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 3월 둘째 주

해방감

    - “엄마는?”

    - “포도 전지하러 가셨어요.”

    - “너도 도와드려야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또 들으며 자란 말은, “엄마 도와드려야지.”, “엄마한테 효도해야지.”라는 말이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특히, 엄마가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애쓰시는 것에 대해 감사함뿐만 아니라 ‘미안함’이 상당했다. 야간일 나가시는 엄마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드리고, 엄마가 퇴근 후 새벽에 공장 청소를 나가시면 그 청소도 도우고, 엄마를 생각해서 마을의 어른들에게도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우리를 위해 밤낮없이 고생하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종일 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울 때 ‘엄마는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데…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싶은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익힌 ’효’라는 개념이 내게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응축된 단어로 다가왔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나아가 우리 가정의 실질적 가장이자 엄마로서 본인의 삶을 기투한 엄마에게 감사함을 넘어서 죄송했다. 우리를 키우느라 엄마의 젊음이 지나간 것, 자신의 건강을 돌볼 경제적, 정신적 여유도 없이 살아온 것, 여전히 고된 삶을 살고 계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너도 도와드려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하하, 그러게요. 근데 저도 제 할 일이 있어서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내가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으나 할 일이 있어서 못 도와 드리는 것에 아쉬워한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진심은, 엄마가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지 않듯이 나 또한 굳이 엄마를 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잠을 줄여가며 포도밭을 가꾸시고 텃밭을 일구신다. 4남매 모두 엄마에게 농사일이 힘드니 하지 않으실 것을 권했지만, 엄마는 농사가 그저 좋다며 끝내 포기하지 못하셨다. 농사는 엄마에게 고생이 아닌 취미다. 물론 그 취미를 함께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만,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제 다음 달이면 벌써 아빠가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된다. 동시에 시골에 내려와 생활한 시간도 1년에 가까워진다. 가족을 위해 애쓰시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가족에게 나도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되어, 아빠가 돌아가신 후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시골로 내려오게 했고, 대학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첫 정규직에서 모은 돈을 가족을 위해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시골에 내려온 지 1년, 이제는 평생 마음에 무겁게 이고 지고 왔던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기반으로 한 책임감’을 조금은 내려놓은 것만 같다. 이 시간 동안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가족이란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혈연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된 가족이라는 개념은, 한 마디로 설명해내기 어렵게 복합적이고 커다란 감정으로 다가온다. 때론 고맙고, 때론 미안하고, 솔직히 좋아함 없이 책임감에 의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고… 하지만 이 책임감이 나름 착한 사람으로 살게 했고, 성실한 사람으로 살게 했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 친구랑 산책하다가 우리 엄마 또래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우리 엄마도 저렇게(야간 일 안 하시고, 농사가 아닌 산책을 하시며 여유롭게, 아파트와 산책로가 있는 시내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친구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엄마도 너에게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을 테지만 강요하지 않잖아.”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가 내게 외모를 꾸미고, 이성애 연애를 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사는 삶을 강요하지 않듯이, 나도 엄마에게 외모를 꾸미고, 농사를 짓지 말고, 아파트에 들어가자고 강요하지 말아야겠다고. 그저 엄마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존중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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