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을 보았다. 처음 보는 사이트였고, 처음 보는 글들이 꽤 많이 올라와 있었다. 카테고리를 선택하여 하나하나 올라온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하나둘씩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어떤 교감이나 공감대를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나에게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때마침 웹진 은 일정 기간 동안 원고 투고를 받고 있었고,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쓸 것인지, 이것으로 하여금 내가 달성하려는 목표는 무엇인지. 그것의 대답을 내놓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나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비정상’ 가족에 대해 쓰고 싶었고, 우리가 겪은 일이지만 타인 또한 겪을 수 있는,..
나는 자전거를 아주 잘 탄다. 어릴 때부터 두발자전거를 타고 양손을 높게 들어 만세 포즈를 취한 상태로 동네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경험들이 모두 자전거 실력에 도움이 되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자전거 코스는 주공 7단지에서 주공 8단지로 내려오는 급경사 길이었다. 높은 곳에서 빠르게 앞으로 돌진해나가다 보면 꼭 내가 허공을 날고 있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후련해지곤 했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그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무릎이 깨졌지만, 다행히 아직 남아있는 흔적은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나의 라이딩은 끝이 났다. 아무래도 다른 동에 사는 친구들이 생기니 함께 하교하고, 걷고, 놀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없어야 했으니까. 버스를 타고 등하교해야 하는 고등학교를 진학..
이 글은 올 5월에 열렸던 오뚜기 제1회 푸드에세이 공모전에 투고했다 낙선된 작품을 다루고 있다. 푸드에세이 주제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로, 자사 제품이 아닌 타사 제품에 관해 이야기해도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나는 곧바로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는 사실 거짓말이다. 아무리 그랬다고 한들 타사 제품 이야기를 하는 글은 공모전에 뽑히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도 거짓말이다. 사실 나는 처음 그 공모전을 발견하자마자 오로지 이 생각에 점령당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이건 써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왜냐면 수자가 10년 넘게 일해온 곳이 오뚜기니까. 수자는 마트에서 일하며 가끔 행사를 맡고 교육을 하러 이른 새벽 집을 나섰었다. 그러므로 집으로 가져오는 제품들도 모두 오뚜기. 그런 환경 속에서 내가..
“엄마, 어떡해? 나한테 번호 달래.” 여기서 문제. 수자는 어떤 대답을 했을지 고르시오. ⓐ 미안한데 내가 얘 엄마거든요. ⓑ 뭘 줘, 빨리 가자. ⓒ 기타 (이 항목 선택 시 아래 댓글에 자유롭게 생각을 적어 주세요) 지난번 냈던 문제의 선택 항목이다. 의외로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물어본 결과(웃음…) ⓑ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그 자리에 있던 나조차 당연히 ‘수자가 이런 걸 받아들일 리 없지…’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실제 대답은 황당했다. “몇 살인데요?” 수자의 물음에 그 남자는 나이를 이야기했고,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 수자는 홍홍홍(이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 저 단어 말고는 그 웃음을 표현할 수 ..
나는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머리도 짧으며, 펑퍼짐한 옷을 주로 입고 다닌다. 집에 있는 옷들은 전부 검정. 분명 다른 티셔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나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무난하고 시커먼 옷만 사들이는 버릇이 있다. 살이 쪄서 입지 못하게 된 옷이 있으면 살을 빼고 입는 게 아니라, 주변에 사이즈가 맞는 친구나 가족에게 입으라며 주거나 더 큰 사이즈가 구비되어 있는 쇼핑몰을 찾아 다시 옷을 주문한다. 이렇게 살아온 지는 아마 3년 정도 되었을 거다.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만나게 된 것은 작년부터라, 대부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숏컷이었으며 지금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거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과는 외관부터 성격까지 완..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쓰지 않아도 되는 일기는 없을까?”, “왜 나는 일기를 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 일기가 정말 필요한 걸까?” 등의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끔 했다. 바로, 의 이름으로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 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라, 나는 프로젝트 하나를 올리기 위해 아주 많은 실패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정말 있어야 할까? 타인에게도 유의미할까? 라는 걱정 또한 불어났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말로 표현 못할 벅참과 묘한 감정으로 내게 돌아왔다. 트위터에서 펀딩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었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그간 자신이 겪은 자책과..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 읽음 표시가 뜨자마자 바로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얼마 전에도 수자에게 “엄마, 사랑해”라는 카톡을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윤희에게 보낼 때도 그랬었다. 그들은 내가 혹여 죽음의 문턱 앞에 서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과거형은 아니다. 지금도 꾸준히 신경정신과에 내원하며 약을 받고, 약 없이는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해 알고 있는 상태이며, 그것을 잠시라도 극복해낼 방법을 알기 때문에 앓았다, 고 쓰고 싶었다. 우울증은 전조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당시 나는 사이버 대학교에 재..
이랑을 만나고, 나는 중성화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중성화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중성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왜 해야 하는지 등의 세부적인 것들은 전혀 몰랐다. “괜히 나 편하게 하자고 시키는 건 아닐까?” “중성화하고 이랑이 더 불행해지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했다. 알아보니 중성화를 하지 않은 암컷 고양이는 유선종양, 자궁축농증, 난소종양이, 수컷은 전립선 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질병들이 모두 성호르몬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중성화를 살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므로, 고양이의 중성화는 어쨌든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인 셈이었다. 그런데 중성화 수술은 우리 생각보다 꽤 큰 수술이었다. 수컷은 음낭을 절개해 고환을 제거하는 간단한 과정만을 거치면 되는 데 반해..
이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글에 나오는 ‘우리’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었다. 너무 길어도, 설명적이어도 안 되며 독자들이 보자마자 ‘우리’라는 이 단어를 어떤 공동체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긴 고민 끝에, 나는 가장 적확한 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얼마 전 이혼 도장을 찍은 50대 여성, 집을 나와 사는 레즈비언 첫째 딸과 갓 스물이 넘은 바이섹 슈얼 둘째 딸, 그리고 중성화한 8살 암컷 고양이 이랑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격주 연재로 하였으나 그렇게 된다면 연재를 마칠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나는 계속 오래된 것들을 잊어갈 것이므로, 중간부터는 주 1회 연재로 바꾸었다. 주 ..
“삐-삐-삐삐삐삐-삐” 현관 도어락 소리는 재미있고 특별하다. 문을 여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누르는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바깥이 너무 덥거나 추운 경우에는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거의 두 배로 빨라진다. 그래서 나는 도어락에서 나는 “삐-” 소리를 들으면, 저 사람이 누군지, 어떤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는지 예상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자정 즈음이 되어서야 귀가하였다. 술을 살짝 걸친 상태라 취해 있었고, 그래서 비밀번호를 두어 번 틀렸다. 수자는 집에 들어선 나를 힐끔 바라보곤 버럭 소리쳤다. 서럽게도, 내가 취했거나 늦게 귀가해서가 이유는 아니었다. “윤희가 아직도 안 들어와! 이 기지배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수자는 근래 자주 늦게 귀가하는 윤희에게 화가 나 있던 상..
나에게는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있다. 이름은 윤희다. 아빠가 술 먹다 지었다는 내 이름과는 달리 조금 더 정성스레 지은 이름 같기도 하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이 차가 많이 날수록 어색하거나 안 친한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그러나 윤희와 나는 서로에게 꽤 좋은 친구다. 아마 윤희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동생이 갖고 싶었다. 그러다 정말 동생이 생겼을 땐, 너무 기쁘고 신나서 방방곡곡 동생이 생겼다며 자랑하고 소문을 내고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수자는 창피스러워했다. 이제야 수자가 왜 그랬는지를 알 것 같다. 아파트 단지 사람들, 관리기사님들, 분식집, 슈퍼, 야채가게 사장님, 동네 아줌마와 아저씨들, 유치원 선생님, 하물며 지나가던 멍멍이에게도 “우리 엄마 임신했다!”를 외쳐댔으..
방년 27세 한소리. 나는 레즈비언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도 있다. 여자라고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취향도 확고하다. 쌍꺼풀이 있고, 앞머리가 있고, 단발 이상의 머리 스타일에 통통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형일 뿐,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취향 바운더리 바깥에 있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겉모습만 보고 시작되는 감정이 아니니까. 첫인상에서 호감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벼운 기준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나는 머리가 짧다. 입는 옷 또한 무난하고 펑퍼짐한 검정이다. 치마나 원피스, 화려한 액세서리나 화장은 그만둔 지 오래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가 처음부터 레즈비언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틀린 추측이다. 나는 스물두 살 때까지 남자와만 교제했다. 무..
“소리야, 이제 정말 그만두려고.” 수자는 산악 대장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수자가 얼마 전 산악 카페 공지글에 대장을 그만두겠다고 썼기 때문이다. 수자의 암 투병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뜬금없는 하차 소식이었겠지만, 수자에게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망설이던 일이었다. “그래,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조금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라는 말 때문인지, ‘다시’라는 말 때문인지를 한참 생각하다, 결국 말을 더 꺼내기를 그만두었다. “그렇지?” “…….” “그래.” * 두 딸을 낳고 평생 일만 하며 살아가던 수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떻게 쉬어야 쉬는 것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
2019년 12월, 나는 서울에 있는 집을 계약했다. 입주 일자는 2020년 1월 20일이었다. 나는 일자에 맞춰 짐을 꾸렸고, 수백 권의 책을 포장하여 이사할 집에 옮겨두었다. 원래 있던 가구는 다 버리고, 최대한 필요한 가구만 선택하여 신중하게 구매했다. 나름 로망이었던 원형 카펫을 주문했고, 친구들에게 자주 선물로 주던 CD플레이어도 사서 싸구려 원목 선반 위에 배치해두었다. * 사람들이 일과를 마치고 귀가할 때,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집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집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위층 화장실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1m가량의 곰팡이가 넝쿨처럼 피어 내려온 벽지. 모래가 굴러다니는 지저분한 방바닥과 청소해도 끝이 없는 고양이 배설물과 지독..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정말 잘 살고 싶었단 말이야. 40km 풀코스 마라톤도 나가고, 이혼도 하고,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도 걷고, 멋지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리야, 왜 하필 나여야만 했지?” * 수자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샤브샤브가 먹고 싶다고 했고, 샤브샤브집이 위치한 상업지구 역 근처로 나를 불러냈다. 19년 8월 이후로 고기를 완전히 끊은 나로서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저녁 식사였지만, 내가 거절하면 수자는 혼자 저녁을 먹게 되므로 내색하지 않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5시에 만났고, 2층인가 3층에 있는 샤브샤브 집 문 앞에 다다랐으나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30분 정도를 문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수자와 나는 대기석에 나란히 앉아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