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탈연애 선언 연재 종료를 알립니다


안녕하세요, 도우리 작가입니다.

기쁜 소식 알려드립니다. 그동안 이곳 <웹진 쪽>에 쓰던 ‘탈연애 선언’ 연재를 종료한다는 소식입니다. 개인 작가 차원에서 다루던 ‘탈연애’ 주제를 팀 프로젝트 차원으로 확장하면서 공동 출간을 결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여정, 그러니까 제가 즐거워하고 부딪히고 창피해하고 그러다 더 나아가게 된 지점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선언 중독자: 탈연애 선언 퍼포먼스의 시작


탈연애 선언 퍼포먼스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1월 말의 새벽이었습니다. 이불 속에 파묻혀 <섹스 포르노 에로티즘: 쾌락의 악몽을 넘어서(현실문화연구)>를 읽던 중이었어요. 그러다 “이성애주의? 그것은 낭만적 사랑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시즘일 수 있다”는 문장을 마주했을 때, 이불을 박찼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각이었어요. 정상 연애 의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슈화해도 좋다는 용기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뜨거움이 떠올려 준 풍경은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새빨간 옷 입고 탈연애 선언하기’였습니다. 디자이너이자 친구 수리에게 이 아이디어를 전했고, 무기력 속에 있던 저와 수리는 열정적으로 의상 컨셉과 디자인 등의 퍼포먼스 준비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선언 중독자’라는 별명이 있는데요. ‘작가 선언’을 한 이력 때문입니다. 이때의 선언은 언론사에 입사하거나 등단처럼 제도 없이도 작가로서 정체성을 갖추기 위한 수단이었고, 실제로 그때부터 작가 경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언 자체는 주문처럼 무언가를 이뤄주지 않지만 그 선언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탈연애라는 주제도 선언 형식을 통해 정상연애에 균열을 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공적인 메시지로 연애란 사적인 일이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일이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조금 무대체질이기도 해서 광화문 광장에서의 선언 퍼포먼스라는 형식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팀원인 혜은님이 말했듯 이러한 ‘신남’도 이 퍼포먼스를 이끈 주요한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신남’만으로는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소비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과 ‘신남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선언 이후, 홍혜은 저술가와 희음님, 다온과 프로젝트팀을 꾸리고 나서 절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선언 퍼포먼스 못 할 것 같다’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했어요.


개인 퍼포먼스에서 팀 프로젝트로: 정치적으로 말하고 쓰기


‘신남 이후’는 무엇보다 개인 칼럼니스트 단위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던, ‘정치적으로 말하고 쓰기’에 대한 훈련이었습니다. 혜은님은 “내 말과 글이 어느 편에서. 무엇을 이해해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무엇을 기반으로 말하고 있느냐, 어떤 구체적인 타겟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세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어요. 혜은님이 맨 처음 합류해 기존 선언문을 다듬을 때, 또 그런 고려 없이 한 말들이 팀 전체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을 때 가장 크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사소하게는 좌담회 문자를 보낼 때나 공식 페이지에 게시물을 올릴 때 지나치게 존대하는 말을 쓸 필요 없다는 것부터, 나무위키 그리고 페미니즘 역사에서 지금의 말과 행동, 장면이 어떻게 기록될 것 인지까지에 대해 고려하는 일이었습니다. 연애보다도 팀원들, 그리고 페미니즘 판과 대중들 사이의 관계를 훨씬 더 많이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좌담회 준비는 농도 짙은 소통의 경험이었습니다. 짧은 준비 기간 동안 서로를 파악하고, 각자 ‘탈연애’에 대해 다르게 그리고 있는 상을 조율하는 일은 고난이도의 과정이었습니다. 좌담회에 올 청중에 대한 소통을 고려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 좌담회를 열 때만 해도 탈연애라는 이름 아래 막연히 좋은 스피커들을 모아두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말 모듬’으로 만들 나이브함이었습니다. “이 좌담회에 이 이슈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얼만큼의 이해를 가지고 얼마나 올 것이며, 그렇게 온 사람들에게 그 다음 어떤 스텝을 제시할 것인가(혜은)”에 대해 머리를 굴려야만 했습니다. 이외에도 프로젝트에 필요한 스피커와 사람들을 알아두는 일, 효율을 높일 팀 협업 툴을 익히고 활용하는 일, 역할을 분배하는 일 등을 통해 팀원끼리의 더 나은 소통과 협상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팀 공동출간 결정은 제가 애초에 탈연애 선언을 했던 문제의식, ‘연애가 나 혼자만 짱 쎈 페미가 되어봤자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일’을 너무 절실히 바꾸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연애 내외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고, 정상연애 담론을 제대로 조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출간 결정이 제 내면에서 어떤 저항감도 없었던 것, 오히려 기뻤던 감정을 느낀 것은 앞으로 제 자존감의 중요한 원천이 될 것 같습니다.


신남 이후와 신남의 순간


스스로가 싫어지고, 내 능력을 재검토하는 것을 넘어 지나치게 불신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전혀 못 쓰는 시기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퍼포먼스에 대해 제가 ‘다시 돌아가면 못 할 것 같다’라고 함으로써 스스로를 상처 입혔더라고요. 우선 저는 당시 퍼포먼스에 대해 ‘신났다’라는 워딩이 충분치 않다고 느낍니다. 설렘, 반짝임, 웃음, 짜릿함, 두근거림, 뜨거움, 열기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것들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원천이니까요. 하지만 또 제가 성장하는 데는 조금 정도가 지나쳤긴 해도 저를 싫어하고 불신하는 과정이 꼭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는 신남과 신남 이후 모두 잘 쌓아가고 싶은 사람이 되었네요. 덧붙여 ‘범생이’였던 저를 신남의 다양한 감각에 담금질(?)시키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고 여러 현장에 뛰어들게 해 준 것이 수리에게 가장 고맙고, 존경하는 점입니다.


연애에서 관계로: 문제의식의 확장


팀으로의 전환은 탈연애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장이기도 했습니다. 우선 정상연애 의제가 단지 연애의 문제가 아닌 사랑, 관계의 차원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 그랬습니다. 연애를 고민하는 일은 욕망이란 본능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평등한 주체끼리의 관계 맺기를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상연애란 단지 로맨스가 아니라 “노동 인구 재생산과 인구 관리라는, 자본주의와 가부장 가족체제 위에 세워진 국가적 기획(희음)”임을 염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폴리아모리도 단지 새로운 연애 방식이나 대안이 아니라 “연애 상대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설득과 대화, 타협의 대상, 즉 정치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보다 쉽게 드러나는(다온)” 관계일 뿐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연애’는 이름만 새로울 뿐 역사적으로 기존의 페미니즘, 퀴어 판에서 지속적으로 해 오던 운동이었습니다 - 라고 말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였어요. 처음에는 제가 새롭게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더불어 ‘탈연애 의제로 다른 퀴어 운동과 접속하겠다’라는 발언도 이러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무의식은 퀴어와 저를 구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저는 퀴어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탈연애라는 워딩을 더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점도 부딪혔는데요. 사람들에게 비연애와 탈연애, 혐애가 따로 떨어진 맥락이라고 들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워딩을 새로 만들기보다 ‘해석 싸움’으로 가져가는 것이 운동을 위해 나은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탈연애 워딩을 만들고 이슈화한 장본인이어서 그렇겠지만 지금의 저는, 아직까지는 ‘탈연애’ 워딩이 정상연애라는 의제를 부각시키고 연애 바깥을 조금 더 상상하게 한 장점이 더 크게 보입니다.


칼럼이란 단지 촌철살인인가?


글쓰기, 특히 칼럼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새로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칼럼이란 장르를 읽게 하고, 쓰게 만들까요. 이슈를 잘 정리하고 논리를 다듬은 내용? 촌철살인? 맞는 말이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가만히 책상에 앉아 타자기만 두드리는 일’이라는 회의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 칼럼은 글 장르 중에서도 가장 재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시나 에세이, 소설처럼 매력적인 이미지나 서사, 캐릭터 등의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왜 칼럼이라는 장르에 끌리는지에 대해서도 온전히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좌담회 발제문을 처음 쓸 때 “옳은 이야기를 하려는 강박이 있다”라는 지적을 받았는데요. 뼈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칼럼을 쓸 때나 이슈에 대해 말할 때 최대한 옳은 답을 제기해야 한다는 강박이 제 목소리를 위축시켰던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칼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어요. 또 맨 처음 발제문에서 “어떤 개인적 맥락에서 그런 생각을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 없이 제 3자의 입장으로 떨어져 말하는 태도가 불편하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옳은 말을 하려는 것이 실은 안전하려는 강박이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언과 비판들, 애정이 없으면 굳이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들로 제가 성장할 기회를 준 것이 혜은님에게 가장 고맙고, 존경하는 점입니다.


이제 지금의 저에게 칼럼을 쓰는 일이란 촌철살인이라기보다 이슈에 대한 ‘성실한 참여’입니다. 그간 써 온 페미니즘 칼럼들, 특히 탈연애 선언 칼럼들은 곧 페미니즘, 연애, 커뮤니티, 페미니즘 판과 접속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참여와 칼럼을 힙합과 랩의 관계로 비유하고 싶은데요. 힙합의 하위 개념이 랩입니다. 힙합은 그래피티, 랩, 춤, 디제잉 다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힙합은 박자 쪼개면서 이야기하다가 노는데 심심하니까 비트도 깔게 되고 다른 요소도 섞다 보니 탄생한 장르입니다. 신문 지면에서 어떤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글로 내던 것이 칼럼이라는 장르로 변한 것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탈연애 선언처럼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퍼포먼스도 얹고, 프로젝트팀을 꾸리게 되고, 좌담회도 열게 된 것처럼요. 결국 칼럼이란 어떤 이슈에 대해 성실히 참여하는 과정의 방식들, 어떤 식으로 이슈에 대해 접근하고 담론의 장을 형성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굴리는 일의 총체라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것을 선언합니다


‘글이 곧 몸이다’라는 말을 빌리자면, 탈연애 선언을 통해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제 몸이었습니다. 연재 초기부터 글 하나하나가 지난 연애와 지난 제 자신을 배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원나잇 경험을 혼자서 긍정하는 것과, 원나잇을 했다고 글로 내보내는 일은 크나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배반 이후 제가 만나는 사람들, 관계 방식, 태도 모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팀으로 전환되었을 때 마주한 제 한계들은 창피하고 힘든 일이었지만 저를 확장해주는 가장 빠른 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곧 저와 관계 맺는 사람들이 매력적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매력은 맥락이 있는데요. 프로젝트팀 팀원인 다온은 선언 프로젝트에 사람들이 많이 지지해주고 도와줘서 신기하고 감사하다는 말에 “네가 매력이 있어서”라며 동시에 “네가 조금이라도 고민을 게을리한다면 사람들은 금방 떠날 것”이라고 경고해주었습니다. 매력이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자원입니다. 우리들이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선언 중독자답게 마지막으로 작은 선언을 하자면, 보다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것을 선언합니다. 매력적인 사람들과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계속 벌이는 일은 충만하게 행복한 일임을 알았어요. 이러한 행복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치열히 고민한 결과물, 공동 출간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또 독자분들과, 또 정상연애 담론과 새롭게 맺게 될 관계들이 기대됩니다.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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