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 사막의 왕자들 편

 

    사막의 건조함도 밤이슬이 내린 이불을 말리기는 역부족이었는지 이불은 눅눅했다. 사막의 밤은 추웠다. 두껍고 눅눅한 이불을 네 겹이나 덮으니 그런대로 하늘의 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사이에서 눈을 부쳐야 하는 처지였던지라 이불이나마 나는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파리 투어에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여행객이 있었고 나는 유일한 여자였다. 그 덕분에 사파리로 먹고 사는 자칭 사막의 왕자들은 함께 웃고 떠드는 중에도 나를 주요한 대화 상대로 삼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나는 세이프존에 있는 느낌을 받았고 동시에 또 조금 슬펐다. 나머지 두 명의 여행객은 잘 자란 교양있는 청년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 중 한 명은 인도 출신의 매우 호방한 성격에 눈매가 깊은 캐나다 국적의 사내였다. 대화를 주도하면서도 늘 상대의 말에 경청하고 주변을 챙기는 스타일이었는데 인도 온 지 열흘만에 남자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한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는 내가 인도에서 혼자 여행을 하면서 여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사고들을 들으며 경악해마지 않았고 함께 흥분해줬다.

 


    그런 그가 사파리 투어 중 내가 고개만 돌리면 보일 만한, 아니 그의 소변이 모래에 찰랑찰랑 고이는 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운 곳에서 일을 본 건 조금 충격이었다. 그 밤 내가 소변을 보기 위해 컴컴한 사막 어느 덤불 뒤에 숨어들어 소리 없는 소변을 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기분이 살짝 나쁘다는 건 그런 건가. 살짝이, 살짝이 아닌 그런 거 말이다. 그 밤 그 "잘 자란" 청년들 틈에 누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건 단지 사막의 밤이 추워서, 하늘에 별이 무수히 많아서가 아니었던 거 같다.


    인도에서 만난 광경들은 놀랍고 충만했지만 또 다른 의미로 매일매일이 피곤했다. 달리 피곤한 게 아니라 언제든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피곤했다. 그래서 아쉽다. 사막에서 다시 도시로 가는 중 갑자기 지프가 퍼져버리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건 피곤한 축에 끼지도 않는다. 사막 투어는 흥미로운 경험이어서 또 해보고 싶다. 다만 다음 번엔 온 신경을 별에만 쏟느라 잠들지 못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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