 미래를 다룬) 내용의 영화를 평단의 호평이나 영화제 수상을 이유로 본 적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거의 보는 내내 내상이 쌓여 정신이 피폐해진 채 끝나곤 했다. 현실적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인 때는 그런 영화가 주는 여파가 크지 않지만, 요즘처럼 전 지구가 특정 감염병으로 지쳐 있는..
페미니즘적 세계생태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특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모두에 비판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제이슨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매우 반가운 책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신분제가 붕괴되고 모든 시민이 서로로부터 자유롭고 서로 평등한 근대시민국가에서 살게 되었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 구조는 변함이 없는가를 질문하고 분석해왔다. 이것의 핵심에는 비대칭적 성별이항구조라는 인식체계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 등과 같은 성별이분법적 담론이 그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를 두고 래윈 코넬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로서의 신분제도가 이분화된 성별로 대체되..
이응과 시옷으로 서로에게 연루되기 : 김지현 에 부쳐 전시 포스터 2020. 07.10 ~ 08.20 @돈의문박물관마을 G3 김지현 작가의 전시 는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시간을 지금에 잇는 작업이다. '피해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하나하나의 개별자로서 호명하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한 사람을 기억하고, 불러내고,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힘차게 그리워한 흔적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얼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 사람이 바로 故 김복동 할머니이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여성 소수자의 몸으로 삶을 일궈온 그. 작가는 그가 남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남은 우리가 더 잘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영리한” 증언자와 “영리하게” 연대하기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압도한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윤지오 씨 말은 100% 진실일까요?”라는 김수민의 포스팅이 있었던 2019년 4월 16일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윤지오의 증언, 즉 그의 ‘메시지’를 끝까지 따라가는 일을 포기한 채 윤지오라는 ‘메신저’ 쪽으로 시선을 틀어버렸다. 윤지오라는 사람의 인격은 어떠한가, 하는 물음에 지배당한 것이다. 그렇다고 윤지오 증언이 갖는 의미 모두를 부정하는 방향을 택하지는 않았다. 그가 설령 순수하지 않은 메신저일 순 있다고 하더라도 그 메시지의 무게와 중차대함까지 부정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피로를 느꼈다. 윤지오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그와 맞잡았던 손을 놓고..
욕망의 발견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게 된 후에도 텅 빈 채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있어도 아무런 의욕 없이 유투브를 뒤지며 올해의 웃긴 영상들을 통해 어떻게든 무언가를 느껴보려는 몸짓을 하는, 나른해진 몸을 침대에 뉘인 채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수 만명의 사람들. 그들의 텅 빈 공간은 스마트폰 혹은 술과 사람들이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그들 중 누군가는 침대에 누운 그 순간에 텅 빈 껍데기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 때에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이 잘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를 모른다는 것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포스터부터 봅시다 SNS상에서 어느 날 묘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포스터를 배포한 배급사는 시네마달, 주전장이라는 영화의 포스터였습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사전 정보가 없이도 대번에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할지 감이 잡힙니다. 우선 이 영화는 실제의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일 것입니다. 세 개의 이미지가 층을 이루며 쌓여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 중첩된 이미지의 중앙에 자리한 것은 소녀입니다. ‘소녀’는 일견 단순한 오브제입니다. 우리는 그간 소녀를 너무 단순하게 사용해 왔습니다. 소녀는 무해하고, 연약하고, 피해자이고, 앉아있으며, 보호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소녀상을 끌어안았고 어떤 사람은 소녀를 꽃에 비유합니다. 때때로 ‘위안부’를 다룬 콘텐츠들은 정치적인 시선을 배제..
저주로부터 일탈하기: 난잡한 복종 안티고네의 고백 “그래요, 고백합니다. 저는 제 행동을 부인하지 않겠어요.” 이것은 안티고네가 크레온 왕 앞에 섰을 때 했던 말이다. 그 누구도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해선 안 된다고 했던 크레온 왕의 칙령을 어기고, 안티고네는 자신의 오빠인 그를 묻어주었다. 안티고네는 그렇게 치명적인 위반 행위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행위를 했음을 부인하는 것 또한 거부(위반)했다. 바로 그 두 번째 ‘위반’이 고백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문제적인 고백이 안티고네를 모호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 그 고백의 언어에는 남성적 과도함이 스며 있으며, 크레온의 권위를 흡수한 흔적이 있다. 크레온으로부터 행위 주체성의 수사를 빌려와 말하고 있는 것. 즉 안티고네는 크레온..
『서루조당 파효』(교고쿠 나츠히코 著)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과 그 주인에게 인생 책을 소개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간략히 소개할 수 있겠는데요, 범박한 설명이긴 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생 책을 소개받거나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에도 주인이 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저자와 독자의 합이 잘 맞는, 또는 만나야 할 인연 같은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이겠죠. 조당의 주인은 바로 사람들에게 만나야 할 책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세 개의 연결고리가 생성됩니다. 저자와 독자, 그리고 그 둘을 만나게 하는 조당의 주인. 책을 만난다는 것은 단지 돈을 지불하고 책 한 권을 사는 일이 아닌 듯 보입니다. 저자의 글쓰기 노고와 조당의 주인처럼 책을 이해..
항상, 이미 초과하는 서발턴 인도의 서발턴 여성은 두 번의 디페랑différend을 경험한다. 첫 번째 디페랑은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 같은 인도의 서발턴 역사학자들과 미셸 푸코와 질 들뢰즈 등의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두 번째 디페랑은 영국인 남성과 인도 토착민 남성 사이에서 벌어진다. 그렇게 서발턴 여성은 이미 초과되어 있고, 여전히 초과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 유럽중심주의에 맞서는, 또는 근대 이성 주체와 대결하는 ‘늠름한’ 남성들이 있다. 구하는 개량주의적 인도 공산당을 박차고 나와 19세기 후반 인도 농민 봉기를 연구하고, 기록을 남기지 못했던 농민들을 역사의 주체로 재현representation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들뢰즈는 푸코와의 대담 중에 “재..
액체적 사랑의 윤리 사랑은 액체적이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상실한 때에 이 명제는 우리에게 더욱 선연해진다. 사랑은 변하고, 잡히지 않으며, 야속하게 흘러가버린다. 아무리 그것이 단단하고 분명하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은 결코 응고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 아폴리네르는 그래서 사랑을 흐르는 물에 비유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랑의 액체성은 인간 존재에 엄존하는 더욱 심원한 불협화음을 증언한다. 한편으로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사랑을 필요로 한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한계, 인간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상실의 필연성. 사랑은, 불안이라고 명명되는 이 근원적 절망에 맞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방식이다. 사랑으로 연대함으로써 인간은 언젠가 사라져버릴지라도 자신의 존재가 지속될 가치가 있다..
부재중인 방과의 경합으로서의 독백- 고해종 극·연출 에 부치는 너무 이르거나 늦은 엽서 이 연극은 하나의 좁은 방을 무대로 삼고, 그 무대 위에서 말을 이어나가는 한 여자를 유일한 등장인물로 삼는다. 여자에 대하여 우리가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실은, 여자가 취업 준비생이며 원룸에 세 들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는 일상을 이어나가는 일조차 육중한 짐처럼 느끼고 있다. 먹고 자고, 살고 움직이는 일조차 버겁게 느끼는 존재. 너무 가벼워서 자신을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을 너무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여자에 관한 이 특별한 수사는 이제 더 이상 특수한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청년, 특히 여성 청년에게 시간의 무게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청년은 청년 담론의 ..
패터슨 씨, 차라투스트라 씨라도 만났나요? 그의 말! 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랑하노라.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장을 지니고 있는 자를.” (1부 ‘머리말’ 中)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1부 ‘머리말’ 中) “춤 한 번 추지 않은 날은 아예 잃어버린 날로 치자! 그리고 큰 웃음 하나 함께하지 않는 진리는 모두 거짓으로 간주하자!” (3부 ‘낡은 서판들과 새로운 서판들에 대하여’ 中) 발화욕이 왕성한 차라투스트라는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은 주옥같은 명언들을 쏟아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덮는 순간, 정작 차라투스트라가 뭐랬다는 건지…. 그래도 그 많은 말 중..
3초의 선율에 핀 모과 향기 그 아이는 엄마의 먼 친척 조카였다. 어느 날 그 친척 식구들이 자가용을 타고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자동차를 자가용이라고 불렀고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부자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서울 변두리 동네 골목길에 세워진 자가용을 동네 아이들이 둘러쌌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며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함께 땅바닥에서 소꿉놀이나 사방치기를 하던 아이들의 꾀죄죄한 얼굴들이 부끄러웠고 부자 친척을 둔 내가 동네 아이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아 화가 났다. 그 아이는 나를 가끔 힐끗거리며 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가용이 있는 골목을 등지고 집으로 서둘러 들어가 버렸다. 그 아이는 나와..
독자들의 리뷰를 실어드립니다. 책, 영화, 연극, 전시,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장르에 대한 리뷰를 기다립니다. 당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당신에게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면, 그것을 당신만의 언어와 형식으로 기록해주세요. 또 하나의 사건이 될 당신의 리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래 대표 이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단, 보내주신 리뷰에 대해 기본적인 검토의 과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zzok187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