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방금 집에 돌아왔다. 닫히는 문의 소리가 난다. 그리고 적막. 습관처럼 신발을 벗는다. 집에는 가구나 집기가 거의 없다. 전등을 켜지 않는다. 어둡다. 그러나 그는 어둠이 두렵지 않은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표정이 궁금하다. 좀체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방이 어둡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태양 아래에서도 그의 표정은 좀처럼 선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넌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같아.” 그녀는 그를 여러 이름으로 정의했다.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순수가 가려진 사람, 회색 인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정의들로. 그는 누군가로부터 정의 내려지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그에게 그만한 관심조차 없었다..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생각했다. 자신은 하늘에도 땅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라고. 그래서 그는 늘 외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 외줄 위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그도 딱 한 번 외로움을 잊었던 순간이 있었다. 더는 양팔을 휘젓지 않아도 걸을 수 있었던 순간. 그 순간이 끝나고 그는 땅으로 스스로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 외줄을 타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땅으로 떨어지기보다는 스스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카페에 간다. 비틀거리기보다는 안전하게 두 발을 땅에 내디딜 수 있도록 양팔을 힘껏 휘적였다. 키보드 위를 휘젓는 그의 손길이 멈췄다. “상철아!”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효선이었다. 아마도 효선도 상철과 같은 목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