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사랑하는 삶(번외)

크게 싸운 날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소통에 대한 확신의 부족으로 시작된 다툼이었다. 다툼 끝에 오빠가 내게 제안했다. 커플 다이어리 정말로 써 보는 게 어떻냐고. 지나가는 말로 커플 다이어리에 대해 오빠에게 이야기했었는데 오빠가 그걸 기억하고 제안해온 것이다. 내가 제안할 때는 막연한 것이었지만 큰 다툼과 화해 끝의 제안은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과 서로에 대해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

우리가 다이어리를 채우는 방식은 이러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입장을 써 보는 것. 주제는 다양하다. 관점, 만남, 섹시함, 권태 등등. 따로 쓰기도 하고 같은 공간에서 같이 쓰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다이어리를 나눠보며 다이어리보다 더 긴 대화를 나눈다.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 후 서로의 관계를 포함, 많은 부분이 분명해지고 깊어졌기에 가까운 연인들에게 추천하고 다니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연인관계에 있는 분이라면 커플 다이어리를 써 보기를 추천한다.

아래 내용은 다이어리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두서없고 조금은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래도 용기 내서 올려 보려고 한다. 다이어리를 보면 알겠지만 우린 정말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고 느낄 수 있었는지, 우리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어가고 있는지, 우리 사랑은 어떤 모양이고 색깔인지 다이어리를 통해 조금은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사랑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

 

1. 첫 만남

 

- 단비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월식을 본 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에 대해 알아가 보자고, 연구해 보자고. 논문 이야기도 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니 이 다이어리도 그런 연구의 일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관계는 서로에 대해 탐구하고 서로를 알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가 아니라 각자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없었다. 오빠는 날 한 번에 느꼈고, 나는 오빠를 한눈에 알아봤으니까. 추측하기로는 오빠는 느낌으로 타인을 알아가고 나는 꿰뚫어 봄으로써 타인을 알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린 처음부터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같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우리의 의문은 늘 서로가 아니라 우리였다.

여전히 그 부분은 오리무중이다. 우린 왜 우리일까. 우린 왜 서로를 보고 느낌으로써 단번에 서로를 알아보고 알아챈 것일까. 정말 알 수가 없다. 내가 오빠를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느낀 건 첫 통화였다. 그러나 오빠를 처음 건 노래방에서였다. 첫 통화에서는 느낌보다 예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오빠를 온전히 보고, 알게 될 거라는 예감. 그래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깊이 보게 될 거라는 예감. 오빠도 나도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낀 이유는 그것에 있을 것이다. 오빠는 나를 느꼈고, 나는 오빠를 보았다는 것. 그만큼 깊게 서로를 알아챈 것.

우리가 왜 우리인지 생각해보기 위해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될 것 같다. 처음 통화한 날, 나는 우리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같다는 걸 깨달았다. 오빠가 말하는 어떤 친절함을 본 것이다. 그건 내게도 있는 면이었다. 그리고 그 친절함을 유지하려는 면도 우린 같다. 친절함과 깊이 있는 집중의 경계에 우린 늘 서 있었다.

오빠를 처음 본 순간, 오빠의 얼굴엔 지금까지, 어쩌면 앞으로도 다신 볼 수 없는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그때 내가 본 느낌은 어떤 만족감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찾았다는 표정이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가면서는 점점 오빠의 표정에 혼란이 보였다. 눈빛이 흔들렸고 표정은 오갈 데 없었다.

그러다 노래방에서 오빠의 영혼을 보고 만 것이다. 순수하고 꾸밀 줄 모르는 오빠의 영혼. 그 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여기저기 다쳤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노래를 부르며 여태 살아남은 오빠의 영혼. 전우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빠의 삶도 내 삶처럼 어떤 부분은 전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는 전쟁통에서도 계속 노래를 부르는 내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내가 안쓰럽고 기특하다는 생각에 자기연민이 든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척 외로웠다. 그러던 차에 나처럼 전쟁통에도 노래를 부르는, 앞으로도 그럴 거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반가울밖에.

우리의 느낌바라봄은 많은 부분이 예감인 것 같다. 첫 통화에서 서로에게 반갑다 했을 때, 이 순간에 대한 예감이 아니었을까. 반가움의 정체에 대해 일부 알게 된 것 같다. 전쟁통에서 노래를 부르던 두 아이의 만남. 반가울밖에. 아직 우리에겐 연구할 우리가 많이 남아있지만, 어쩐지 이렇게 알아가며, 또 여전히 모른 채로 앞으로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 효승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이 없던 시절. 그때 단비를 만났다. 나에겐 치열한 삶……. 나는 항상 어떤 것을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어떤 것에 대해서 욕망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욕망은 무엇인가?

나는 욕심 많은 사람들을 하찮게 보면서도 한 편으로는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타인을 따라 했던 것 같다. 일종의 연기였는지. 어쩌면 내 안의 욕망을 알기를 두려워한 것인지.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먼저 다가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해줬으면 했다. 그렇게 내게 다가와 준다면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은 진심이기에, 나는 겁먹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단비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또렷한 눈빛을 하고서는.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단비는 내게 무엇을 봤는지 논리적으로 똑똑하게 말을 잘해주었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내가 꼭꼭 숨겨 놓은 나의 이면과 그 안의 본질과 나를 나에게 알려 주었다. 내 안의 두근거림은 그것에서부터 왔다. 어떻게 나를 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나도 자세히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인데…….

나는 타인으로부터 나를 비춰본다. 다정함이라는 것은 꽤 좋은 거울이다. 친절함과 다정함, 세심함을 통해서 사람들은 나의 좋은 면을 설명해준다. 물론 나 또한 타인을 비춰주고, 그것을 통해 나를 비춰 나를 다시금 확인한다.

단비는 도대체 내게서 무엇을 봤을까? 내가 비춰볼 수 없으니 무엇을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비는 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인지. 단비는 나와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다르다. 내가 비춰 볼 수도 비칠 수도 없으니까.

 

2. 우리가 본다는 것

 

- 단비

마주 보며 갑자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같은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그때의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그립다는 마음, 반갑다는 마음, 보고 싶다는 마음. 오빠는 첫 통화에서 내게 반갑다, 보고 싶다 했다. 그때는 뵙고 싶다였지만. 으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오빠를 더 알게 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의 무게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나눈 말들, 오빠의 말들. 나눈 것들. 보고 들은 것들. 합정 가는 길에 상어밥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한 게 눈으로 전해져서 웃어버린 일. 우리의 말이 특별한 이유는 같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이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혼자 쓸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오빠를 닮은 글의 흐름이 느껴진다. 언어가 아닌 말들. 눈빛과 기척과 숨과 소리로 나누는 대화들. 우리의 눈물도 그런 대화였을 것이다.

오빠는 초반에 그런 말을 했다.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서로 함께 있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물리적으로 그런 관계를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서로의 할 일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서로의 기운이 흘러 들어가는, 각자 또 함께 합쳐지고 흘러가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각자에 방점을 찍었지만, 사실은 함께에 방점이 찍히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것을 보고 같게 느끼기도 한다. 지금 우리의 다이어리에 비슷한 내용이 적혀진 것처럼. 우리의 따로 또 같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영혼의 결에서 온 것일까. 전생과 차원의 궤도에서 온 것일까. 오래전의 약속에서 온 것일까.

 

- 효승

단비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나의 첫사랑을 통해서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영혼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고, 그 마주한 거울을 통한 서로의 울림으로 각자 혹은 서로의 영혼을 비추는 흔적을 찾아가다 보면 서로와 각자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단비를 만나서 생긴 그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은 내가 처음 느낀 느낌이었다. 단비가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느낌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비슷한 사람, 비슷한 부류라서 오랜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두렵기도 무섭기도 한 낯선 기분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일단 붙잡아 두고 싶었다. 좋아하는 감정이든 뭐든. 오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호기심과 열정적인 감정은 나를 새로운 시공간의 관점으로 데려 놓았다. 현실 세계의 나와 우리가 있는 세계 사이의 괴리. 그 혼란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집착이 있기에 그 혼란은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했다. 서로를 느끼는 것에 집중하면서도 각자 개인을 잘 인지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나고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처음 사랑을 고백하던 날 우리는 서로의 표현으로 사랑을 보았다. 우리는 정확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지만 같이 바라봐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3. 권태

 

- 단비

어제는 오빠한테 권태기라는 단어를 꺼냈다. 이 좋은 보라카이에서 오빠한테 권태기를 말하다니. 어제는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하루종일 마찰이었다. 비를 쫄딱 맞은 우리는 숙소에 와서도 화해하지 못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권태기는 서로가 일상이 되는 것이랑은 다르다. 물론 서로가 일상이 되면 권태기가 오기 쉽겠지만, 둘이 같은 것은 전혀 아닌데 내가 권태기 이야기를 하면 오빠는 그저 일상이 된 것이지 권태기가 아니라고 한다.

권태기란 기류다. 일상적인 나날 속에서도 그 기류가 안 느껴질 수 있다. 오히려 오빠가 권태기와 일상을 분리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 싶다. 권태기는 특별한 날에도, 일상적인 날에도 올 수 있는 건데. 서로에게 서로가 당연한 느낌, 혹은 뒷전인 느낌. 오빠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은 지 좀 됐다. 나는 분명히 권태기를 느끼고 있다.

오빠는 이런저런 이유를 전부 권태기라는 한 단어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권태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권태기에 대해 생각하며, 상황이 힘들수록 서로의 소중함을 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빠는 서로에게 소홀(?)한 이유를 상황에서 찾으니 그게 난 참 서운하다.

우리가 진짜 권태기인지 정답은 없을 것이다. 분명한 건 이 부분에서 우린 확연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지금 상황을 다르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비슷하게 혹은 같게 느껴왔던 우리기에 지금 이 시간이 더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만의 힘듦일수도 있겠다 싶지만.

 

- 효승

덤으로 사는 인생 같다. 삶이 힘겹고 괴로워서 40살이 되면 죽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느낌이 옅어지고 흐려짐을 알아차리면서.

그리고서 단비를 만났다. 모두가 신기하고 새로운 세계. 우리가 즐겁게 보낸 지난 일상을 통해 자연스러워짐을 느꼈다. 자연스러움은 서로에게 더 조심스럽게 배려하려는 마음. 그 마음으로 지레짐작 생략된 감정의 과정. 우리는 마음으로 서로를 챙겨주고 있었다. 하루 하루 일상을 통해서 느껴지는 사랑과 함께.

우리의 배려와 사랑의 마음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함이 몸에 밴 걸지도 모르겠다. 단비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왜 그리 오만하게 감안하고 배려하는 척을 한 것일까? 일상이 되어가는 사랑을 더 좋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게 권태로움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가까이 일상이 되어가는 지점은 서로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해 권태라 느끼는 지점은 생략된 감정의 과정을 통해서 서로 이해받기 원함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단비를 사랑한다.

 

4. 여행

 

- 단비

우리의 만남은 여행으로 시작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행과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강릉 여행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고 느꼈다. 첫 여행이었다. 섬진강, 진안, 스페인, 제주도, 남해, 부산, 서울, 보라카이…….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동안 다닌 곳들이다.

여행은 우리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우리에겐 여행이 특별한 게 아니라 서로가 특별하고, 여행은 그저 배경을 바꾸는 것뿐이다. 좋은 풍경을 보고 새로운 곳을 걷는다는 것.

생각해보면 여행보다 더 여행 같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서촌에서의 데이트나 갑자기 오빠가 찾아온 순간이나 크리스마스를 일상적으로 보낸 일 등. 이상은의 노래처럼 삶은 여행이라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삶이다. 여행이자 삶이 되어주는 사람.

그래서인지 오빠가 없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여행의 후유증처럼. 그럴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만날 날만을 기다리게 된다. 기다림을 유독 힘들어하는 나는 그 시간이 참 힘들었지만, 요즘엔 그럭저럭 기다림을 견딜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돌고 돌아서 겨우 서로를 만났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오빠랑 나는 여행이자 동시에 돌아갈 곳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 내가 어찌해야 좋을지 여전히 모르겠는 마음이다. 기다림이 기다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현재를 즐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그곳을 마음껏 느껴야 하듯이. 내 인생을 여행으로 만들어야겠다. 오빠와의 시간, 오빠가 없는 시간 전부를 위해.

 

- 효승

여행이라는 것을 처음 가게 된 이유는 내가 사라지지 않음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혼자 여행을 가거나 친구와 여행을 가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어떤 불안과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나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일까?

우리의 여행은 내가 단비에게 강릉의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해주고 단비 혼자 여행을 가려는 것을 내가 따라가면서 시작했다. 그게 아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을 것이다. 서로와 각자를 바라보며 하루를 빼곡하게 이야기했다. 날씨도 바다도 석양도 우리가 서로에 대해 느낀 것만큼 판타스틱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단둘이 보낸 시간도.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다짐했던 선명했던 느낌의 단어. 나는 단비의 똑똑함만 기억할 수 있다면 단비의 모든 것을 떠올릴 수 있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서도 우리는 많은 여행을 다녀왔다. 스페인을 가서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우리의 여행방법, 여행에서의 서로 각자의 강점과 약점을 알았고,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섬진강 여행은 재첩국을 따라서 즉흥적으로 갔고, 단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간 진안, 마령 등등. 우린 마치 즉흥적이면서도 우연 같지 않은 우연을 많이 겪었다. 아름답고, 편안한, 고생스럽지 않은 기분. 여행은 우리에게 우리 세계에 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의식같이 느껴졌다. 권태를 이야기하는 지금 보라카이에서도 우리는 우리다움을 다시 확인했다.

'암삵의 삶: 위단비(연재 종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22 생각하는 삶(1)  (0) 2020.04.10
No.21 개인주의자적 삶(5)  (0) 2020.03.13
No.20 사랑하는 삶(4)  (0) 2020.02.14
No.19 사랑하는 삶(3)  (0) 2020.01.31
No.18 사랑하는 삶(2)  (2) 2020.01.17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