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쪽. 미움을 품고, 키우고, 내보내는 일 : 『미움』


두 달 전 동네의 한 작은책방에서 이 책을 업어왔다. 책방지기의 추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렬한 표지에 이끌렸다. 아이의 모습은 온통 푸른빛과 잿빛으로 가득하다. 또 아이의 목구멍에는 생선 가시가 걸려 있다. 젓가락을 쥔 모양새는 또 어떻고. 그 젓가락은 반찬을 집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를 찌르기 위한 것만 같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는 왜 이다지도 깊은 잿빛의 모습으로 여기에 있게 되었을까.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많은 게 설명된다.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


아이가 들은 말이다. 이 한 마디뿐이었다. 아이의 친구는 이 말만 뱉은 뒤 빠르게 멀어졌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는 순식간에 누군가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이는 그걸 견딜 수가 없다. 서둘러 나름의 살 길을 찾는다. 미움의 대상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로 한 것. 아이는 그 친구를 자기 안에 있는 미움의 방으로 가져다 놓는다. 친구 역시 미움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아이의 살 길이었다.


미움은 미움의 방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다른 어디로도 가지 않고 아이가 가는 곳마다 함께한다. 밥을 먹을 때도, 바깥에 나가 놀 때에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 꿈속에서까지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온몸이 뜨거운 얼음으로 가득차는 느낌이었다. 너무 차가워서 데일 것 같은 미움들. 미움받던 날과 미워하던 날들의 기억. 미움의 방에서 아직도 나가고 있지 않은 얼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이유도 모르는 채 미움받았고, 알 수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미워만 했다.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에 대한 일람표를 머릿속에 하나하나 그려나가기도 했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하기도 했다.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을 함께 미워하는 사람만이 내 편이었다. 내 미움에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내 편이 될 수 없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다. 나의 미움을 함께 키워주지 않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인 거니까. 나의 선함과 나의 무고함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 사람인 거니까.


한 사람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커졌을 때는 누군가를 만나 설명할 힘은커녕 바깥으로 걸어 나갈 힘도 없었다.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히고, 내 안에 틀어박혔다. 내가 틀어박힌 건지 미움이 나를 삼킨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짓누를수록 미움이라는 녀석은 점점 더 거대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그 시간을 빠져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음에 문제가 생기니 몸까지 아팠던 것 같다. 마음 때문이겠지만, 병리학적으로 뾰족한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채로 오래 아프니까 겁이 났다. 이번에는 미움이 아니라 죽음이 나를 삼키면 어쩌지? 미움받거나 미워하느라 고통스러워한 시간도 억울한데 이런 식으로 죽기까지 하는 게 말이 되나? 원한이 남아 이승을 뜨지도 못한 채로 영영 미움귀신이 되어 떠돌 텐데, 그게 말이 되냐고!


그렇게 그 시간을 조금씩 빠져나왔다. 누가 정확한 조언을 했기 때문도, 스스로 특정한 기억을 소환했기 때문도, 새로운 인간애를 발견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몸이 아팠고 이제 그만해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냥, 그냥이었다.


그림책에서 아이를 풀려나게 한 것은 엄마의 말이었다. 언젠가 엄마가 한 말을 떠올린 것. 부스럼은 긁으면 안 되고 그냥 놔두면 저절로 낫는다는 엄마의 말. 미움도 그냥 두면 저절로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는 미움의 감옥에서 스르르 빠져나온다. 엄마의 말이 있긴 했지만 그 말을 떠올린 건 아이 자신이었다. 아이의 힘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이 그림책에 관한 리뷰를 주르륵 살펴보니 대부분은 이랬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미워하는 자를 아프게 할 뿐이다. 그러니 미움을 품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미움이라는 무거운 공은 오래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움의 세계를 빠져나온 것이 아이의 숨은 힘 덕분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입을 모아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미움을 박차고 나오는 그 힘이 처음부터 그냥 생기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미움을 품고 미움을 키워왔던 그 시간이 없었다면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외딴 곳으로 밀어 넣고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하는지를. 그 시간이 없었다면, 미움에 삼켜진 뒤에는 미움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심리학자 정혜신은 “감정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미움이든 미움 이상의 것이든 그 감정이 이미 내 안에 들어온 것이라면 그것은 내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이 아는 나의 것. 그러므로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그것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나의 모든 감정 앞에서 끄덕여주기.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런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각주:1]


그림책 속 아이 역시, 그리고 나 역시, 설명되지 않는 그 미움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은 채 그 안으로 흠뻑 빠져든 시간이 있었다. 너무도 힘겨웠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리고 당시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눌렀다면, 온전히 내 스스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거나 나 자신을 다시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모든 감정이 항상 옳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낸 시간이 항상 옳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되돌아보지 않겠다거나 성찰하지 않겠다는 말과는 다르다. 지나온 시간과 품어온 모든 감정들을 긍정하면서도 그 시간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잿빛과 푸른빛으로 그려진 그림책 속 아이의 얼굴은 우리 중 어느 누구의 얼굴이거나, 우리 모두의 한때일 것이다. 그 얼굴 앞에서 고개를 내젓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어딘가로 부단히 나아갈 수 있다.          


  1. 정혜신, <당신이 옳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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