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집단에서 발생하는 ‘난잡한’ 여성 관계망, <정년이>

1.

<나루토>를 다시 보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TV 방영되기도 했던 <나루토>는 팬이 아니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작품으로, 소년만화의 정도를 걸었던 만화다. 여기서 큰 얼개를 이루는 건 주인공인 나루토와 사스케의 싸움이다. 둘은 다른 사람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상대방에게 투영하며 서로를 ‘형제’라고 느끼는 동시에 라이벌로 존재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 고향을 떠난 사스케와 그를 데리고 오기 위한 나루토의 여정은 총 700회에 달하는 <나루토> 시리즈 완결에 이르러서야 종료된다.

<나루토>의 시작과 끝을 보며 자란 내게 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얼굴은 언제나 나루토였다. 그래서 지난해 연재를 시작한 웹툰 <정년이>를 보며 사람들이 외롭고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를 떠올릴 때 나는 남몰래 나루토를 환기했었다. 하지만 “친구도 구하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호카게(리더)가 되겠어!”라며 자신의 꿈과 관계의 지속(오랜 시간 일방향만으로 이뤄지더라도)을 동급으로 위치 짓는 나루토와 정년이는 다르다는 것.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작정 내달리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데 익숙했던 나는 이제 <정년이> 속 건강함을 닮고 싶은 이가 되었다.


2.

나는 한 차례 <정년이>에 관한 리뷰를 쓰면서 작품 속 ‘공식 라인’이 존재한다고 적었다. 당시에는 정년-부용, 옥경-혜랑, 도앵-숙영 등의 관계를 두고 수요와 공급이 월등히 많은 커플링, 즉 공식 라인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새롭게 연재되고 있는 2부작을 보면서 이전에 그려놨던 선 잇기가 더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정년이>의 관계망은 <나루토>처럼 직선적이지 않았다.

먼저 흔히 라이벌 사이에서 벌어지는 레파토리를 순순히 승인하지 않는다. 되려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 후에는 자신과 같은 조건에서 실력을 다질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인정하는 사람,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필시 ‘나’의 마음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만화는 정년-영서, 도앵-옥경을 통해 라이벌 구도 속 발생하는 상호 간의 호감과 인정에 관한 타래를 풀어낸다.

초반에 부자가 되고자 소리를 시작한 정년이와 국극에서 최고가 되려 하는 영서의 대립은 한동안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년이는 소리를 시작함과 동시에 목소리와 표정, 발걸음까지 다른 사람으로 분하는 영서를 금방 ‘인정’한다. 이건 영서의 소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레벨인 까닭도 있지만, 상대와 나 사이의 호감의 정도가 어떻든 간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년이의 인정 체계 덕택이기도 하다. 이는 정년이가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만의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되자 영서에게도 동일하게 발현된다. 영서는 여전히 분한 마음이 있는 것과 별개로 정년이의 험담을 늘어놓는 국극단 연구생들 앞에서 “윤정년은 잘했어”라고 말한다.

소리와 연기, 국극으로 서로를 인정한 전적을 가진 후에도 호감-인정의 수순은 계속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소문과 평판, 험담의 영역이 있다. 소문은 질투와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특정인을 배제하고 그로 인한 이익을 얻기 위해 동원되는 정치적인 수단이다. 만화에서 영서는 유명한 성악가의 딸로, 이를 이용해 편애를 받고 배역을 따냈다는 등의 소문에 둘러싸인다. 이런 소문에 익숙한 영서이지만, 외출 시간을 어겼다는 걸 정년이에게 들키자 곧바로 자신의 평판과 앞으로의 처우를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정년이는 “차라리 협박하고 소문을 내!”라는 영서의 거짓된 외침에 “그래! 나는 다방에서 일한다! 됐냐?”라며 자신을 소문낼 수 있는 거리를 불쑥 내어준다. 이렇듯 비밀이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만드는 행위는 영서에게 있어 자신과 (정년이)를 올려놓았던 저울질을 크게 뒤흔들게 된다. 여기서 (정년이)는 다른 사람의 이름과 각종 험담도 들어갈 수 있는 자리로 만화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반대편에 항상 고정돼왔던 영서가 스스로 저울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그려낸다.

반면에 국극의 남역 주연 자리를 놓고 대치되는 도앵과 옥경은 익히 서로의 능력을 알아본 사이로 정년-영서 보다 이야기가 진행된 상태에서 출발한다. 만화의 중반부쯤 도앵은 돌연 배역을 따는 일에서 벗어나 탐정처럼 국극단의 회계 자료를 살피며 공연 대관비에 얽힌 비리를 추적해나간다. 그러나 끝내 도앵이 국극단 내부의 비리를 밝혀냄과 동시에 마주하게 되는 건 자신 안에 있는 소리에 대한 낙인과 거부다. 양반 집안이라는 프라이드를 끊임없이 주입했던 아버지 중걸로 인해 도앵은 ‘소리와 춤을 파는 여자(기생)’와 같은 관념을 계속해서 경계한다. 그와 달리 옥경은 국극의 왕자가 된 때에도 기생으로 생활했던 과거를 자신의 일부로 여긴다. 이와 같이 도앵이 옥경에게 갖는 미움은 다시 말해 중걸과 남자들이 자신의 국극을 삼류 기생 놀음으로 낙인찍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궤를 같이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자극점이 되는 옥경과의 시간은 예상치 못한 일로 내면의 탐정이 되어버린 도앵에게 소리하는 여자에 대한 낙인과 왕자가 되고자 하는 꿈 사이의 괴리를 좁혀갈 여정을 떠나는 데 발판이 된다.

정년과 영서, 도앵과 옥경. 서로에게 대칭되는 존재였던 이들은 때로 곡선을 이루며 굴절된다. 뻣뻣하지 않은 이들에게 있어 인정한다는 건 서로를 견주어야 할 무언가가 아닌 자극을 주는 반사판에 가깝게 하며, 이로써 자신이 만족하는 국극을 하는 데 집중하게 만든다.


3.

이 외에도 <정년이>가 빚는 매력은 기존의 한, 두 사람만이 중심을 꿰차는 게 아니라 독자의 눈에서 익숙히 주변인으로 분류됐던 인물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서 더욱 선명해진다. 지금껏 국극단 일정에 지각하지 않고 연기에 필요한 기술도 꾸준히 익혀왔던 주란이는 1부작의 마지막 회차에 주연 바로 다음 배역인 비중 있는 조연을 맡게 된다. 이때 정년-영서-주란 세 명이 아닌 정년-주란 두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컷을 위아래로 배치한 건, 주란이라는 인물이 단지 정년-영서와 견주어 보는 역할을 넘어서 앞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것임을 예상케 해준다.

앞서 언급한 <나루토>는 다수의 소년만화가 그렇듯 모두가 무시하는 와중에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혹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재능)을 키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능력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다. 대부분 한 명의 주인공에게만 할당되는 이 필살기는 자신이 공감하는 상대라면 그게 적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설득해내는 주인공 특유의 인류애와 미련함을 함께 드러내고는 한다. 그런데 <정년이>는 정년이에게만 그 능력이 있지 않다.

앞서 주란과 영서는 연구생인 상황에서 정기 공연의 주요 조연 자리를 맡게 된다. 우연히 연습 시간이 겹친 때에 주란은 자리를 피하는 영서를 향해 담담하면서 또 단단하게 서고 싶은 무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 이를 계기로 둘은 연습 공간을 공유함과 동시에 배역에 대한 이해를 함께 밟아가는 합을 이룬다. 한편, 도앵은 과거 국극 <왕자와 왕자>를 재해석하는 연기를 통해 숙영과 옥경에게 새로운 왕자라는 기대감과 국극에 대한 두근거림을 새겨준 바 있다. 이처럼 <정년이>는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에게도 다른 인물을 바꿔내는 능력을 나누어줌으로써 이야기의 인물 관계도를 보다 복잡하고 내밀한 친밀함으로 다시 만들어낸다.


4.

무언가를 하나뿐인,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길수록 그 감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때의 상태는 나라는 사람을 소중한 걸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하여주는 것만 같다. 거기서 끝난다면 좋을 텐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의 노력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 또한 여기에 꽤 중독돼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정년이>와 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두터운 관계란 무엇일지 생각을 다듬는 중이다. 이들을 보다 보면 두터운 관계를 두 사람 간의 깊은 감정, 여러 사람과 두루 맺는 감정 등으로 정의했던 것이 흔들리게 된다. 만화가 던지는 친밀함이라는 그물망은 나의 예상과 들어맞거나 벗어나는 것과 상관없이 내가 그동안 가졌던 관계에 대한 정의, 그리고 지금의 정의하고자 하는 감정도 계속해서 흔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난잡함’의 끝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나는 이 상태를 즐기는 중이다. <정년이>를 부러워하며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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