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야기 / 2월 마지막 주

깨달음

   입춘이 지났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땅도 갈고, 무엇보다 포도나무 전지를 해줘야 하는 시기이다. 엄마는 전지를 위해 회사에 3일 휴가를 내셨다. 그러나 정작 한 나무도 전지하지 못한 채, 휴가는 끝이 나고 말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엄마에게는 자식이 넷이나 있어서인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일이 많다. 큰언니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하다가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작년 봄에 갑작스레 아빠가 돌아가셔서 큰언니에게 소홀했더니, 최근 정도가 심각해져 엄마와 나는 시시때때로 서울을 오가며 조카들을 돌볼 수밖에 없었다.

    개미처럼 살면 늙어서도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살면 늙어서 노래 교실 다니는 거라고 누군가 그랬다. 할머니는 개미였고, 아빠는 베짱이 기질을 가진 개미처럼 사셨다. 이제 남은 엄마라도 베짱이처럼 사셨으면 싶어서, 엄마에게 포도나무 전지도 하지 말고, 밭도 갈지 말고, 아예 농사하지 말고 아파트에 들어가 작은언니랑 둘이 살기를 권했다. 숱한 대화와 부탁, 간청, 애원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끝내 시골집에 남겠다고 하셨다.

    시골에 내려온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시골 생활에 반대한다. 첫 번째로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과수든, 벼든, 각종 채소나 어떤 구황작물이든 간에, 수천 수만 평의 토지를 갖고 수십 명의 일꾼들을 부리면서 트랙터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돈이 된다. 기껏 몇백 평을 가지고 혼자 농사짓는다 치더라도 혼자서 다 하기에 버겁고, 해내서 소득이 생긴다 해도 그 소득은 본인의 인건비도 못 된다. 그 때문에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느니, 시골에서 살더라도 회사에 다니는 게 현실적이다.

    두 번째로 불편함이다. 시골에서 생활하면 모기와 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큰 벌레들을 마주하기 일쑤이다. 비몽사몽 간에도 손가락 만한 벌레들 덕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한번은 옷장을 정리하는데 아끼던 코트를 쥐가 갉아 먹은 적도 있었다. 이런 모기, 파리, 벌레, 쥐와 한 집에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이들에게는 시골 생활을 권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골 생활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차라리 계절마다 펜션에 놀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또 마트를 가거나 커피를 마시려면 차 타고 15분을 나가야 한다. 집에 차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차가 없을 때는 한 시간에 한 대인 마을버스를 기다려야 하고, 택시는 왕복 1만 5천 원이나 한다.

    도시 생활이든 시골 생활이든 나름의 장단점이 다 있을 것이다. 사실 시골 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끊고 싶어서다. 우리 집은 지금도 생활이 넉넉하진 않지만 어릴 때는 진-짜 가난했다. 한겨울에 일곱 식구가 전기장판 하나에서 끼어 자고, 온기가 필요해서 고구마를 삶고 헤어드라이어를 켜보기도 했다. 간단한 학용품 살 단돈 몇천 원이 없어서 옆집에 꾸러 다니고, 말끔히 옷 입고 다니는 게 어린 시절의 소원이었다. 

    가난이라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생활 수준을 결정짓고 생활 수준은 곧 생활 습관까지도 이어진다. 생활습관은 한 사람의 성격을 이루고 나아가 삶 전체를 이룬다. 때문에 이제는 이 가난이라는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 명품을 사들이고, 수입차를 사겠다는 것이 아니다. 동생과 나의 학비, 엄마의 노후 생활비로 쓰려는 것이다. 많은 밤을 지새우며 언니와 동생과 나는 ‘돈은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이라 결론 내렸다.

    하지만 엄마는 끝끝내 땅을 팔 수 없겠다고 하신다. 엄마와 우리의 가치관이 차이이지,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회사와 공부, 친구들을 포기하고 시골에 내려와 지내는 것에 대해 그간 참아왔던 억울함이, 엄마가 우리의 애원을 끝내 거절하고 대화를 단절하자 분노가 되어버렸다.

    가족이란 것은 무엇일까,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무작정 시골로 내려오게 한 데에는 엄마를 향한 ‘부채 의식’이 컸다. 나라는 존재가 엄마의 청춘과 맞바꾸어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때문에 엄마의 청춘을 돌려줄 수는 없겠지만, 내 청춘의 1, 2년을 엄마에게 할애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지금, 엄마에게 받은 것을 갚을 수도 없고, 갚을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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