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이야기 / 1월 넷째 주

각의 전환


   지난 10월부터 1월까지, 총 14주 동안 매주 쓰던 글을 격주로 연재하게 되었다. 겨울이 되어 농한기에 접어들며 농사일이 한산해진 때문이기도 하고, 새해가 되며 새롭게 시작된 두 가지의 일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재 날짜가 길어진 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글을 쓰리라 다짐하며, ‘리얼 포레스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리얼 포레스트’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따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던 주인공 김태리는 “배가 고파서” 시골에 내려간다. 각자의 사정으로 그러나 모두 도시 생활에 지쳐 시골로 내려온 고향 친구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조금씩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삶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그려진 영화다. 


    그럼 나는? 나는 나름 행복하게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셨고, 고등학생인 동생과 야간 일을 다니시는 엄마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상당한 책임감에 이끌려 시골에 내려왔다. 영화에서의 시골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임에도 불구하고 말끔한 모습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식구들이 살고 있어도 엄청 엄청 더러워서 쓰레기 차를 불러 오래된 가구와 잡동사니, 할머니가 모아두셨던 쓰레기를 버려야 했고, 집 안 구석구석 다 정리해야만 했다. 


    영화와 나의 현실은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가장 큰 공통점은 농사를 짓는 농촌의 배경일 것이다. 매주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고 싶었다. 하지만 마을에 닥친 개발 분위기로 곧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과 시간이 흐르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농사를 해야 하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는 있을까, 하는 갈등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부재로 인한 충격과 그리움이 커서 ‘리틀 포레스트’ 글을 쓰고자 하면 농사 이야기보다 아빠의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다. 이제는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독자님들께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빠의 갑작스런 부재가 없었다면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 일도, 이렇게 글을 연재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아빠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전에 없이 낯설게 느껴지고, 시골에 내려와서 6개월이나 함께했는데 이전보다 더 불편하다 못해 싫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더니 엄마가 이해되어, 요즘은 그토록 바라던 불가근불가원의 적당한 거리가 이루어져 서로 적당하게 잘 지내고 있다. 어쩌면 같이 살아야 하니까 의식/무의식중에 그렇게 적응했나 싶기도 하지만, 관계가 완만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내 태도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성취감이 행복감으로 느껴지는 편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실천해나가고 마침내 이루는 것이 삶의 큰 재미이다. 그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여 타인에게 내 에너지를 쏟을 때, 타인도 나와 같기를 기대하며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생색내기 좋아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 정도 요구하는 것이 소중한 것을 꺼낸 것에 대한 당연한 권리이다.


    그렇다 보니 시골에 내려와 생활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상당했다. 친구들과 회사 그리고 편리한 삶을 포기하고 시골에 내려온 이 선택만으로, 나아가 집안일과 농사일, 또 아빠가 돌아가신 후 처리해야 할 일들을 내가 해내기에 가족들 모두 내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동생은 청소와 빨래, 식사에 대해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고, 언니들도 나로 인해 엄마와 동생에 대한 걱정 없이 믿고 본인들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온 것은 가족 중 누군가 제안해서 한 선택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선택의 결과로 누군가는 어느 부분을 얻고, 누군가는 어느 부분을 잃는다. 하지만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셈해보며 인정을 요구하거나 잃은 것을 분해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단지 나중에 겪을 일을 좀 일찍 겪어, 나이테가 더욱더 촘촘해졌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스스로를 붙들 뿐이다.


    아빠를 향한 그리움과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불안감,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와 저녁노을에서 오는 편안함. 이 주어진 시간을 매일 충실히 잘 살아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본다. 이 마음 덕에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게 되고, 덩달아 관계도 좋아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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