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시절 여성학개론을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는 소신과 가치관을 삶으로 확장시키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은 분이셨어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본인의 박사학위를 위해 유학을 결심했고, 출산시기를 자신의 커리어에 맞춰 계획하고 실행했다고 하셨습니다. 학령기에 다다른 자녀가 하교 후 집에 혼자 있으면 정서상 좋지 않다는 주변의 우려(라 쓰고 오지랖이라 읽읍시다)를 무시하고 경력을 빌드업하면서 ‘아이도 부모의 사정에 적응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눈을 반짝이며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흉자로서의 정체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남편 되시는 분이 참 대단하고 배려심이 많다’느니, ‘교수님 자녀분은 어려서부터 참 외로웠겠다’느니 하는 생각도 했었네요(먼 산). 졸업하고 나서부터 이상과 현실..
어려서부터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나보다 3년 일찍 태어난 엄마의 아들 때문에 인생 첫날부터 줄곧 입은 옷이 당연하게도 바지 일색인 것이 지겨워 ‘이왕 옷을 물려 입어야 한다면 치마를 입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도 한몫 했고요. 언제든 내 편인 동성의 동년배 인생선배가 있다면, 친구와 이야기할 때 어느 정도 요구되는 자기검열을 내려놓고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테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울까 싶어 엄마에게 언니를 만들어달라며 조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나름대로의 고충을 토로하며 ‘상냥하고 다정한’ 오빠에 대한 판타지를 풀어놓았고, 그렇다면 우리 서로 집에 있는 생명체를 교환하는 게 어떻겠냐며 실없는 거래를 제안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잠깐일 줄 알았던 언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