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붉은 꽃을 주면 좋겠어.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설핏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을 때 보인 건 차곡차곡 쌓인 새하얀 국화였다. 붉은색이라곤 없는 이곳에서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환히 웃고 있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들여다 놓으면 죄다 시들게 만들어 문제였지, 이건 꽃이 예쁘고, 저건 잎이 독특하다며 틈이 나면 하나씩 가져왔다. 햇볕 좋고 경치 좋은 자리는 사막의 식물들이 차지했다. 선인장과 같은 식물은 강렬한 태양 빛을 받아야 한다며 한겨울에도 볕 좋은 베란다에 내다 둔 탓에 선인장은 얼어붙었다 녹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그런 식이었다. 나도 식물이었다. 내가 가져본 식물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너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저 아끼는 자리를, 아..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쓰지 않아도 되는 일기는 없을까?”, “왜 나는 일기를 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 일기가 정말 필요한 걸까?” 등의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끔 했다. 바로, 의 이름으로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 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라, 나는 프로젝트 하나를 올리기 위해 아주 많은 실패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정말 있어야 할까? 타인에게도 유의미할까? 라는 걱정 또한 불어났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말로 표현 못할 벅참과 묘한 감정으로 내게 돌아왔다. 트위터에서 펀딩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었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그간 자신이 겪은 자책과..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 읽음 표시가 뜨자마자 바로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얼마 전에도 수자에게 “엄마, 사랑해”라는 카톡을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윤희에게 보낼 때도 그랬었다. 그들은 내가 혹여 죽음의 문턱 앞에 서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과거형은 아니다. 지금도 꾸준히 신경정신과에 내원하며 약을 받고, 약 없이는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해 알고 있는 상태이며, 그것을 잠시라도 극복해낼 방법을 알기 때문에 앓았다, 고 쓰고 싶었다. 우울증은 전조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당시 나는 사이버 대학교에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