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3 내 몸으로서의 삶(2)
- 암삵의 삶: 위단비(연재 종료)
- 2019. 3. 15. 09:18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삵은
아끼는 빨간 리본을 꼬리에 달아도 될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보이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순 없다. 시각적이며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들의 사회에서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이미지’라는 것. 이미지는 힘이 있다. 시각적 혹은 비 시각적인 정보를 한 편의 그림으로 압축하여 담아두는 것이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압축된 이미지는 평면적인 하나의 조각이다. 타인을 대할 때 우리는 이미지 조각들의 총합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이미지 조각들의 총합은 과연 실재하는 타인과 완전히 일치할까.
라캉은 거울 단계를 통해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자신의 자아를 자아라고 믿는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거울을 보고 본인을 처음 인지하듯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상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비추어진 형상은 실제 형상 외부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 자아는 필연적으로 소외된다. 거울에 비추어지는 자아를 타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라고 한다면 하나의 개인을 비추는 수많은 거울의 총합조차 본질적 자아와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타인에게 단 하나의 거울밖에 될 수 없는 내가 아무리 여러 각도에서 상대를 비춰본다 한들 타인의 본질에 근접할 수나 있을까.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내가 보는 것과 아는 것 너머의 실재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는 것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늘 염두에 두는 것이다. 상대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 그러나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알지 못하는 것을 완전히 알아내려고 하거나 혹은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인간의 오만은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모르는 것과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
인간은 타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오만하다. 나를 다 알고 있다는 착각, 나 자신을 바꾸려는 시도들. 본인을 바꾸려는 시도 그 이전에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갖고 있을까. 내가 내 것이 정말 맞을까. 정말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치장하며 움직이고 있을까. 내 몸은 어디까지 내 것이고 어디서부터는 거울에 비친 형상일까. 내 몸을 내가 갖지 못한다면 나는 내 몸을 알아갈 수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사회는 여성에게 몸을 스스로 갖기보다는 거울에 비춘 모습만을 보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오만해지기를 종용한다. 보이는 내가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게끔.
내가 살을 빼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빼지 않았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살을 빼지 않는 게 아니라, 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보이는 나로 보이지 않는 나를 판단했다. 나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은 으레 튀김을 좋아할 것이고 운동을 싫어할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거울들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진짜 나라고 생각할 뻔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거울 속의 모습을 바꾼다 한들 내가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았다. 조금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초, 큰맘 먹고 떠난 휴양지에서 3박 4일 내내 비키니를 입고 다녔다. 80kg의 몸으로 비키니 위에 비치웨어를 입고 보라카이를 휘젓고 다녔다. 바다가 보이면 냉큼 비키니 차림으로 뛰어들었고 페이스북에 라이브 방송을 했다. 액티비티 프로그램에서 맞은편 자리 사람이 날 보며 속닥거려도 신경 쓰지 않았다. 행복했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 틈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나는 끊임없이 거울을 보며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비키니 차림의 사진들을 동료들에게 보여줄 만한 용기는 생겼다.
자유를 느끼고 싶다.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내가 내 것이라는 느낌을 느낀다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를 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모르는 부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디서부터 내가 모르는 부분인지 나를 바라보고 되새기며 치열하게 알아가야 했다. 욕심이 많은 나는 그렇게 내 몸을 조금씩 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인체 모델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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