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6 연결되는 삶(1)
- 암삵의 삶: 위단비(연재 종료)
- 2019. 5. 10. 09:31
버드나무처럼 사는 삵에겐 오랜 친구가 있었다.
강에서 사는 고래, 다람쥐인 줄 아는 기린,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사육사였다.
초끈이론에 의하면 차원은 11차원까지 존재한다. 1차원은 선의 세계, 2차원은 면의 세계, 3차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세계이고, 알려진 바로는 4차원은 시간과 공간의 세계라고 한다. 나는 5차원, 6차원은 어떤 차원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나름의 가설을 세워봤다. 1차원(선)과 1차원이 만나 2차원(면)이 되고, 2차원(면)과 2차원이 만나 3차원(공간)이 된다면, 4차원이 시간과 공간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 공간과 공간이 만나면 공간 안에 시간이 흐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5차원은 시간과 시간의 만남일 텐데, 애인은 직관적으로 5차원이 에너지의 세계일 것 같다고 했다. 그럴듯했다. 시간과 시간이 만나면 움직이거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6차원은 에너지와 에너지가 만나는 것일 텐데 나는 그 세계를 사랑, 우정과 같은 ‘관계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에너지, 사물의 에너지 등이 서로 만나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7차원은 개인, 자유, 영혼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주제에 풀어놓을 생각이다.
나에겐 ‘4차원 식구들’이라고 부르는 관계가 있다. 처음부터 위의 모든 것을 생각해내고 붙인 이름은 아니었고 이 3차원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을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우리에겐 공간도 시간도 에너지도 의미가 없다. 그저 우리는 우리 개인으로서 서로를 만나고 같이 또 따로 무언가를 공유해나간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어떤 공간인지, 얼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지보다 서로를 보고 관계 안에서 자유롭게 교류하는 것이 더 큰 우리의 의미다.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관계. 잠깐 만나도 괜찮은 관계. 만나도 힘든 줄 모르겠는 관계.
멤버 소개부터 하자면, 제이크 모카(강에 사는 고래)는 나의 전 애인이다. 우린 11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지냈으나, 개인에 대한 중요성과 관계가 개인을 앞서는 것에 의문이 들어 서로 연인이 아니기로 합의한 관계다. 제이크는 내가 봐온 사람 중에 가장 편견과 선입견이 없는 사람이다. 그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상식 또한 없다. 바다와 같이 포용하고 흡수하는 인격을 가지고 있고 매우 독특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제이크는 우주와 보이지 않는 힘과 자기 자신과 그림에 관심이 많다. 암삵의 삶 로고 또한 제이크의 작품이다.
은비(우리를 관리하는 사육사)는 내 친동생이다. 우리는 자매 관계지만 전우이기도 하며 친구이기도 또 타인이기도 하다. 우린 서로 매우 다르다. 힘들 때 하소연하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가 매우 다른 만큼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을 서로에게 제시해주곤 한다. 은비는 효율적인 사람이다. 다양한 정보를 모아서 가장 효율적이고 단순한 길을 찾는다. 효율성보다 정확함에 더 많이 집중하는 나와 가장 다른 점이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여 그림을 잘 그린다. 사람을 잘 보는 편이라 우리가 닮은 동물들과 수식어를 꽤 정확하게 골라준 것도 은비다.
연두(다람쥐인 줄 아는 기린)는 은비의 오랜 친구다. 은비에게 우리를 관리하는 사육사라고 한 것도 연두다. 연두는 아주 귀엽다. 자칭, 타칭 관종이고 엉뚱하고 귀여운 짓을 아주 많이 한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고 그림을 잘 그린다. 감정에 대한 리액션이 풍부하고 매우 사려 깊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굳은 심지로 유리 벽을 하나씩 깨어 나가는 강한 친구다. 음악을 많이 알고 패션 센스가 좋다. 연두와 나는 한 다리 건너 만난 사이지만 어떤 면은 굉장히 닮아서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나, 버드나무처럼 사는 삵. 우리 넷은 주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한 건 아니지만 꽤 만난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나 놀이는 아주 다양하다. 하나의 주제로 창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나를 모델로 누드크로키를 그려주기도 하고 우주나 철학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일상적인 대화도 많이 나눈다. 단, 술은 마시지 않고 담배를 많이 태운다. 우리가 처음부터 친하지는 않았다. 은비와 연두는 이미 친했고 우리끼리 오랜 시간 서로 알고 지내긴 했지만, 처음부터 4차원 식구들이라 부를 만큼 우리 사이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 시점은 나와 제이크가 연인이 아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와 연인이라는 관계에서부터 개인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급격히 친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모두 개인주의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개인주의자가 무엇인지 많은 힌트를 얻었다. 어쩌면 우리처럼 개인주의자들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공동체에 소속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더 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은비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우리 생각보다 아주 많을 것이라 했다. 나는 여성 혹은 계약직 등등 구분된 이름으로만 세상을 살다가 이 친구들을 통해 ‘나’라는 개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부분이 생긴 것이 매우 기쁘다. 그리고 힘이 된다. 함께 무얼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나와 같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의 존재를 확인만 하더라도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는 고개를 듭니다.’하고 서로를 확인하듯. 그게 ‘암삵의 삶’ 연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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