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7. 꽃이 피는 것과 꽃이 지는 것의 경계에서


    그는 방금 집에 돌아왔다. 닫히는 문의 소리가 난다. 그리고 적막. 습관처럼 신발을 벗는다. 집에는 가구나 집기가 거의 없다. 전등을 켜지 않는다. 어둡다. 그러나 그는 어둠이 두렵지 않은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표정이 궁금하다. 좀체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방이 어둡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태양 아래에서도 그의 표정은 좀처럼 선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넌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같아.”

    그녀는 그를 여러 이름으로 정의했다.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순수가 가려진 사람, 회색 인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정의들로. 그는 누군가로부터 정의 내려지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그에게 그만한 관심조차 없었다. 그의 경계가 흐려진 것은 늘 사람들의 변두리에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를 스쳐 지나간 사람 중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마치 보호색을 입은 듯한 사람이었다. 아니, 형태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어디에든 흘러 들어와서 어디로든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그런 그를 발견한 것은 그녀였다. 여기 있었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 자신조차도 몰랐다. 그녀가 평생 누군가를 찾아다녔다는 사실을. 그를 만나서야 그녀는 깨닫게 된 것이다. 아, 나는 이 사람을 찾아다닌 거였구나. 24년이라는 시간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거구나.

    외로웠다. 그녀도 그랬지만 그도 그랬다. 하지만 그때의 그 둘은 지금 이 순간의 그만큼 외롭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그. 정적의 질감은 거칠었다. 침묵이라는 입자들로 구성된 정적은 사포처럼 까슬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질감에 이미 굳은살이 박일 대로 박힌 사람이었다. 그러나 보고 있는 우리는 그 광경에 숨이 막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곧 불을 켰다. 빛은 정적의 거친 표면을 한결 부드럽게 다듬어줬다. 휑한 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클레이로 만든 모형이었다. 지문 자국이 잔뜩 묻은 그 모형은 그녀가 만든 것이었다. 모형이 놓인 위치는 눈에 띄지도, 그렇다고 숨겨져 있지도 않은 위치였다. 뻔하게도 그는 그 모형을 차마 버리지 못한 것이다. 천원 마켓에서 산 싸구려 키트로 만든 모형이었음에도. 예쁘지 않은 원시인 모형이었다. 그는 그 모형의 존재를 마치 잊은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침대로 향했다.

    그는 불을 켜고 잠에 들곤 했다. 샤워는 생략하기 일쑤였다. 자신을 돌보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대신 돌봐주는 것이 그녀는 즐거웠다. 불을 대신 꺼주고, 씻으라고 잔소리하고, 밥을 차려주고. 그는 그녀가 차려주는 모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던 시절이었다. 그가 웃을 때면 입이 거꾸로 된 세모 모양이 되었다. 치열이 아주 바른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며. 그러나 지금 그의 표정은, 다시 말하지만 좀처럼 선명하지 않다. 그는 곧잘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자주 하는 생각들보다 더 위험한 감각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이제 곧 죽을 것 같다’. 죽고 싶다는 마음보다 더 위험한 것은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곧 죽을 것 같다는 감각이다. 감각은 생각보다 늘 더 위험하다. 위험은 그의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다행히그는 오늘도 무사히 잠이 들었다. 비록 그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내일은 또다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출근을 하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일 것이다. 그는 형태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디로든 흘러 들어가서 어디로든 다시 흘러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이제는 옆에 없는 그녀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몰랐다. 14일 뒤, 그가 실행할 일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일 이후의 일에 대해서.

    그는 14일 뒤, 아래의 글을 남긴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잠 대신 술을 선택했다고 한다. 술은 그에게 용기를 가져다줬고, 그가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것을 실행하게 만들었다. 그는 집에 굴러다니는 넥타이를 집어 들었다. 그 뒤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일이었다. 처음으로 낸 용기였으나, 그 용기는 결국 마지막 용기가 되었다.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실패한 것이다. 실패야 할 수 있다만, 그 뒤로 다시 시도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죽어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혹은, 죽고 나서야 살아가는 삶일지도 모른다고.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죽음이라는 것이, 형태의 변환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형태가 없는 그는 형태가 바뀌는 일도 없을 거라고. 마지노선의 그 순간에 풀리는 넥타이와 함께 수수께끼도 풀렸다.

    그의 수수께끼를 풀어준 것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죽음과 삶 그 자체였다. 그는 꽃처럼 피어나지도, 시들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 처음부터 피는 것과 시드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 대신에 존재와 소멸은 허상이다, 라고 그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형태가 생기거나 다시 표정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잊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그에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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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흘렀다. 흐른 시간은 바람으로부터 감각된다. 날이 부쩍 서늘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만 –싶다,라고 생각해버렸다. 서늘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니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지겹도록 많이 한 생각, 지겹지도 않은 지 자꾸만 드는 생각. 발에 차이듯 드는 생각에 익숙하다. -싶다,는 생각은 도처에 널브러져 있다. 날씨에, 물건에, 사람에, 나무에, 신발 끈에, 그냥 그 모든 곳에 그 생각이 거추장스럽게 매달려있다. 아,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 그것은 비단 모두에게 공평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불공평하게도,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싶다,는 생각을 지워가며, 이겨내며. 그땐 모두에게 존경심 같은 걸 품었었지.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 거지?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웃고 떠들고 숨 쉬고 말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걸까. 나는 그 모든 일이 쉽지 않은데. 모든 것이 걸림돌투성이인데. 걸음은 자꾸 멈칫인다. 자꾸만 땅을 쳐다보게 되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입에서는 한숨만 나온다.

    버겁다. 버겁고, 버겁다. 내일은 나에게 이렇게 버거운 것이다. 내일의 무게가 떠오르는 태양의 질량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진다. 새벽 4시만 되면 이제 슬슬 내일이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머리가 까마득해진다. 내 머리가 태양만큼 무거워지기라도 한 듯이. 눈을 감기 싫어.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내일이잖아. 10대 시절부터 이어져 온 불면증은 이렇게 시작됐다.

    불면의 밤은 오늘도 계속된다. 서늘해진 날씨만큼이나 –싶다,는 생각은 더욱 서늘하게 내 옆에 다가와 있다. 뒤척인다. 뒤척인 자리마다 서늘함이 묻어난다. 퍼렇게 묻어난 서늘함은 나를 차갑게 감싼다. 차갑다. 추워. 이럴 때면 네가 떠오른다. 그리고 금세 죄책감이 든다. 널 떠올린 것은 내게는 죄악이야. 감히 널 떠올리다니.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그때의 나는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널 떠나는 게 최선이었을까.

    부질없는 생각. 쓸데없는 망상들. 후회와 미련. 더러운 단어들. 그리고 그보다 더 더러운 건 나다.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버려야 해. -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밖을 뛰쳐나가고 싶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져 버리고 싶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니, 실제로는 몸은 떨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심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에 가깝다. 숨이 막힌다. -가는 것 같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 그 사실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화가 난다. 답답하다. 밉다. 속이 탄다. 이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보다 이 몸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세포 하나하나가 낯설다. 그 하나하나가 나를 침범하는 것만 같다. 으, 몸서리. 몸서리는 결국 눈물로 방울진다. 그러나 나의 감각은, 감정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화가 난다. 밉고, 속이 탄다. 시간은 이상하게도 흘러만 간다. 이제 동이 틀 것만 같다. 이상하다. 나는 왜 이곳에 있지? 나는 왜 있지? 나는 왜 지금 생각을 하고 있지? 이 말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 이, 말, 들, 은, 뭐, 지? 낯설다. 텅 비어있고, 차갑다. 서늘하고, 화가 난다. 같은 말의 반복. 닿지 않는 나.

    그 말들을 뒤로 한 채 내일도 태양은 떠오를 것이다. 나는 그제야 죽어버린 시체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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