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의 개새끼들
- 기꺼이 프로불편러: 화랑관장
- 2019. 1. 14. 13:21
델리에 와보니 어딜 가도 개들이 참 많다. 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주로 중 대형견들이다. 낮이고 밤이고 거리에 널브러 자는 개들이 정말 많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해치기는커녕 긴장한 이방인에게 ‘느긋하라’ 말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개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는 것은 개새끼라 호명되는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수의 인간 새끼 아니 정확하게는 남자들이다. 개들은 죄가 없다.
그 날은 뉴델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델리의 혼돈이 무섭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후마윤의 무덤"이라는 데를 꾸역꾸역 다녀왔다. 죽은 남편을 기리며 왕후가 지은 우아한 무덤 정원으로 느릿느릿 진입하는데 교복 입은 사내아이들이 꽤 보인다. 고등학생일까.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체구가 작은 학생도 섞여 있었다. 무심히 한 무리를 지나치는데 그중 한 명이 내게 "익스큐즈미" 한다. 서너 명 남학생 무리 중 그나마 순하고 어려 보였다. 사진을 함께 찍어 줄 수 있냐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 하지 못했다. 그 무리가 만들어내는 어떤 분위기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찍히고 있었다. 한 명이 옆에서 포즈를 취하더니, 연이어 또 다른 친구가 내 옆에 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색하게 미소를 지워 보이는 순간 허리춤으로 손이 쑥 들어온다. 마침 얇은 모시옷을 입고 있어 손길이 피부에 가깝게 닿았다. 몸이 움찔한다. 인도가 엄청 가부장제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화적인 제스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식의 현지 주민들의 ‘친근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즐겁지 않았다. 호기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죄다 남자들이었으므로. 하지만 이이들은 어린 학생들이 아니던가. 나는 ‘과민해진’ 내게 침착하라 주문을 외는 중이었다. 무리는 부산스레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찍어준다. 행여 시선을 분산시켜 소매치기라도 하려는 건 싶어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다행히 그들은 왁자지껄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우두커니 남겨졌고 어색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찜찜했다. 무덤을 돌아다니는 내내 찜찜했다. 그러나 이내 안정을 찾았다.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느리게 가는 시간을 음미하는데 의미를 부여하느라 한 참을 있었다. 얼마 동안 앉아 있었을까. 다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 녀석이 "하이 미스, it's me again" 하면서 내 옆으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얼굴을 바싹 가까이 댄다. 심리적 안전거리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찬찬히 볼 것도 없이 아까 그 무리 중 한 녀석이다. 녀석의 얼굴엔 장난기가 없었다. 서너 명이 우르르 나를 둘러쌌다. 녀석은 다시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애써 "왜?"라고 물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비코즈 아 엠 호르니.” 속으로 생각했다. ’호르니.. 호르니가 뭘까.. 호르몬 같기도 하고...' 예감이 불길했지만 다시 물었다. "왓츠 호르니?” 불길한 예감은 늘 맞았다. "나 너랑 자고 싶어" 그 남학생이 말했다. 정확히는 섹스의 비속어인 f*ck이라고 표현했다. 그제야 호르니는 그 horny 그러니까 ‘나 흥분했다’ 혹은 ‘밝히는 사람’이라는 말로 의미화되었다. 세상 다 잃은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오... 이건 정말 나쁜 짓이야. 오.. 너희는 지금 나를 성희롱하고 있어"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말을 하다 보니 점점 화가 났다. 나를 둘러싼 이들은 미동도 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딴에 겁을 준다고 "너네 선생 어딨어???"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가 가진 위력에 대한 평소의 문제의식은 온 데 간데 없이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 내 모습을 찰나적으로 자책했다. 다시금 ‘경찰에게 신고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되려 내게 ‘신고하라’ 명령했다. ‘당장 꺼지라’고 언성을 높이니 그제야 무리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뜬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심장이 뛰는지 천지가 개벽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었다. 막을 길이 없었다. 다시 상황을 되새김질을 했다. 내가 놓친 건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반응을 했어야 했나. 인도 남자 전체를 싸잡아 욕해줬어야 했나, 무덤에 있는 왕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크게 "HELP" 하고 외쳤어야 했나. "확 그냥 무덤에 처넣어버릴까 보다"라고 말했어야 했나. 그리고 그 말 한마디 "Shame on you!!" 같은 말은 왜 튀어나오지 않았나. 어떻게든 부끄러움을 주고 싶었는데 대략 실패한 거 같아 몹시 분했다. 하지만 분노는 공포 이전에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분명 그 순간 너무 무서웠고 엄청 빠르게 심장으로 피가 집결되고 있었다. 환한 대낮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였기에 망정이지 내가 성인이고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동양 여자라는 사실은 상황을 통제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건드리기 쉬운" 그이들 보다 나이 든 "이름 없는" 동양 여자에 불과했다. 그 무덤 정원을 빠져나올 때 그 남학생들 무리를 찾아 혼꾸녕 내기는커녕 행여 내가 그이들 눈에 다시 띌까 노심초사 얼굴을 숙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불현듯 SNS상에서 ‘우리에게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는 해시태그 운동이 떠올랐다. 이래도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 없는 세상인가. 해탈 비슷한 걸 해보러 이역만리 인도까지 왔더니만,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던 성폭력의 위협을 마주하다니. 해탈은 얼어 죽을! 다시 번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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