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이야기 / 1월 둘째 주

두 개의 엄지손가락


빨래판으로 만든 최정화 작가의 '늙은 꽃'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


    “나도 할 거야. 근데 조이 손가락 말고 다른 손가락 잡을래. 조이 손가락은 무서워.”


    엄마들은 뱃속에서 열 달 품던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출산의 고통도 잊은 채 핏덩이 같은 모습을 하곤 우는 아이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이가 어디 아픈 데는 없나 걱정하기도 하고, 눈코입은 누구를 닮았나 살피기도 하며 정말 콩알만 한 손가락 발가락이 열 개씩 잘 달려있나 세어 보기도 한다.


    참 멋지고 설레는 순간이다. 우리 엄마는 나를 낳고서 이 멋지고 설레는 순간을 두려움과 미안함, 걱정으로 마주했다. 내게는 열 개의 발가락과 열 한 개의 손가락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하나가 아닌 두 개다. 내가 태아였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손가락 발가락 개수까지 세어보지 못했던 것인지 혹은 담당 의사의 헐렁한 진찰 때문인지 엄마는 그 예후를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하긴 그 증상을 미리 알았다고 해서 딱히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지증은 선천성 기형이기 때문에 예방할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소식을 알고 신생아의 손발 가락을 보는 마음과 모르고 보아서 느끼는 충격의 차이랄까?
   
    정작 나는 내 오른손에 자리한 두 개의 엄지를 본 기억이 없다. 사진도 없다. 아주 어렸을 때 수술을 해서 하나의 엄지손가락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다지증의 경우 단순히 절제하면 되는 간단한 수술도 있지만 복잡한 재건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조직과 장기가 자발적으로 재생되는 능력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에 수술할 것을 권한다. 더욱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삼엄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과 여성의 아름다움에 혈안이 되어있는 한국 사회였기에,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그 사회에서 사회화가 된 이들이었기에 여자아이의 엄지손가락이 두 개인 것을 안타까워하여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하셨다.


    만약 지금도 내게 오른손의 엄지가 두 개라면? 큰 불편함이나 합병증이 생기지 않았다면 굳이 수술을 안 했을 것 같다. 할머니에게 늘 “잘라낸 손가락이 생긴 게 좀 작았지만, 힘도 더 세고 네가 더 편하게 썼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서인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손가락을 얼마나 상상했는지 모른다. 그 녀석도 내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되고 그 어느 손가락보다 더 큰 애정이 간다.


    물론 어릴 때는 이 사실은 아는 친구들로부터, 혹은 남겨진 한 개의 엄지에 있는 큰 흉터를 징그러워하는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이 경험은 그날에는 상처였지만 지금은 꽤나 값진 경험이다. 과연 이 사회의 정상 비정상의 개념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했던 최초의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손가락이 여섯 개라고 놀리고 무서워했지만 정작 나는 나와 그들이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엄지손가락이 두 개인들 피아노 건반을 열 한 개 누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필을 한 번에 두 자루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혹여 그렇다고 한들 그것이 소위 손가락이 열 개인 정상인들에게 그 어떤 손해를 입히지도 않는다. 


    유독 우리 사회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예민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친구랑 예능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와 저 사람이 제일 잘 생겼다.”


   “근데 저 사람 완-전 시골에서 목수래. 근데 저 사람들은 예쁘다, 잘 생겼다는 외모 평가를 안 하더라. 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은 안 하더라고.” 


    “음… 나도 모르게 외모 평가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 의식해서 고쳐야겠다.”


    누구의 말마따나 한국산으로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한순간의 배움과 깨달음이 주어졌다고 해서 새로운 존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에 배우고 깨달은 바를 의식하고 생각하는 노력을 한다면 적어도 이전보다는 조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이 사회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회가 되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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