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 by 김라면

 

    나는 붉은 꽃을 주면 좋겠어.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설핏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을 때 보인 건 차곡차곡 쌓인 새하얀 국화였다. 붉은색이라곤 없는 이곳에서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환히 웃고 있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들여다 놓으면 죄다 시들게 만들어 문제였지, 이건 꽃이 예쁘고, 저건 잎이 독특하다며 틈이 나면 하나씩 가져왔다.

햇볕 좋고 경치 좋은 자리는 사막의 식물들이 차지했다. 선인장과 같은 식물은 강렬한 태양 빛을 받아야 한다며 한겨울에도 볕 좋은 베란다에 내다 둔 탓에 선인장은 얼어붙었다 녹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그런 식이었다. 나도 식물이었다. 내가 가져본 식물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너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저 아끼는 자리를, 아늑한 침대를 내어주고 내버려뒀다. 얼어 죽든 꽃을 틔우든, 그건 내가 할 일이었다.

 

    검은 치마가 하얀 발끝에서 흔들렸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면 발이 드러나고 손을 떼면 사라졌다. 섞일 것 같으면서도 섞이지 않는. 가까이 다가가지만 닿지는 않는 그 어떤 것.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엄마의 친구였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모르는 사람인 이들. 나는 그저 치맛단의 흔들림을 바라보았다. 흔들, 흔들. 닿지 않을 거리에서 흔들리는 흑과 백.

 

    오늘은 친구들과 연말 파티를 하려던 날이었다. 숙소도 다 잡아놨는데. 이 갑작스러운 사건이 없었다면 그들 곁에서 웃고 있었을 텐데, ‘하필 오늘’. 고개를 슬쩍 들어 주변을 살피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살짝 처진 눈매에 깊은 주름들이 패여 있었지만, 그것은 노고의 형상일 뿐 슬픔을 담아내지는 않았다. 지인들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목소리를 높여 아버지를 다독였다. 잘된 일이라고, 이제 편해질 것이라고.

아주 시끄럽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순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몸은 자연스레 바닥을 향해 무너졌다. 등은 편안한 벽을 찾아 기댔고, 다리는 구겨져 받침대가 되었다. 시곗바늘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눈이 피곤했지만, 빨간 재생 버튼이 나를 유혹했다. 따뜻한 이부자리 속에 누워 있다면 어둠 속에서 킬킬거리다 잠들 수 있을 텐데. 며칠만 지나면 가능할 일이지만 지금은 힘든, 그런 일상.

 

    “선인장도 썩는 거 아니?”

    알아낸 식물의 정보를 종알종알 외는 것은 엄마의 특기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엄마는 전화를 걸어왔다. 햇볕이 따사로운 좁은 방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려보내고 있노라면, 화면은 멈추고 손바닥은 굵은 진동을 받아내었다. 솟아오르는 짜증을 누르고 노트북을 켜는 사이, 발랄한 목소리가 얘, 벚꽃은 상처가 나면 회복이 더디대. 꽃을 틔우는 데 에너지를 다 써서. 얘, 상수리나무는 상처가 나면 다음 해에 도토리를 더 많이 매단대. 일부러 나무를 때리는 사람도 있다는 데, 알고 있었니? 하고 컴퓨터처럼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보던 영상을 다시 찾고, 음소거 상태로 켜 둔 채 미소를 띠고 있으면 엄마는 귀신같이 듣고 있니? 하고 물어왔다. 그럼 나는 시선은 동영상에 둔 채로, 어어, 듣고 있어, 하고 답했고 엄마는 다시 자신이 보고 들은 정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날도 그렇게 있었다. “얘, 듣고 있니?” 하는 질문에 “응, 선인장이 그렇다고.” 하고 답했다.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영상 하나가 끝이 날 때까지 침묵이 이어졌다.

 

    이제 어떡하니.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상대는 핏줄이 불거진 손으로 내 두 손을 맞잡았다. 온기가 느껴지는 손은 이질적이었다. 거칠고 따뜻한 손. 얼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그렇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자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눈이 닿았다. 네, 그럼요. 일상으로 돌아가야죠.

 

이제 와 말하자면 엄마는 내 일상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녁 사 먹어. 눈을 뜨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확인했다. 오늘은 두 장, 어제는 세 장. 어느 날에는 다섯 장. 지폐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밖으로 나갔다. 가능한 오랜 시간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는 “밥 먹어야지”라는 목소리가 놀이터의 누군가를 찾을 때까지, 중학생 때는 학교 앞으로 찾아오는 친구들의 학원 버스가 전부 떠날 때까지, 고등학생 때는 야자를 마칠 때까지. 고학년이 될수록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은 줄어들었다. 엄마는 여전히 바빴지만, 내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늘어가고 있었으니 나는 혼자서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고등학교 삼학년, 엄마가 회사를 관두었다. 엄마가 없던 일상에 갑작스레 엄마가 생겼다. 아침에 등교할 때도, 야자를 끝내고 돌아온 저녁에도 엄마가 있었다. 늦은 밤 현관문을 열면 왔니? 야식 챙겨줄까? 하는 물음이 이질적으로 들렸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됐어요,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밖으로 엄마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선 자리는 점점 더 고요해졌다. 삼삼오오 모여 육개장을 마시는 이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아버지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누군가를 따라갔던 장례식을 떠올렸다. 상주는 덤덤해 보였지만 눈가에는 슬픔이 묻어났고, 뒤늦게 도착한 어느 조문객은 주위를 신경 쓰지도 못한 채 울음을 토해냈다. 그 울음소리에 상주는 함께 눈물을 쏟아냈고, 조문객들은 그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그때, 정말 사랑받은 사람의 끝은 이런 것이구나, 했던 것 같다. 엄마를 한 번 더 올려다봤다. 엄마, 엄마는 사랑받지 못했어. 누구한테? 글쎄, 나일까.

 

    ‘병원이야.’ 평화로운 오후 시간이었다. 강의 시간 전에 느긋하게 앉아있을 때였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징, 징- 울렸다. 무심코 가 닿은 시선이 검은 글자를 공허하게 읽었다. ‘수술해야 할지도 몰라.’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수업은 어떻게 들었더라.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앞이었고, 더듬더듬 엄마의 이름을 댔고, 최대한 멀쩡한 척 병실로 들어갔던가. 엄마는 멀쩡한 얼굴로 병실 침대에 앉아 내게 인사를 했다. 옆에서 아버지는 무심한 얼굴로 “왔니,”라고 물었고, 나는 김이 샌 얼굴로 옆자리에 앉아 멍하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화장실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가 걱정되었던 걸까, 엄마를 잃을 내가 안타까웠던 걸까. 조력자를 잃어 거리에 나앉을 것을 걱정했던 걸까. 거울 속 내 얼굴엔 눈물의 흔적만 가득하고, 눈에는 어떠한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이상한 걸까. 이상한 것이겠지. 허탈하게 돌아간 병실에서 엄마는 왜 왔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돌아가 수업을 들으라는 말에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만히 앉아 고개만 끄덕이다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래. 자취방. 엄마와 한집에서 지낸 것은 일 년 남짓한 시간이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고, 겨우 일 년이 지나서 나는 엄마와 다시 멀어졌다. 멀어진 공간만큼 다시 조용해지리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고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를 걸어왔다. 일상을 묻기도 하고, 일상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날 잔뜩 귀찮게 만들곤 했다. 홀로 둔 시간을 보상하기라도 할 것처럼.

 

    금방 병원을 나올 것 같던 엄마는 병원에서 오래도록 나오지 못했다. 엄마의 병명이 암이라는 사실은, 아버지를 통해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집에 좀 내려오라는 잔소리와 엄마가 그냥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엄마가 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도.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처음 일 년가량은 자주 병문안을 하러 갔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오 년이라는 기간 중 처음 일 년. 혹여나 내가 이후에 후회하게 될까 봐,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입원실에서 늘 기뻐했고, 기간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수척해져 갔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밝았고, 웃었다. 새로 배운 식물의 정보를 이야기했고, 자꾸만 바쁘지 않으냐고 물었다.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얼른 올라가라고 말했다. 나는 어김없이 네, 하고 답했다. 엄마는 괜찮았다.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방문 빈도를 줄였다. 방문이 줄어들자 엄마가 전화를 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나는 만족스러웠고, 다시 조용해졌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돌아와 잠깐 눈이라도 붙일 생각인지 차가운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새우처럼 둥글게 말린 몸이 잘게 떨렸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엄마는 내게도 꽃이었다. 알아서, 어떻게든 피고 지는 꽃. 선물처럼 잠깐 왔다가 며칠이 지나면 어느새 치워져 있는 꽃. 화장실 거울에 눈이 퀭한 사람 하나가 비쳤다. 나는 슬퍼야 하는 걸까. 엄마는 햇볕 아래 바싹 마른 선인장을, 애정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슬퍼야 하는 거니? 엄마의 질문을 입 속에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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