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에 오르는 길, 그거슨 부모님과의 여행 <걸어서 환장 속으로>

출처: https://url.kr/zf2gjq

 

  20대 중반에 부모님과 함께 전국을 여행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2년간 외국에 파견될 일이 생겨서, 그 전에 추억을 쌓고 오자는 취지로 45일 동안 동//서해를 그날그날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돌아다녀보기로 하고 길을 떠났어요. 부친은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모친은 캠핑은 싫지만 리조트 정도라면 같이 가주마정도의 마인드를 가지신 분인데 단 하나(과연 하나일까...)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부친은 황소고집에 모친은 참지 않는현실주의자라는 것. 일단 마음먹은 지점까지는 가고 만다는 세상 쓸데없는 오기를 탑재한 부친은 직감과 지도만 믿고 신나게 가다가 간혹 막다른 길이 나오면 갓길에 차를 대고 지도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기를 반복했고, 조수석의 모친은 옆에서 답답해하며 날선 비난을 번번이 지치지도 않고 난사해댔고요. 모친도 저도 운전할 줄 알았지만 부친은 지병으로 거동이 다소 둔하고 일정한 휴식시간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절대로 운전대를 우리 중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으며 모친의 속을 뒤집어놓기 일쑤였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쓸 수도 없는 무기력하고 심란한 상황에 놓인 저는 그때마다 반쯤 넋이 나가서 철학적 고찰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싸울 거면 애초에 왜 여행을 오자고 한 거지?’, ‘나 없으면 둘이 허구한 날 이러고 싸울 텐데 어떡하지?’, ‘매일 똑같은 걸로 싸우는 거 지겹지도 않나?’ 같은 반복되는 명제에 괴로워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앞좌석의 소요는 나름 정리가 되어 어찌어찌 진행되고 있는 패턴이 이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나 혈육은 부모님이 다투기 시작할 때면 말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철저한 방관자 말고는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까지 그 관성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거지같은 땅에 버려지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였던 이들이니 성인이자 부부인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인 거잖아요. 게다가 항상 같은 문제로 싸우니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하고, 이렇게 살 바에 그냥 이혼하라고 하면 네 개의 눈동자가 갑자기 저를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고는 등짝 스매싱을 해대기 일쑤니까, 그저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고요.

 

  일정 마지막 날에는 지치지도 않고 실랑이하는 부모님한테 진절머리가 나서 일정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가 밥값을 계산했어요. 출국을 앞둔 백수 캥거루 처지였지만 내 다시는 이런 불편한 구성은 함께하지 않을 테니 이걸로 정리합시다!’ 라는 일종의 내적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그때를 떠올리며 모친은 그때 우리 셋이 재밌게 잘 놀다 왔었잖아?’ 하며 아련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매우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모친에게 있어 남편과의 옥신각신은 그저 인생의 디폴트일 뿐이고, 제가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되건 말건 상관없이 그때를 식구가 오롯이 함께했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심난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한가롭게 풍경도 즐기고 맛있는 것도 먹긴 했지만, 내 인생에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으로 남기겠노라며 마음 속 다짐을 굳혔지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또 한 번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긴 합니다. 결혼 전에 보통 엄마와 딸 둘이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제 또래에는 관행 비슷한 것으로 자리 잡혀 있었는데, 제가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중에 여행 이야기를 꺼내자 모친은 나도 마음은 굴뚝같지만 니네 아빠, 너랑 나만 여행 간다고 하면 아마 서운해서 울 걸?”이라며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하셨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부친과 모친을 통해 애증이라는 개념을 그 누구보다 물성 그자체로 느끼며 자랐습니다. 자매품으로 미운 정도 있고요). 결국 몇 년 전 그 멤버로 동남아 3개국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는 구성원의 주도적 의지가 돌출되기 쉽지 않은, 고도로 치밀하게 설계된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모친과의 불화도 예전의 국내여행에 비해서는 거의 없다시피 했던지라 그나마 원만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제게는 부모님과의 여행이 소중한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무기력한 일상적 불화의 연속이라는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행만 따로 두고 보면 찬란하고 반짝이는 상쾌함 그 자체이지만 거기에 부모가 함께하게 되면 어쩐지 지치고 빛바래져버리는 느낌이랄까요. 결혼 전까지 해외여행은 혼자 자유일정으로 다니곤 했는데, 이국적인 장소에 있다 보면 문득문득 이 멋진 풍경과 이 맛있는 것을 엄마가 마주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아예 없었던 적은 아닙니다. 중년들이 선호하는 패키지여행은 일반적으로 능동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통제하는 만큼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에, 부모님과 함께 이런 의외성을 즐기며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으로만 남겨두고, 결코 경솔하게 입 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한 적은 아직 없습니다. 3년간의 상담 덕분에 정서적 채무감을 비롯해서 K-장녀 정체성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온갖 건강하지 못한 심적 요소들을 겨우 멀리하기 시작하게 됐는데, 이제야 겨우 되찾게 된 마음의 평화를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걸어서 환장 속으로>의 저자는 아마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극진하고, 다년간 여러 형태의 해외 체류 경험으로 맷집을 다진 강인한 인격체로 짐작됩니다(그리고, 그렇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물론 저자에게도 평안한 날들만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권 분실과 비행기 놓침, 부모님의 취향 차이와 컨디션 난조 등 여러 역경에 두드려 맞으면서 멘탈이 나가버리고 길바닥에서 눈물샘이 터지기도 합니다. 결국 가족애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기는 봉합되지만, 간접경험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황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히 동질감을 주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저도 다년간 겪었음에도 매번 새록새록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어요. 그 두 가지 고난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상황에서도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자동재생해서 분위기를 망치고야 마는 엄마, 그리고 갑작스러운 생리현상으로 다급해진 나머지 인파 속에서 차례를 지켜 카페 공중화장실 비밀번호를 물어보려는 딸을 쉴 새 없이 다그쳐 기어이 딸의 혼백을 가출시켜 버리는 엄마. 영원한 애증의 관계인, 엄마와의 일화였습니다. 마치 저희 모친을 보는 듯한 기시감에 닭살이 다 돋더라고요... 정확히 이런 지점 때문에 부모님과의 자유여행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저와 달리 저자는 마치 보살의 현신인 것 마냥 이 모든 난리굿을 감내합니다.

 

감정이 분출할 정도로 행복해지는 순간에 항상 서러웠던 순간들이 세트로 딸려올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삶을 나는 모른다.”

 

  가부장제의 희생자이기도 하고 생존자이기도 한 여성들의 모습은 어쩜 이리도 서로 닮았을까요. 지금, 여기의 상황에서는 어떤 해결책도 없는 과거의 상처에 고통스러워하는 엄마 앞에서 딸들은 매번 무력감을 느낍니다. 스페인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해 외국인 친구의 초대를 받는 꿈을 이룬 셈이라며 행복해 하다가 모진 시집살이 한탄으로 넘어가는 그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저도 초조함에 폭발하고 말았을 것 같아요. 이 좋은 날 여기까지 와서 왜 굳이 안 좋은 얘기를 꺼내냐며 말이지요.

 

  부모님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별개의 타인이라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되뇌지 않으면 잊기 쉬운 것들입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의 욕구를 100% 충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일단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볼 일입니다. 저희 부모님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는다면 생각할 틈도 없이 여행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아요. 그래서 묻기 두렵고, 코로나 종식이 한편으로는 초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래의 문장이 끝내 제 안의 노스탤지어와 효심을 자극하는 것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긴장해서 더듬거리며 어설프게 내뱉은 말로도 물개박수를 동반한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부모님과의 자유여행이다. 두부 한 모 사와도 온 식구가 끌어안고 기특해 해주었던 그날들처럼. 문제없이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척하느라 매번 허덕이던 날들을 탈출해 맞은, 내 걸음마 배우던 시절과 닮은 아기자기한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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