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전의 삶: 엄마와 나⑴

고양이

    나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화 되는 그 순간들이 모두에게 어땠는지 늘 궁금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언어로 쏟아져 나오는 그 순간들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응원하고 싶다. 두 번째 글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말하기에 대해 계속 얘기하면서 이전의 삶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써 보려고 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이 연재물 전체의 소재가 될 것이다.)

 

    그저께는 국회에 다녀 왔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듣고 있고,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국회 방문 일정이 있었다. 일정 중에 방문한 헌정기념관 한 켠에는 ‘발언속도가 가장 빨랐던 의원’의 이름과 얼굴이 붙어 있었다. 기념관의 안내문에 따르면 국회의원 평균 발언 속도는 분당 300자, 숙련된 속기사의 최대 속기능력은 분당 320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발언속도가 가장 빨랐던 의원’은 분당 약 468자를 말했다고 하고, 심지어 이 사람 때문에 그 후 국회에서는 속기사 두 명이 동시 속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속도가 얼마나 빠른 건지 궁금해서 더 작은 단위로 계산했더니, 초당 7.8자를 말하는 셈이었다.

 

    처음 이 전시물을 봤을 때, 머릿속에 나와 주변을 둘러 싼 여러 말하기들에 대한 평가가 떠올랐다. 그래서 왠지 재미가 있다는 기분이 든 나는 ‘친구들한테 보여줘야지!’ 하고 각도를 잘 잡은 사진까지 촬영했다. 실은 지난 글에서 적었던 것처럼, 나는 자기소개 자리에서 말이 별로 많지 않았던 그 시절이 무색하게 언제나 어디서나 “말이 빠르시네요”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속에 넘치는 말들을 꺼내는 게 어려웠던 사람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언제나 메모를 하고, 입 여는 자리에 가면 1인용 냄비에 라면 두 개 간신히 끓일 때 물 넘치듯 말하는 내가 그때는 그랬던 이유라면 간단하다.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내가 내보인 내 삶을 제대로, 진지하게 읽어 준다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입을 떼는 일은 당연하게도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은 모두가 내 말을 제대로 들어 주는가? 그렇진 않다. 사실 “말이 빠르시네요”라는 말만큼 많이 듣는 말이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인데, 처음에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얼떨떨했지만, 이제는 그 속뜻을 안다. 그런 평가에는 “(네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고, 실은 네 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었지만) 말을 참 빠르게 잘하시네요”라는 식으로, 뭔가 맥락상 괄호 안의 소감이 함께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작 말의 내용에 대한 평가와 반응 없이 내게 너무 쉽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빨리할 필요가 없어서 말을 빨리 안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많이, 쉽게 주어지고,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눈치 보며 급하게 그걸 내려 놓을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들. 그들로부터 이루어진 내 말하기에 대한 이런 평가는, 마치 63빌딩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쇼를 보고 난 관객들이 “돌고래가 참 쇼를 잘하네!” 하고 박수를 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걸 알고 나서 나는 주변에 유독 정확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면서도 말하기 속도가 빠른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쭉 둘러 보고, 그들과 나의 공통점, 차이점을 찾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말을 잘 이해했다. 좋은 동료가 생겼다.)

 

    하여간,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SNS로 공유하고, 그 게시물에 “잘못된 만남 정도의 속도인가”, “ 뭐 아웃사이더였나” 같은 댓글이 달리는 동안은 나도 같이 웃었는데, 그놈의 생각이란 걸 또 계속 하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말이 빠르시네요” 같은 평가로 쉽게도 넘겨버리는 이 사회가 이 ‘발언속도가 가장 빨랐던 의원’의 말은 속기사 한 명이 기록 처리할 능력이 안 되니까 두 명이나 붙어서 기록으로 남겨주고, 이렇게 국회 내 기념관에 삼선 의원 경력까지 함께 기록된 안내문을 써 붙였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발언속도가 가장 빨랐던 의원’과 내가 어쩌면 좀 비슷한 처지였을지도 모른다는 그 유추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봤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판사 출신 아저씨였다. 그럼 그렇지.

 

    말이 엄청 많지만, 그 말을 사람들이 좀처럼 제대로 받아 주지 않는 어떤 사람을, 꽤 잘 안다. 나도 한때는 그의 말을 듣는 걸 몹시 귀찮아했다. 그는 나를 낳고 또 인간을 넷이나 낳았는데, 이제는 그 애들이 그만 모두 스무 살이 넘고 거의 모두 그 사람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지금까지 이런저런 말을 참 많이 하면서 살아 왔다.

 

    엄마, 라고 하는 이름에는 불필요한 감정과 편견과 논란의 여지들이 잔뜩 들러 붙어 있어서, 나는 웬만하면 그를 직접 부를 때도, 내 친구들에게 그에 대해 말할 때도 그의 이름을 쓰는 식으로 그에게 이름을 돌려 주려 애쓴다. 하지만 공개된 곳에 실명을 쓰는 걸 허락 받을 만큼 우리가 정치적으로 긴밀한 사이가 아니어서, 이럴 땐 곤란하다. (환갑을 바라보는 그는 태극기 집회에, 30대를 보내는 나는 낙태죄 폐지 집회에 참여하는 것.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열망, 행동력, 그리고 두 집회의 성격, 그쪽과 이쪽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시선, 평가, 이런 것들이 우리의 닮음과 차이와 거리를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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